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 링감(lingam)의 변천 . . . 남성기에서 벼슬아치로, 다시 나이든 남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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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 링감(lingam)의 변천 . . . 남성기에서 벼슬아치로, 다시 나이든 남자로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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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 푸는 역사 기행(3)_ 시바신의 생명력 링감(lingam)이 늙은 영감(令監)이 되기까지

지금은 첸나이로 이름이 바뀐 남인도 타밀나두 주의 주도 마드라스 시에 간 건 나름대로 비장한 의도가 있어서였다. 그건 그보다 훨씬 전 가야국의 시조 수로왕의 비 보주태후 허황후의 고향이라고 추정되는 아유타야(현 아요디야)를 찾았을 때의 심정과 비슷했다.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은 드라비다족이다. 타밀나두 주는 이들 드라비다족이 아리안족의 침탈로 인해 인도아대륙 남부로 밀려 내려와 정착한 곳이다. 타밀족, 텔루구족, 칸나다족, 말라얄람족이 인도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드라비다족의 하위집단이다. 이들의 언어와 한국어의 유사성에 주목한 이는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의 고문이자 선교사였던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다. 그는 『한국어와 인도 드라비다어의 비교 문법』에서 “두 언어가 유사한 것은 한반도에 정착한 선주민이 최소한 일부 지역이라도 남방에서부터 이주해 왔음을 입증해 주는 누적된 증거의 고리”라고 말했다. 원로 국어학자 고 강길운 교수도 드라비다어와 우리말 어휘가 무려 1천개 이상 닮아있다고 했다. 필자도 조사의 비교 연구를 통해 우리말과 드라비다말의 친연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인도의 국교는 힌두교다. 힌두교의 삼주신(三主神, Trimurti)은 브라흐마(Brahma), 비슈누(Vishnu), 시바(Shiva)로 각각 창조와 유지, 그리고 파괴를 상징한다. 이 가운데 파괴의 신 시바(산스크리트어: ??? ?iva, 영어: Shiva)는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바람과 폭풍우의 신 루드라(Rudra)의 별칭 또는 존칭으로 본래는 부와 행복, 길상을 의미하는 신이었으나, 나중에 파괴의 신이 되었다. 힌두교도들은 시바신이 지상에 인간으로 나타난 것이 왕이며, 왕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라고 믿는다. 생식과 뱀을 관장하는 시바신은 8개의 팔과 4개의 얼굴을 가졌으며, 눈은 셋이고 용의 독을 마신 탓에 목이 검푸르다고 전해진다.

▲ 시바와 두 번째 아내 파르바티: 시바는 양미간의 제3의 눈을 포함해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목이 검푸른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어머니의 강(Mother Ganga) 갠지스 강(the Ganges)은 그의 엉켜 있는 머리카락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 시바와 두 번째 아내 파르바티: 시바는 양미간의 제3의 눈을 포함해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목이 검푸른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어머니의 강(Mother Ganga) 갠지스 강(the Ganges)은 그의 엉켜 있는 머리카락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힌두 사원 내부에는 파괴의 신이자 새로운 창조와 풍요의 신인 시바를 상징하는 시바링감이 모셔져 있고, 신도들은 거기에 붉은색 물감을 바르고 그 앞에는 꽃과 향을 바친다. 시바링감은 男根(phallus)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링감을 지탱하고 있는 건 맷돌 모양의 요니(yoni)라고 하는데 여성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고대 범어에서 비롯된 말 yoni의 원뜻은 자궁(uterus; womb) 또는 여성의 생식기인 질(膣vagina), 음문(陰門, vulva)이다.

▲ 요니와 시바링감  사진 출처: https://kylegrant76.com
▲ 요니와 시바링감 사진 출처: https://kylegrant76.com

남성기를 가리키는 범어 링감(lingam)이 한자어로 음역되면서 令監[lingjian]으로 표기되었다. 이 말이 우리나라로 들어와서는 ‘령감’이라는 말소리로 조선시대 종이품에서 정삼품 당상관에 이르는 관원에 대한 별칭으로 쓰였다. 나이가 어려도 벼슬이 그에 상당하면 ‘령감’이라 불렸다. 정일품에서 정이품까지는 大監이라 부르고, 정삼품 당하관에서 종구품까지의 관리는 大人이라 칭했다.

우리말은 어두 자음 /ㄹ/이 불편하다. 그래서 /ㄹ/이 탈락되거나 [ㄴ]으로 대체된다. 리씨(李氏)가 이씨로, 리발소가 이발소로, 리장이 이장으로 바뀐다든지, 그 뿐 아니라 라면을 실제로는 [나면], 라디오를 [나디오]로 발음하는 것이 그런 음운현상의 결과다. 란제리(lingerie)를 내가 아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난제리]라고 한다. 외래어 lamp 역시 [남포]로 음운변화 되었다.

남성기를 지칭하던 인도 말 linga(林伽) 혹은 lingam의 한자 음차어 링감(令監)은 우리말 소리로는 령감이 되었다가 어두의 /l/이 탈락되면서 한편으로는 영감으로 음운변화를 보이며, 또 다른 한편으론 어의도 달라졌다. 남성기에서 벼슬아치로, 다시 나이든 남자로,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체로 나이든 남편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말은 이렇게 공시적, 통시적으로 변모한다. 사람을 쫓아 이동하며 새로운 곳, 낯선 곳의 풍상 아래서 소리가 변하고 뜻이 달라진다. 달리 말하면, 원 주인의 품을 벗어난 말은 새 주인을 만나 그와 접촉하며 옛 것의 유지를 위해 갈등하다가 끝내는 변화의 물결 속에 몸을 맡긴 뒤 재탄생하게 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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