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제의 위기, 아프리카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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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의 위기, 아프리카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 성백용 한남대·서양중세사
  • 승인 201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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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세계체제와 아프리카: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의 정치학 』
    :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성백용 옮김, 창비, 2019.11

 

지난 8월 말일에 타계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사회학자나 역사학자로 또는 둘 다로 흔히 소개되지만 그 자신은 아마도 ‘역사적 사회과학자’로 불리기를 더 좋아했을 것 같다. 사실 그가 세계체제 분석의 지적 원천으로 인정한 두 학문적 스승은 제각기 자기 시대의 사회과학과 역사학을 혁신했던 카를 마르크스와 페르낭 브로델이었다. 사회 현실의 총체성을 추구하는 정신, 구조와 장기지속에 대한 관심, 학문적 경계를 거부하는 통섭적 사고 등이 모두 이들에게서 받은 유산이었다.

이 같은 유산을 바탕으로 그가 구축한 세계체제 분석의 골간은 한마디로 자본주의를 하나의 ‘역사적 세계체제(historical world-system)’로 본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우주가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천문학의 분석 대상인 것처럼 역사적 사회과학의 분석 대상은 이 하나의 전체로서의 세계체제인 것이다. 먼저 그것은 지리적으로 차별화한 기축적 분업체계(핵심부-주변부-반주변부)를 기본 구조로 하는 하나의 세계적 체제이다, 국가 간 체제는 이 같은 분업체제를 유지·강화하여 잉여의 흐름을 보장하는 그것의 정치적 구조이며, 서구중심의 보편주의는 그 체제의 불평등과 모순을 정당화하고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제로 구실한다.

또한 그것은 어느 시점에 탄생하여 꾸준히 팽창하고 그 체제의 논리가 완전히 실현되는 임계점에서 마침내 수명을 다하게 될 하나의 역사적 체제이다. 그 체제를 작동시키는 논리란 바로 끝없는 자본 축적과 만물의 상품화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1500년 무렵에 탄생하여 19세기 말 지구 전체를 뒤덮기까지 꾸준히 팽창했고 오늘날 진정한 체제적 위기 속에서 다른 어떤 후속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 자본 축적의 위기는 전반적인 인건비의 증가 경향, 환경오염 문제 등 오랜 동안 외부화해 왔던 비용의 내부화 압력, 복지비용을 위한 조세 부담의 압박 등 비용의 증가에 그 원인이 있다.       

▲ 이매뉴얼 월러스틴.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이매뉴얼 월러스틴.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이 책은 이 같은 세계체제 분석의 시각에서 아프리카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조명하고 있다. 사실 월러스틴은 1959년에 현대 아프리카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70여 년 동안 이 지역의 사태와 현안을 주시하며 꾸준히 글쓰기로 관여해온 아프리카 전문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체제와 아프리카』라는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개별 역사를 기술하거나 그것들을 종합하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세계체제 전체의 변동 그리고 위기와 이행의 관점에서 이 대륙이 직면해온 곤경과 역할 문제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은 주로 세 가지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첫째는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가 아프리카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1960년을 전후로 정치적 독립을 성취했지만 경제적 발전이라는 약속을 실현할 수 없었던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들의 딜레마, 그리고 프랑스혁명 이후의 모든 반체제운동과 마찬가지로 국가권력 장악이라는 당장의 목표에 성공함으로써 현 세계체제의 논리에 포섭되어 오히려 그것을 더 강화시킨 그 운동들의 근본적인 딜레마에 눈길을 돌린다. 두 번째 주제는 근래에 와서 정치적 투쟁의 큰 쟁점이 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문제와 이러한 관점에서 제기되는 아프리카의 딜레마들이다. 저자는 인종, 민족, 종족집단과 같은 특정한 인구 집단들의 개념과 명칭, 그것들의 범주화 자체가 항구적인 실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필요에 따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역사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세 번째로는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 대한 사유와 연구의 선구적인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즉 현대 아프리카 연구의 개척자 배즐 데이빗슨(Basil Davidson), 유럽 열강에 의해 근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그물망에 엮이게 된 식민지 사회들의 상흔을 파헤친 역사가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 세계체제론이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그것의 기본 관념들을 명료하게 제시했던 올리버 콕스(Oliver Cox), 끝으로 체제 변혁을 위한 투쟁의 주체와 방법론에 관해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것과 같은 함정들에 대해 고뇌했던 프란츠 파농(Franz Fanon) 등의 사상을 곱씹는다.        

거의 모든 글에서 저자는 현 세계체제의 위기와 이행의 문제를 빠짐없이 거론한다. 현 세계체제는 진정한 위기와 이행의 시기에 있으며, 그래서 우리 앞에 진정한 선택과 토론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 같은 선택과 토론의 장에서 아프리카는 관건이 되는 지역이다. 이는 아프리카가 근대 세계체제에서 소외되어 현 체제를 지탱하는 서구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에 지적으로 덜 포섭되어 있으며, 따라서 가장 창조적인 통찰, 조직적 사고의 전환과 움직임이 그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하튼 다음의 어떤 체제에 대한 선택과 토론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첫걸음은 저자의 충고대로 움직이는 공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예민하고 진지한 태도일 것이다.     


성백용 한남대·서양중세사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남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시대를 넘어서다』(공저), 『영웅 만들기』(공저), 역서로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세 위계: 봉건제의 상상세계』, 『사생활의 역사』(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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