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앎은 새롭게 검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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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앎은 새롭게 검증되어야 한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8.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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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한 권으로 읽는 칸트: 연역을 중심으로 | 이정일 지음 | 이학사 | 296쪽

칸트철학 가운데 지금도 살아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엇이고 극복되어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그 현재성을 드러내는 과제를 결코 멈출 수가 없다. 이때 칸트와 함께 그러나 칸트에 거역해서 사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신칸트학파에 속하는 빈델반트는 “칸트를 이해하는 것은 칸트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칸트학파가 칸트의 현재성을 놓고서 마르부르크학파와 하이델베르크의 서남학파로 분리되었듯이 오늘날에도 칸트를 공부하는 이들은 선험철학의 현재성을 둘러싼 논쟁을 놓고 세분화되고 있다. 칸트철학의 핵심이 무엇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 또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책에서 독일 관념론 및 형이상학을 연구해온 저자는 칸트가 변함없이 철학사의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칸트를 비판하든 추종하든 철학을 공부한다면 그와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칸트철학의 현재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런 칸트철학의 핵심과 그것을 둘러싼 구체적인 논의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도덕 형이상학 기초』, 『실천이성비판』, 『도덕 형이상학』, 『판단력비판』을 중심으로 제시하면서 칸트철학의 전모를 비판적으로 밝힌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히 칸트철학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주요 논점들 - 『순수이성비판』을 중심으로 예를 들면 ‘수학은 종합판단인가?’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의 경계는 무엇인가?’ ‘범주의 위상은 절대적인가?’ ‘범주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앎은 정말 매개적이기만 한 것인가?’ ‘범주 자체는 진리가 될 수 있는가?’ ‘물자체는 어디에 있는가?’ - 의 현재적 의의를 비판적으로 논변하고 있다는 데 그 의의와 특징이 있다.

칸트가 그의 시대에 절대적인 지위를 누린 뉴턴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뉴턴 물리학은 시공간과 중력 그리고 질량과 에너지의 파악에 있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비판적으로 재구성되었다. 따라서 순수 자연과학과 순수 수학의 학문적 근거를 정당화하고자 한 칸트의 선험철학도 몇 가지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칸트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과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비판과 검증을 통과하는 것은 진리의 자격을 얻는다. “아직도 비판적 길만이 열려 있다”라는 칸트의 기본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책은 그런 비판의 과정을 통해서 칸트철학의 중요 논점과 현재성을 정밀하게 검토해나간다. 칸트 연구에 있어서 밝혀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태 자체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해야 하고 그런 만큼 칸트의 선험철학적 기획 자체를 사태와 대결하게 하여 그 현재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고 이 책은 호소한다.

▲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4. 22~1804.2.12)
▲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4. 22~1804.2.12)

칸트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빠른 길은 연역을 통하는 것이다. 연역은 칸트철학의 심장이며, 칸트를 연구하면서 연역을 도외시하는 것은 칸트를 연구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칸트에 대한 수많은 연구는 연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고 이 점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연역은 경험 성립의 가능 근거와 자연의 합법칙성에 대한 정당화 해명이다. 칸트는 연역을 지식 성립의 가능 근거에 대한 연역, 행위 성립의 무제약적 보편화 요구에 대한 연역, 비개념적 취미판단의 보편화 요구에 대한 연역으로 세분화하고 각각의 테마를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다루었다.

연역을 통해 칸트는 순수 자연과학과 순수수학을 성립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이 무엇인지 따지고 이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칸트의 학문적 근거 지음은 현대의 수학과 물리학에 의해 비판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연역적 추론을 바탕으로 칸트는 인과율의 객관적 타당성을 자연과학의 기초로 설정했지만, 양자론은 인과율을 더 이상 결정론으로 보지 않는다. 양자 영역에서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통해 운동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칸트의 연역은 실패한 기획인가? 이 책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양자론자들은 칸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칸트가 말한 인과의 타당성 적용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칸트의 인과를 수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칸트의 인과는 타당성에 있어서 그 적용 범위가 제한될 뿐이지 부정되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칸트철학 가운데 지금도 살아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엇이고 극복되어 사라진 것은 무엇인지를 구별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그 과정을 통해 칸트철학의 현재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스스로 전통 철학과 결별하고자 한 칸트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비판의 근거를 세운 지점에서 자신의 철학 또한 비판적으로 검증될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러나 칸트를 따르든 비판하든 칸트가 현대 철학과 인식론의 중심에 서 있음은 분명하다. 칸트가 자신의 철학을 비판철학으로 규정했듯이 칸트를 판독하는 우리도 칸트와 함께 그러나 칸트에 거역해서 사고하는 것을 지속해야 한다고 이 책은 거듭 강조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모든 앎은 새롭게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칸트철학을 둘러싼 현대의 논쟁은 그 논쟁 구조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그 타당성과 현재성을 지속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제1부에서는 『순수이성비판』을 중심으로 칸트 비판철학의 성립 배경을 알아보고 연역의 대상이 되는 범주의 근원과 적용 그리고 적용의 한계를 논한다. 더 이상 필연성 증명이 아닌 칸트철학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그 타당성과 함께 현재성을 검토한다. 제2부에서는 『도덕 형이상학 기초』, 『실천이성비판』, 『도덕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칸트가 말하는 도덕성의 근거를 살핀다. 칸트 윤리학과 윤리의 학문적 근거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다루며 그 현재성을 알아본다. 제3부에서는 『판단력비판』을 중심으로 칸트 미학의 특징을 분석한다. 미에 대한 보편 규정의 부재는 칸트 미학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미학은 칸트가 제기한 미적 판단의 자율성에 의존하여 성립해왔음을 강조하며 그 타당성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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