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① 정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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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① 정치 권력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1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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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변기용의 ‘우문현답’ -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영국의 종교 역사가이자, 정치가인 John Dalberg-Acton 경은 1887년 성공회 주교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란 후세에 널리 회자되는 명언을 남겼다. 이러한 그의 우려를 담아 미국은 18세기 후반 입법-사법-행정의 삼권 분립과 상호 견제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정체(政體)를 신천지 아메리카 대륙에 구현한다.

최근 우리 교육정책 결정과정에서 집권 정치세력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정책 과정에서 합리성이 침해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보수-진보-보수-진보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동일한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집권 세력의 교육정책 방향이 급변하고 있다. 합리적 논거에 기초한 교육정책의 질 개선을 위한 토론과 공론화 과정보다는, 진영논리에 따라 적과 나를 나누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틀 짓기(framing)’ 논의 구조가 이러한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학생과 사회의 편익을 위해 ‘무엇을 개선할 것인가’ 라는 논의 구조가 아니라 정치 이념(때로는 파당적 이해)에 따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가’라는 구도로 논의의 장이 만들어질 때, 남는 것은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과 같은 진영 간 갈등과 대립의 재생산뿐이다.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축적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특정 정권이 파당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만든 정책에 대해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선거용 공약은 대체로 ’패거리 사고(group thinking)‘에 기초하여 짧은 시간 동안 부실하게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타당성보다는 51:49의 정치적 셈법에 따라 정략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설령 공약으로 제시되었다 하더라도 공론화 과정 없이 이를 그대로 집권 정부의 국정과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의 나쁜 기억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정부와 관료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지 않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정부는 원래 제대로 조직되지 못한 국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곳이다. 정치권력에 문제가 있다면 행정부에서 전문성과 소신을 가지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과감히 지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행정부의 검증 기능이 사실상 와해되고 있다. 단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초래한 최순실 사태를 보면 힘의 균형추가 지나치게 정파적(심지어 개인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정치권력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가 철저한 ‘을’의 위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은 별로 개선의 조짐이 없는 듯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자사고 폐지 논쟁, 정시 확대 정책 결정과정에서 학생과 사회적 편익을 균형 있게 논의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진보-보수 진영 간의 이념 대립을 바로 교육개혁으로 착각하는 정치 권력의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행태와 이를 뒷받침하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습된 편견’이 해묵은 정치적 논쟁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 있을 뿐이다.

합리적 교육정책 결정을 위해서는 정치와 행정 간에 ‘생산적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때문이다. 생산적 긴장 관계란 ‘지속적으로 상호 간을 견제하면서도 서로의 발전을 위하여 지원해 주는 관계’를 말한다. 정부는 당연히 국민으로부터 수권 받은 정치권으로부터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지나친 파당적 이해에 함몰된 부당한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변자로서 적절한 견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예컨대 책임장관제, 공론화 기제를 통한 논의의 숙성 과정 필수화 등) 마련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후 교육부와 가진 첫 업무보고에서 ‘정권에 충성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지만, 현재와 같은 제도하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영혼 있는 공무원’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파당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정치권의 설익은 아이디어에 대해 누구도 이를 견제할 수 없다면 그 피해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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