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소비 과잉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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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소비 과잉시대
  • 나은영 서강대·사회심리학
  • 승인 201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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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요즘 많은 사람이 부정적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디어의 홍수 시대에 여기저기서 쏟아져 들어오는 과잉 정보, 특히 그중에서도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정보들이 큰 이유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립하고 있는 크고 작은 진영 간 갈등과 반목에 기인하는 부정적 감정을 우리 일반인들이 고스란히 대리 경험하며 대리전쟁을 하느라 우리의 소중한 감정이 과도하게 소비되고 있다.

감정을 구분할 때 일차적으로는 긍정-부정, 즉 유쾌-불쾌 차원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발생하는 감정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가 또는 가라앉히는가 하는 차원도 유쾌-불쾌 차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와 같은 감정의 ‘각성’ 수준이 높으면서 긍정적인 정서는 신남, 짜릿함, 흥미진진함 등이며, 각성 수준이 낮으면서 긍정적인 정서는 평화로움, 행복감, 안도감 등이다.

사실 이러한 긍정적 감정들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면 지금처럼 염려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는 분노와 원망, 슬픔과 우울 등 부정적 정서가 만연해 있어 걱정스럽다. 감정 구분 차원에서 분노와 원망은 각성 수준이 높으면서 부정적인 정서이며, 슬픔과 우울은 각성 수준이 낮으면서 부정적인 정서에 해당한다. 전자는 파괴적 에너지를 발산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후자는 무기력함 속에서 아무런 시도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야기할 수 있다.

뉴스에는 대개 긍정적 내용보다 부정적 내용이 더 많다. 그 이유는 일상생활이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이루어져 가면 크게 새로울 것이 없어 뉴스 가치가 떨어지지만, 일상생활에 뭔가 좋지 않은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얼른 알려야 할 필요성이 커져 뉴스 가치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뉴스를 많이 볼수록 왠지 더 우울해지거나 화가 나는 경우가 많다.

예전처럼 미디어가 덜 발달했던 시대에는 우리가 접하는 뉴스의 양도 적었고, 따라서 꼭 필요한 뉴스만 접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요즘처럼 첨단 미디어가 눈부시게 발달한 시대에는 우리가 접하는 뉴스 및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정보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불필요하거나 우리 일상생활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는 소식까지 우리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접하게 되는 뉴스나 정보 중에는 간혹 미담이나 즐거운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지 않은 뉴스인 경우가 많다. 대체로 긍정-부정 차원에서는 부정적 정서를 일으키는 뉴스가 많고, 조용한 또는 시끄러운 마음의 상태를 유발하는 각성 차원에서는 대개 조용한 쪽보다는 시끄러운 쪽의 마음을 일으키는 뉴스가 많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부정적이면서 각성 수준을 높여 마음을 어지럽히는’ 뉴스의 쓰나미 속에 살아가게 된다. 더 나아가, 이런 뉴스를 이 매체에서 접한 후 저 매체에서 또 반복하여 접함으로써 ‘높은 각성 상태의 부정적 감정’을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느끼게 된다.

물론 뉴스 중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느 진영과 다른 진영이 싸우는 내용의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면, 우리가 마치 그들을 대신해 감정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온라인에서 이러한 각 진영을 대표하는, 또는 대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끼리의 감정 표현은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힐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그 언어가 거칠고 날카롭다. 그러한 언어들로 인해 우리의 부정적 감정들은 더욱 격화되어, 우리 사회는 상처 입은 마음의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반면, 정작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충을 경청하며 힐링을 해 줄 사람들은 점점 줄어든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감정적 대리전을 하며 일상생활을 방해받아야 할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벅찬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은 과연 요원한 일일까. 말로만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진정 한발 한발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 국민을 이끌어 갈, 우리에게 긍정적 정서를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줄 주체는 정말 없는 것일까. 개인이 스스로 안간힘을 쓰며 부정적 정서에 물들지 않으려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발전적 도약의 기회를 찾으려고 애쓰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

이제는 미디어에서 진영 간의 갈등과 반목보다는 미래와 희망의 언어, 상생과 실천의 언어를 보고 싶다. 상대를 소탕하려는 작전 세력이 아닌,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의 리더를 보고 싶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부정 감정의 과잉소비 시대를 벗어나 긍정 감정으로 충만한 진취적 기상을 발휘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나은영 서강대·사회심리학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 미국 예일대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및 학장으로 있으며, 한국방송학회 부회장,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미디어심리학》, 《인간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번역서로는 《정신, 자아, 사회》 등이 있다.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했고, 20여 년 간의 학술 업적으로 Marquis Who’s Who의 “2018 Albert Nelson Marquis Lifetime Achievement Award”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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