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자기 진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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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자기 진실성
  •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독일현대철학
  • 승인 201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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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이른바 가짜 뉴스가 이슈화되고 짧은 논의가 있었던 것이 작년인 듯싶다. 지식인들이 가짜 뉴스를 직·간접적으로 생산 유통하는 매체에 그것의 위험성을 알리고, 진실만을 다룬다고 주장하는 매체에서 그와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모습이 여지 저기서 보였다. 사회 이슈도 어느덧 유향의 추세처럼 ‘왔다’, ‘지나간다’, ‘잊혀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등장한다. 가짜 뉴스에 대응하는 지식인들의 모습도 그 흐름에 초대받고 잠시 쳐다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이것은 비단 이슈로 인해 소환된 지식인의 모습만이 아니라 학교 안과 밖의 지식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가짜 뉴스를 ‘자기 진실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인은 늘 가짜 뉴스 생산의 조력자였거나 유통업자였다. 넓은 의미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곡학아세하는 지식인들도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과거 어두운 시대에 권력 옆에 섰던 지식인, 권력의 노예를 자처했던 지식인, 오늘날 신념과 자기 진실성이라는 이름으로 ‘당파적 지식인’ 노릇을 하는 사람들…. 문제는 이들이다. 당파적 지시인은 베버식으로 표현하면 그저 신념윤리에 빠져 자기 신념에 대한 성찰 능력을 극도로 자제하거나 맹목성과 실천적 사명감을 혼동하는 사람이다. 슬픈 현실은 좌파, 우파를 불문하고, 또 대중적 지식인과 전문적 지식인을 불문하고 당파적 지식인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신도’들의 수가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좌우하는 형국이다. 물론 이들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것 이상으로 폐해가 있어 보인다. 

자기 진실성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행위와 그 행위와 관련한 그들의 언술을 보자면, 플라톤이 소피스트를 비판했던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플라톤이 본 소피스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과 옹호의 논리를 그 누구보다도 잘 해내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루소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네 번째 산책 편에서 같은 얘기를 한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실이나 사건 등에 관해 말하는 자 중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진실한 사람’이 있지만, 자기와 연관된 사실에 관해서는 최대한 유리하게 포장하며 교묘한 거짓말을 통해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누구나 그렇고, 지식인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볼 때 그와 같은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도덕적 알리바이다. 문제는 당파적 지식인에게 그러한 모습이 자주 나타나며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데 있다. 

당파적 지식인의 자기 진실성 문제와 관련해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가 있다. ‘왜 아우슈비츠를 막지 못했는가’, ‘아우슈비츠의 재발 방지를 위해, 성숙을 위한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천착했던 아도르노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다.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교육’, ‘위선에 대해 혐오할 수 있는 교육’을 강조한다. 내가 볼 때 이것이 당파적 지식인의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파적 지식인은 사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안과 밖에 빈번하게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공익, 공공선은 머릿속에 없고 자기 이익에 골몰하는 속류화된 교수군, 유사 경영자를 자처하며 강사법을 악용하는 관료화된 교수군, 학술 공동체의 일원인 또 다른 교수들의 고통에 눈을 감고 있는 조합주의화된 교수협의회 지지자들, 자기 편의적 고려 하에 학위 남발, 학점 남발하는 교수들, 합리성의 이름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학교 안과 밖의 의사결정자들…. 나는 ‘학교 안과 밖에 온갖 종류의 당파적 지식인이 있다’라는 의미 없는 테제를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내가 과연 당파적 지식인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시도, 자기 진실성에 대한 민감성을 중단 없이 확인하려는 지식인이 오늘날 양심적 지성이라는 소박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대학 안팎의 파고가 높을 때일수록,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이 증가할수록 자기 진실성, 곧 양심적 지성에 근거한 문제 접근이 더욱더 필요하다.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독일현대철학

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철학교수로 베를린 자유대에서 아도르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유럽철학 편집위원,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대전인문예술포럼 부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사회철학, 사회이론, 문화예술철학, 고전교육 등이다. 저서로는 『부정과 유토피아』,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 『아도르노의 문화철학』,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이론』,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비판』, 『역사철학, 21세기와 대화하다』(공저) 등이 있으며, 그 외 고전교육 및 예술 관련 책도 다수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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