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보는 '모성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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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보는 '모성 신화'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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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숭배와 혐오: 모성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 재클린 로즈 지음 | 김영아 옮김 | 창비 | 308쪽

어머니는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아온 영역으로, 비교적 최근에야 ‘모성 연구/어머니 연구’(motherhood studies)라는 독립적인 연구 분야가 자리잡게 되었다. 어머니 연구의 관심은 섹슈얼리티의 문제부터 평화, 종교, 제도, 문학, 일, 대중문화, 보건, 돌봄, 인종, 종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다. 페미니즘은 ‘제도’로서의 모성과 ‘경험’으로서의 모성을 구분해 한편으로는 제도화된 모성의 신화를 해체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모성의 경험을 페미니즘적으로 전유하는 이중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두 작업은 서로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모성에 대한 서구 이론가들의 연구와 데이터를 망라해 어머니가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어머니가 아이에게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 어머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탐구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공적 영역에서 배제된다는 페미니즘의 익숙한 주장에 하나의 차원을 더한다. ‘숭고한 모성’의 신화를 믿지 않고도 낯선 이를 품어 키운다는 확장된 모성의 가능성을 탐색함으로써 어머니가 된다는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라면 저자의 분석에서 유의미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성주의와 인간의 조건, 문명사를 연결하는 고전으로 모성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는 페미니즘 필독서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1세기 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유럽과 미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시리아까지, 또 장르적으로는 그리스비극과 셰익스피어의 극, 근현대 소설과 시와 같은 본격문학에서 영화, TV 드라마, 만화, 뮤직비디오 같은 대중문화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모성 경험을 해부한다. 이는 하나같이 가부장제하 모성의 이상 아래 고통받으면서도 그에 맞서 욕망하고 싸우는 어머니들의 '고통과 희열'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로즈는 이 기록들을 통해 “어머니는 본성상 체제 전복적이며, 한번도 겉보기나 세상의 기대치와 일치했던 적이 없다”(30면)는 점을 상기시킨다.

▲ 저자 재클린 로즈(Jacqueline Rose)
▲ 저자 재클린 로즈(Jacqueline Rose)

로즈의 모성 연구의 또다른 특징은 모성의 신화를 요구하고 유지하는 사회 정치적 기제에 대한 분석보다 오히려 그 심연에 자리한 무의식적인 심리작용에 대한 탐색에 주안점을 둔다는 점이다. 그가 일관되게 지적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어머니는 공적·정치적 세계에서 배제된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가정을 벗어나 공적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익숙한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모성에 대한 숭배와 혐오라는 우리의 이중적 태도가 단순히 평등이나 권리 회복으로 해결할 수 없는, 훨씬 더 뿌리 깊은 대립에 기초한다는 분석이 로즈의 모성 연구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로즈는 영국에서 매년 자그마치 5만 4000명의 여성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고 있으며 새로 어머니가 된 여성 중 77퍼센트가 일터에서 차별과 모욕, 고용인과 국가에 짐이 된다는 암시 등 부정적 대우를 경험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신자유주의의 모성 혐오를 지적한다. 물론 이는 신자유주의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지만 그 아래에는 무의식적 혐오가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어머니와 모성에 대한 가학증과 혐오의 바탕에는 자신에게 의존적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자리한다. 완벽한 자족이라는 이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우파 정치인이 난민, 가난한 어머니, 싱글맘을 향해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어머니는 우리 모두가 ‘여자에게서 태어난 인간’임을 환기함으로써 우리가 자족적이며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믿음, “우리의 몸은 우리의 재산이며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의지에 종속”된다(211면)는 근대적 믿음을 흔드는 존재다. 그래서 사회는 어머니의 육체를 공적 영역에서 지우고자 한다.

이 책에서 로즈가 제시하는 모성에 대한 새로운 관념은 “국가 간, 개인 간 경계를 견고히 하며 스스로를 돌보고 확고하게 지키는 것만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윤리적 의무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목소리”(16면)가 점점 커져가는 이 시대에 깊은 울림을 준다. 풍부하고 흥미로운 레퍼런스와 예리한 통찰과 모순을 짚어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탐구하고 싶은 페미니스트 독자는 물론, 일반 독자에게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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