진(眞)과 속(俗)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범부의 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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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眞)과 속(俗)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범부의 종교, 불교
  •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학·동양철학
  • 승인 201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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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진과 속의 눈으로 불교를 보다』 (정영근 지음, 철학과현실사, 2019.11)
 

이 책은 진과 속(성과 속의 불교적 표현)이라는 틀을 통해서 불교사상의 다양한 내용과 한국불교의 전개 과정을 특징적으로 정리함으로써 불교라는 사상과 역사를 전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불교가 본능적 욕망에 따르고 현실적 이익을 계산하는 우리들 범부하고는 너무나 다른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에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불교가 온갖 미혹과 욕망에서 헤매는 속세에 그대로 머무르고 만다면 불교는 종교로서의 가치와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필자는 불교가 성과 속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나타내 보일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 생명 있는 범부의 종교로 자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점을 조명한 것이다.

진과 속은 인간의 양면성과 종교의 두 계기를 잘 대변해주는 개념이다.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자연적인 본능에 따르고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속된 모습과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성스러운 세계를 체험하고자 노력하는 성스러운 모습이다. 인간의 마음과 행위는 때로는 속에 머무르기도 하고 때로는 진을 지향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진과 속을 오가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그런 점에서 진과 속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양면성을 특징적으로 설명하고 드러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변화하는 모습을 총체적으로 조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유효한 틀이 될 수 있다.

종교는 성과 속의 분리를 전제로 하고 출발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영역을 확장해 가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것을 종교 안에 받아들이거나 세속적인 것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성스러운 것을 강조함으로써 세속과의 거리를 확보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세속에 다가감으로써 세속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편으로는 성스러움을 지향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세속에 다가가야 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계기 사이에서 종교의 교리와 전개 양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은 종교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효율적인 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왜 불교를 진과 속이라는 틀로 보려고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또한 불교를 이렇게 보는 것이 가능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검토한다.  2부에서는 불교사상의 다양한 전개와 내용을 진과 속이라는 틀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분석하고 정리한다. 초기불교의 기본적인 교리를 진과 속의 관점에서 분석 정리하고, 사상적으로 진을 강조하는 여래장사상과 속을 강조하는 유식사상을 대조하여 설명하며, 진과 속을 아우르는 대승기신론의 이문일심사상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어서 진이 속 가운데 있음을 역설하는 유마경과 부처의 세계를 설하는 화엄경 그리고 중생의 편에서 설하는 정토신앙을 특징적으로 해설한다. 다음으로 세속의 언어를 부정하면서 출발한 선불교가 일상의 삶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게 되는 변화과정을 진과 속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3부에서는 한국에서 불교가 전래한 후 어떠한 과정과 모습으로 전개해 나가는가를 진과 속을 오가는 흐름으로 조명한다.

먼저,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하고 토착화되어 점차 지평을 넓혀 대중화하는 과정을 진에서 속으로의 접근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한다. 다음으로, 통일신라기 불교의 대중화를 바탕으로 불교의 진면목을 추구하는 노력이 교학의 발전으로 어떻게 꽃을 피웠는가 하는 것을 상세히 검토한다. 구체적으로는 원측과 의상 그리고 원효가 구축한 당대 최고 수준의 사상 내용을 자세히 구명하면서 그 속에 담겨 있는 진과 속의 문제에 대한 깊은 사고의 내용과 진과 속을 융합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노력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어서, 라말·여초에 선종이 전래해서 점차 현실생활에 접근하려는 흐름에 대하여 간락하게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고려시대에 불교가 세속화하고 현실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여러 양상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논의한다.

이 책은 한 종교로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형태로 역사 속에 현현하고 있는 불교의 모습을 나름의 일관된 틀과 맥락 속에서 특징적으로 조명하고 정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불교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진과 속이라는 틀로 보는 나의 관점과 시각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협해서 불교의 다양하고 풍요로우며 깊은 내용을 왜곡하거나 축소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불교를 좀 더 쉽고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고 또한 불교를 새로운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해 본다.

또한 이 책은 불교의 전문용어와 개념들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일상적인 언어로 가능한 한 쉽게 풀어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자가 불교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난해함의 장벽을 일반인 독자에게 똑같이 안겨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난해한 개념과 복잡하고 다양한 내용으로 인해서 불교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경하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불교를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면 한다. 아무쪼록 이 책이 한 사람에게라도 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느낌을 주고, 어렵고 낯선 불교를 쉽고 가깝게 이해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학·동양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태동고전연구회 회장, 불교학연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신·구 유식의 비판적 종합: 원측의 불교사상』(박사학위논문), 『일과 직업의 프리즘으로 동양사상을 보다』, 『현대사회와 직업윤리』(공저), 『21세기를 대비한 직업과 산업윤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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