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지원제한 대학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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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원제한 대학을 어찌할꼬?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0.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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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용의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31일 “2021년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 지정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2021년부터 매년 정량지표에 기반한 절대평가로 소위 ‘부실대학’을 걸러내고, 이 대학들에 대해서는 정부 재정지원을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평가지표는 (1) ‘교육비 환원율’과 ‘전임교원 확보율’(교육여건), (2) ‘신입생 충원율’과 ‘재학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교육성과)로 구성되어 있고, (3) 행·재정 책무성은 ‘법정부담금 부담률’ 혹은 ‘법인전입금 비율’ 중 1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들 지표 중 3개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재정지원제한 대학 ‘I 유형’으로 지정되어 정부 재정지원이 일부 제한되고, 4개 이상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II 유형’이 되어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이 전면 제한된다는 것이 교육부 방안의 골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소위 ‘한계·부실대학’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교육비 환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법정부담금 혹은 법인전입금 비율 등 정량지표로 구성된 평가지표의 빈 곳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되면 그야말로 생존이 위협당하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수 대학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교육부 평가 기준인 연봉 2,850만 원 이상을 받는 ‘무늬만 교수’인 박사학위 소지 행정직원(흔히 ‘연구교수’ 등으로 부르며 눈가림하는 경우가 많다)의 채용을 통한 전임교원 확보율 편법적 상향, 발전기금 기부를 가장한 교직원 임금 삭감을 통한 법인전입금 비율 조작, 평가에 대비한 편법 입학·편입학, 취업률의 조작 등이 생존의 위협 속에서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소위 ‘컨설팅 회사’로 불리는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들은 또 한 번 호황 국면을 맞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중장기적 관점에서 학교의 체질 개선을 할 여지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학생 교육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과 시설, 설비의 유지·보수 등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기간 동안 그야말로 사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을 발표한 교육부가 원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구조개혁을 지극히 ‘단선적인 사고’로 추진하는 교육부의 단견에 있다. 어쩌면 그 배후에는 기재부 등 예산을 쥐고 있는 소위 ‘순진한 시장주의자’들이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현 교육부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아예 참가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 재정지원제한 대학에 대해 채찍만 있을 뿐 정부 차원에서 아무런 지원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 이런 유형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부실대학은 퇴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재부는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이런 주장을 해 왔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대개 ‘부실대학을 퇴출시킬 수 있는 수단’의 제시는 외면한다. 무엇보다 현 문재인 정부의 정치 철학을 감안하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고등교육체제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과 이로 인해 사회가 감내해야 할 유산은 현 집권세력의 정치철학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볼 때  한계·부실대학을 퇴출시키는 합리적 방안은 공적으로 구조개혁 기금을 조성하여 소위 대학의 ‘실질적 소유주’들에게 그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보상을 해 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학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법령에 따라 일단 학교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개인의 손을 떠나 공적 영역에 귀속한다고 믿는 신념을 가진 현 집권 세력에게 이러한 방안은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 ‘한계·부실대학’을 퇴출시키는 방법은 고등교육 서비스의 수요자인 학생들의 선택에 의해 점차적으로 고사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대학은 손님이 없어지면 금세 퇴출되는 동네 떡볶이집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재정난이 악화될수록 퇴출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소위 ‘좀비 대학’으로 바뀌어 나갈 뿐이다. 시설을 고치지 않고,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줄이면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학위 장사를 하며 버티다가, 종국에는 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교직원에게 기부를 받는 형식으로 임금을 삭감해 나가며 버틸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대학들의 경우 인센티브 구조상 학생 모집이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대학 문을 열어 두는 것이 낫지, 아무런 보상도 없는데 스스로 문을 닫을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한계·부실대학에 재직하는 교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원 자격을 유지하면 그나마 연구비를 수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논리로 보아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방 신문사가 문을 닫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이들 대학에는 가족의 생존을 걸고 일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고,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생업을 영위하고 있는 수많은 지역 사회의 이해당사자들이 있다. 부실대학의 퇴출을 동네 떡볶이집 퇴출 정도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법은 두 가지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일단 ‘한계·부실대학의 정리를 위한 단계적 구조개혁 방안’을 법적·재정적으로 마련하는 일이다. 아울러 이런 방안의 실현을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서라도 먼저 한계·부실대학들에게 철저한 자구노력을 통해 생존을 위한 타당한 비전을 제시하도록 하고, 현재와 같은 대책도 없는 막무가내식 ‘퇴출 정책’보다는 타당성 있는 밀착 평가와 체계적 컨설팅을 통해 대학이 활로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기회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평가는 현재와 같은 정량지표와 보고서 위주의 형식적 평가에서 탈피하여 엄격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세상에 어떤 부실기업에 엄밀한 평가도 없이 공적 자금을 지원한단 말인가? 다른 정부재정지원 평가도 그렇지만 재정지원 제한대학 선정 평가는 훨씬 더 엄격하게 수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과거 1~2주기 대학구조개혁(기본역량 진단) 평가에서 상위 30~40%에 해당한 소위 ‘자율개선 대학’에 대해서는 오히려 주요 정량지표를 중심으로 여건 변동만 간략하게 점검하여 평가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3년 동안 기본역량이 변해야 얼마나 변한단 말인가? 실익도 없는 평가 대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서, 이제부터라도 학생 교육과 연구에 쓰도록 하는 것이 훨씬 사회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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