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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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정치인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0.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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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2017년 워싱톤에서 열린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 현장 ⓒWikipedia

과학은 지식을 추구하며 지식은 권력이다. 과학적 방법론은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을 통하여 가설을 검증하고, 실험 결과의 축적에 의해 지식을 공유하게 된다. 우리가 관찰하고 공유한 세계가 실재 세계이며, 이러한 방법론을 경험주의라 한다. 우리는 편견을 최소화하고 객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한다. 과학 연구의 실행은 사회적 활동이며 정치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 과학자는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사회의 특정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과학은 사회에 의해 지배되며 정치적 의지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자들 역시 사회의 정치•문화적 시류에 휩쓸리기 쉽다. 최근까지 미국의 CIA는 환각제와 화학약품으로 특정인들을 조종하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미국의 공중보건국은 동의를 받지 않은 흑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터스키기(Tuskegee) 매독 실험을 행하였는데, 실험의 목적을 비밀에 부친 채 수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40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이런 일은 전 세계적으로 흔히 존재한다. 국가 연구기관이나 자치단체에 소속된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대해 다른 연구 집단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이 제도적으로 차단되어있다.

과학적 방법론을 둘러싼 주변은 돈이라는 보다 분명한 정치적 영역이다. 우리나라 과학 연구비의 대부분은 정부에서 지원되고 있다. 결국 연구비 지원 방향에 대한 결정은 정부 관료들에 의해 행해진다. 과학정책에 관여하는 관료들은 연구와 개발의 지원에 필요한 논리를 늘 바꾸려고 한다. 그들은 과학의 역할에 대해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그들은 강한 경제, 그리고 단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를 요구한다. 지난 10여 년간 정권이 몇 번 바뀌면서 녹색 성장, 웰빙, 신재생 에너지,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그린 뉴딜이 등장하였다.

스탈린 지배하의 소비에트 정부는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 이론 때문에 생물학의 기본원리를 배척했던 리센코(Trofim Lysenko)의 연구를 지원하였다. 이것은 이념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과학을 악용한 사례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자 집단의 과학의 사적 이용이 빈번한 일이 되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정권 반대 진영의 과학자들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특정 기관의 관리자가 되어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고 홍보하는, 과학자의 본성을 상실한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이념에 복무한 구 소련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 1935년 크렘린 궁에서 연설하는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지금의 과학계는 파편화되었지만, 이전의 많은 과학자들은 행동주의자들이었다. 1930년대 미국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도덕 기준 정립과 정치 및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과학 연구자협회’를 조직했다. 그들은 당시의 파시즘에 대항했으며, 과학 논문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주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46년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그의 에세이 <흑인 문제>에서 미국 내의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며, 이 문제를 ‘백인들의 질병’으로 규정하였다. 이후에도 ‘미국 과학 진흥협회’는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진행했고, 세이건(Carl Sagan)은 핵확산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에 대해 들여다보면 많은 경우 과학적 정치인이 연구 방향 결정이나 대형 연구비의 수주를 독과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 정치인들은 연구비 지원에 관련된 온갖 위원회나 평가회에 머리를 디밀고 있다. 그들은 서로 잘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의 활동은 수상이나 연구비로 보상받는다. 이런 활동으로 이력이 화려한 명함이 만들어지며,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은 상대적으로 통일된 양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연구비 배분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중앙 정부 위원회의 패널로 참여하며, 대형 연구비를 독식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과학자 집단은 거대하고, 질과 상관없는 논문을 양산하며, 자신들을 위한 양성 되먹임 고리에 연구비라는 연료를 들이붓는다. 이들이 과학계의 정치인이며, 스스로를 아무개 사단이라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 이것은 조폭 문화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연구에 매진하나 연구비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과학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어필할 줄 모르는 바보이거나, 연구 계획서상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정직하거나 또는 정치력 부족 때문일 것이다. 각종 위원회에 발을 담그고 정치적인 접촉에 의해 ‘그들 중의 일원’이 되었을 때가 과학적 영감과 환희를 포기하는 시점이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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