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왕, 혀근왕, 賢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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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왕, 혀근왕, 賢王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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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2)_작은 왕, 혀근왕, 賢王

“세상을 많이 살았고, 사람을 많이 알았다. 환갑이 되면 혼자 살며 혼자 노는 즐거움에 익숙해지고 마침내 獨居에 귀의할 때다.”(正子의 歸去來辭 중에서)

발단은 ‘해’였다. ‘해’는 ‘수리’, ‘라’와 더불어 ‘태양’을 가리키는 우리 고유어다. 밤늦어 귀가하다 맑은 밤하늘 한 가운데 떠 있는 보름달을 보고 왜 우리는 밤하늘의 발광체를 ‘달’이라 하고, 한 낮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눈부신 광휘를 ‘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해’가 해인 까닭, 해의 기원을 찾으며 남광우 선생과 박창돈 선생의 『고어사전』을 뒤적이다가 아주 흥미로운 어휘를 발견했다.
 
형용사 활용형이 ‘혀근’인 ‘혁다’라는 생소한 어휘였다. 알고 보니 ‘혀근’은 우리말 ‘작은(小)’의 고어로 중세 문헌 여러 곳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小王ᄋᆞᆫ 혀근왕이니”(月釋 1: 20)                     
“諸小王은 여러 혀근 왕이라”(釋譜 13: 13)
“ㅅ구메 혀근 ᄂᆞᄂᆞᆫ 벌에: 夢有小飛虫”(內訓 2: 40)
“혀그닐: 小者”)(內訓 3: 38)
“區區ᄂᆞᆫ 혀근 양이라”(金三 2: 57)
“혀근  보시고 御座애 니르시니: 引見小儒 御座遽起”(內訓: 龍歌 82)

혀근이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는 것도 난제지만, 小王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문득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 반포하던 시기의 사람들과 요즘 사람들이 만나면 의사소통이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소리와 뜻이 변해 옛말이 새로운 어휘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후대인은 고어를 알기 어렵다.

▲ 월인석보언해
▲ 월인석보언해

요즘 사용 중인 중국 한자어 小王은 “指自己的妻子外面的男人”을 가리킨다고 한다. 남녀관계에 있어 남성이 제3자 일 경우(男女關係之中,男性第三), 쉽게 말해 유부녀와 바람을 피는 불륜남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에 반해 小三은 유부남과 정분이 난 불륜녀를 비하하는 말이다. 그러나 옛날 옛날 한 옛날엔 황제와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정사를 의논하고, 황제의 가르침을 받고 경서를 논의함에 있어 종일토록 서로 간에 뜻이 맞고 정답기 이를 데  없는 관계자인 왕자들을 諸小王이라고 했다.

『後漢書』 「皇后纪」 上 <明德馬皇后>:“常与帝旦夕言道政事,及教授諸小王,論議經書,述叙平生, 雍和终日.”

가을이 오려는지 아니면 오고 있는지 나는 몸이 노곤하여 초저녁께 수우ᄌᆞᆷ을 잤다. 수우ᄌᆞᆷ은 요즘말로는 새우잠이다. 근심(愁憂)이 많은 사람이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는 경향이 있어서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밤이 깊어 쟁반같이 둥근 달을 바라보는데 홀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형님보다는 성님, 혓바닥은 셋바닥, 흉 대신에 숭이라고 말을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즉 이로 미루어 옛말을 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전을 뒤적였다. 설마의 고어는 혈마 또는 현마였다. 썰물은 혈믈, 서까래(椽)는 혓가래, 헤아림 즉 셈(數)은 혬 또는 혀임(세다는 혀다)이었다, 이렇듯 과거의 혀근과 혁다도 음운변화를 거쳐 현재의 작은과 작다로 탄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 范曄이 지은 후한서
▲ 范曄이 지은 후한서

이쯤에서 고대 흉노사회의 군사기구 24長制의 최상부에 속하는 관리들의 명칭과 의미를 좌우현왕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듯하다. 남흉노(南匈奴)의 관직명(官職名)과 서열은 좌우현왕(左右賢王)·좌우곡려왕(左右谷蠡王)·좌우일축왕(左右日逐王)·좌우온우제왕(左右溫禺鞮王)·좌우점장왕(王左漸將王)의 순이었다. 좌우현왕과 좌우곡려왕은 4각(四角), 좌우일축왕, 좌우온우제왕, 좌우점장왕은 6각(六角)이라고 불렸다.(『자치통감(資治通鑑)』 卷44 「漢紀36」 〈光武帝 建武 23年(47)條〉) 이에 대한 호삼성(胡三省)의 注(1406)에는 “大臣貴者左賢王, 次左谷蠡王, 次右賢王, 次右谷蠡王, 謂之四角. 次左·右日逐王, 次左·右溫禺鞮王, 次左·右斬將王, 是爲六角.”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벼슬 품계를 정과 종으로 나누듯, 하나의 관직명을 좌우로 나누는데, 좌가 우보다 상위다. 또 왕 아래 계급으로는 연제부와 연합관계에 있는 다섯 부족의 족장으로 추정되는 5개 골도후(骨都侯)가 위치해 있다. 한씨(韓氏)골도후, 당우(當于)골도후, 호연(呼衍)골도후, 랑씨(郞氏)골도후, 속자(粟藉)골도후가 그들이다(林幹, 1984: 82). 위에서 본 좌현왕 이하 10명의 왕들이 선우를 세습하는 연제씨 집안에서 나왔다면, 선우씨족과 혼인관계에 있는 인척씨족으로서 알지를 배출하는 호연씨, 그리고 수복씨, 란씨 내지 랑씨와 구림씨 집단의 우두머리는 흉노연맹 성립 초기부터 귀족 집단인 골도후가 되었다. 상황 변화에 따라 구 골도후가 탈락되고 신진 골도후가 등장하기도 했다.

▲ 훈족이 지금의 이란 지역을 침공하는 모습을 그린 19세기 그림

대중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찬데 이렇게 힘을 바탕으로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달리 말해 일방적이고 독점적인 사회제도를 만들어놓은 지배계급은 실질적으로 노예에 다름없는 피지배계급에 대해 노예주 노릇을 했다. 역사 기록도 제도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선우를 보필하는 흉노 사회 최고위 권력자를 지칭하는 (左右)賢王의 ‘賢’은 흉노어 ‘도기(屠耆)’의 訓借다. 다시 말해, 중국어 賢에 해당하는 흉노어는 屠耆다. 『史記』 권110 「匈奴列傳」: 2890의 기록 “흉노는 어질다를 도기라고 한다(匈奴謂賢爲屠耆)”에서 알 수 있듯이 左賢王·右賢王을 左屠耆王·右屠耆王으로도 쓴다. 중원의 左史, 右史에 해당되는 직책이다.
 
누가 현왕이 되는 것일까? ‘賢’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총명하고 유능하다고 할 때 선우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진왕은 자신을 닮은 혈육일 것이다. 우리 고어 ‘혀근 왕’ 즉 小王이 바로 흉노족의 현왕과 이철동의어가 아닐까 싶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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