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종교·과학의 경계를 허문 '빛'의 총서
상태바
예술·종교·과학의 경계를 허문 '빛'의 총서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8.23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소개]

■ 빛: 신화와 과학, 문명 오디세이 | 브루스 왓슨 지음 |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456쪽

빛은 신화와 종교에서 신성함과 경이, 찬양의 대상이고 예술과 문학에서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의 상징이다.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며 에너지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빛은 심지어 철학과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까지 지배하는 요소다. 오늘날 스마트폰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전자레인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이렇듯 온갖 분야에 두루 퍼져 있는 주제인 ‘빛’을, 한 사람이 총체적으로 탐구해 단행본으로 펴내는 작업은 거의 불가능한 경지라고 여겨져 왔다.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빵과 장미》, 《사코와 반제티》, 《프리덤서머, 1964》)을 파고들어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으로 언론의 찬사를 받는 브루스 왓슨이 이번에는 ‘빛의 평전’을 내놓았다. ‘신화와 과학, 문명 오디세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인류가 남긴 신화와 경전, 예술과 문학 작품, 과학 논문과 실험 자료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연구와 독서, 통찰력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빛 이야기’는 군중이 모여 하지의 일출에 환호하는 스톤헨지에서 시작한다. 태고의 빛을 설명한 신화들을 살펴본 뒤, 이야기는 초창기 철학자들의 의문으로 넘어가고, 이어 불교 사원에서 성서까지 빛이 신성의 핵심이었던 오랜 역사를 훑어본다. 어둠과 절망에 맞선 중세 건축가들은 빛이 스미는 성당을 지었고, 단테는 '순수한 빛의 천국'을 꿈꾸었다. 다빈치의 조언에 따라 르네상스 화가들은 빛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과학혁명의 시대에 갈릴레오는 망원경에 빛을 모았다. 데카르트는 무지개를 측정했고, 뉴턴은 프리즘을 사용해 광학 분야의 기틀을 다졌다.

뉴턴 이후에도 빛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에디슨 시대를 거쳐 레이저 시대로 이어지며 《빛》은 빛이 촉발한 새로운 경이로움인 상대성이론, 양자전기역학, 광섬유 등을 드러내 보인다. 레이저와 LED가 오늘날 일상에서 기적을 펼쳐 보이고 있지만, 빛은 여전히 영원한 매혹을 내뿜는다. 절정기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생 동안 나는 빛이 무엇인지 숙고할 것이다.” 브루스 왓슨은 빛에 대한 그런 호기심을 탐구하고 기리고 있다. 스톤헨지, 고딕 성당, 모네의 캔버스, 뉴턴의 프리즘, 파인먼의 강의실까지,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인류의 긴 여정을 좇아가는 ‘빛의 대서사시’를 펼쳐 보인다.

소크라테스 이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된 빛에 대한 질문은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광학》), 프톨레마이오스(《천문학 집대성》)의 탐구와 실험으로 이어졌고, 훗날 11세기 아라비아의 과학자 이븐 알하이삼(알하첸)이 바통을 이어받아 광학의 기틀을 다졌다. ‘알하첸’ (Alhacen)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번역된 그의 저술들은 케플러, 데카르트, 갈릴레오, 뉴턴에게 영향을 끼쳤다.

유사 이래 빛에 대한 갈망과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과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리스 신전의 숭고한 빛은 암흑시대 중세 성당에서 찬란한 고딕의 빛을 내뿜었으며, 이슬람 세계 모스크의 첨탑 미나레트에서 빛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빛은 그림자와 원근법을 대동해 렘브란트와 모네, 고흐, 터너의 화폭에 가득 담겼으며, 음악으로 빛을 표현하려는 노력 또한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로 최고조에 달했다. 바이런과 키츠, 블레이크의 황홀한 내면 세계의 자유와 일렁이는 감성은 뉴턴을 ‘혼이 없는 수학자’로 비판했고 루소의 ‘사회계약’이나 칸트의 ‘순수이성’을 거부했다. 이렇게 실증주의와 계몽주의를 ‘간섭하는 지성’으로 몰아세운 낭만주의 시대는 또다시 매혹적이고 웅장한 빛의 협주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빛의 과학은 언제나 호기심 강한 사람들을 부추기고 기술혁신과 발명을 뒷받침했다. 거울과 렌즈, 망원경과 현미경, 프리즘을 통해 ‘반사’하고 ‘굴절’하고 ‘회절’하고 ‘투과’하는 빛의 과학은 마침내 현대 문명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렸다. 마술과도 같은 사진과 영화는 파리 시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고, 야경꾼과 자경단을 몰아낸 백열전구와 가로등은 뉴욕과 런던, 암스테르담의 거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오늘날 해마다 베를린과 시카고, 리옹, 샹하이, 뭄바이, 미얀마는 빛의 축제로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