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올바르다, 하지만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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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올바르다, 하지만 잘못되었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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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여자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우치다의 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 비판 | 우치다 타츠루 지음 | 김석중 옮김 | 서커스출판상회 | 276쪽

이 책은 우치다 타츠루의 페미니즘 언어론과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를 통해 바라보는 페미니즘 영상론으로 구성돼 있다. 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이끈 시몬 드 보부아르, 뤼스 이리가라이, 쥘리아 크리스테바, 쇼샤나 펠먼, 크리스틴 델피 등 50여년에 걸쳐 서구 페미니즘을 이끈 대표적인 사상가들의 언어론과 이야기론을 우치다 특유의 간결한 표현으로 개괄적으로 검토했다. 현대 헐리우드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 시리즈 『에이리언』에 대한 심도 있는 비평을 통해 페미니즘을 둘러싼 남성의 집단 무의식이 어떻게 영상기호와 이야기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부인 페미니즘 언어론은 프로이트의 『여성성에 관하여』라는 글에 대한 비판으로 남성들의 젠더 블라인드니스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살펴보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의 작업으로 시작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여성적 시각에서의 문제 제기를 통해 페미니스트들은 이전까지는 은폐되어 있던 사회의 일면을 드러내는 데 성공을 거둔다. 80년대 이후 점점 급진화된 페미니즘은 언어론과 이야기의 해석에서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해석을 ‘부권제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해석’이라고 내치면서 점차 교조화되고 신학적이 되어감으로써 공감을 잃게 되었고 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때이른 종말을 고하게 됐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우치다 타츠루는 예리한 논증 과정을 통해 페미니즘 언어론의 최고의 성취가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라캉, 레비나스, 롤랑 바르트 등의 사상에 힘입어 그들의 이론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언어와 주체의 문제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어려움이란 인간의 보편적 숙명이며 거기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 저자 우치다 타츠루(內田樹)
▲ 저자 우치다 타츠루(內田樹)

2부 페미니즘 영화론은 약 20년에 걸쳐 만들어진 『에이리언』 시리즈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스타 카테고리에 들어 있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에이리언』은 여성의 사회 진출 가속화로 인한 페미니즘의 요청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 상업적으로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약 20년에 걸쳐 4편까지 만들어져 시리즈화된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즘의 요청에 대한 응답이라는 외면과는 다른 층위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과 급진화되는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집단 무의식이 영상기호로 곳곳에 난무하고 있다. 에이리언이 여성의 임신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메타포라는 탁견과 영상과 이야기 속에 숨겨진 전설과 민담의 원형이 현대적인 SF 영화에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분석하고 있는 이 글은 탁월한 영화 비평으로도 흥미진진하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숙명에 관해 말할 때, 그 통찰이 심원하면 심원할수록 그 통찰은 남성도 포함한 인간 그 자체의 숙명에도 타당하다. 그것은 생각해보면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남성도 여성도 양쪽 다 성 질서라고 하는 감옥의 수인(囚人)이라고 하는 원(原)사실에 비한다면, 감옥의 형태나 기능의 차이는 거의 논의할 만한 주제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그 사회적 기능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을 '사회적 능력의 차이는 성차에 우선한다'고 바꿔 읽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오늘날 ‘사회적 능력’이라고 불리는 익숙해진 단어는, 단적으로 ‘돈을 버는 능력’을 말하고, 그것이 만인에게 있어서 우선적으로 개발돼야 하는 인간적 능력으로 간주되는 것은, 극히 한정된 역사적 조건하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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