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행복하지 않으면 인간 또한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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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행복하지 않으면 인간 또한 행복하지 않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8.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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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동물 기계: 새로운 공장식 축산 | 루스 해리슨 지음 | 레이철 카슨 서문 | 강정미 옮김 | 에이도스 | 388쪽

영국의 동물복지 활동가인 루스 해리슨이 1964년에 쓴 동물복지 분야의 고전으로 농장동물의 불행한 삶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 그리고 인간의 건강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오늘날 동물복지 과학의 토대를 놓은 책이다. 저자가 당시 새롭게 부상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아래 사료를 먹고 고기를 만드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농장동물들의 비참한 삶을 직접 조사하고 농부, 축산업자, 정부 관계자, 과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료를 수집해서 쓴 이 책은 동물복지, 동물권, ‘동물의 5대 자유’ 개념의 기초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은 공장식 육계 시설, 도계장, 배터리 케이지, 육우 축사 등 밀집식 사육시설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축산업에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을 균형감 있게 소개하고 또 여기에 반박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담았다. 『동물 기계』의 출간은 당시 영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자신들이 동물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고 식탁에 오르는 고기를 아무 생각 없이 풍족하게 누리던 영국 시민들은 야만적인 사육 풍경에 충격을 받았다.

영국정부는 곧바로 프랜시스 브람벨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농장동물의 복지를 점검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1년 후 나온 것이 바로〈브람벨 리포트〉였다. 이 리포트로 인해 이후 유럽과 세계 각국에서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현재의 ‘동물의 5대 자유’가 정초되었다. 동물복지, 동물권, 동물윤리 등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논의가 학자 사회에서 시작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동물 기계』는 동물복지에 관한 한 모든 논의의 시작이었고, 동물복지와 동물권의 시발점이자, ‘미토콘드리아 DNA’라 할 수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으로 인간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는 팬데믹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다시금 공장식 축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공장식 축산이다.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끊어버리고, 축사에 동물들을 밀집해서 사육하며, 각종 약물과 항생제로 고기를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은 이미 루스 해리슨도 지적했다시피 전염병에 매우 취약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전염되는 병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 동물기계의 저자 Ruth Harrison와 원서 표지(Animal-Machines)
▲ 동물기계의 저자 Ruth Harrison와 원서 표지(Animal-Machines)

이미 『동물 기계』가 나온 1960년대에도 밀집식 사육시설에 감금된 가축들이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 하지만 『동물 기계』가 출간된 당시나 지금이나 약물이 전염병을 통제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다.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료에 항생제를 넣고,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축사에 살충제를 뿌리고, 더 빨리 동물들의 살을 찌우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넣는다. 밀집식 사육과 약물과 전염병이라는 악순환으로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마저 위험에 처한 상황이다.

해리슨은 책을 쓸 당시 ‘밀집식 사육으로 생산성을 높여 영양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싸게 고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업계의 논리와 싸워야 했다. 비좁은 땅에서 고기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부족한 식량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렇게 높아진 생산성으로 식탁이 풍성해지고 영양이 과다해져도 고기 소비는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늘었다. 공장식 축산 업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논리를 내세운다. ‘우리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생산할 뿐이다.’

해리슨은 단순히 공장식 축산 방식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의 실상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런 새로운 사육방식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를 환경, 식품의 품질, 건강 등 다양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농장의 들판에서 살던 동물들을 땅과 격리된 밀집식 축사에 가두면서 시작된 공장식 축산은 우리가 식탁에서 마주하는 식품의 유래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하게 만든다. 이런 무관심과 무지는 저자가 지적하듯이 소비자들을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암묵적 동조자로 만든다. 생산자의 ‘경제성 논리’와 소비자의 ‘무관심’ 속에서 동물들은 참담한 삶을, 학대받는 삶을 살다 가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갖은 항생제와 약물을 먹고 사육된 고기들은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해리슨은 말한다. ‘고기를 먹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되고 있다.’

가로세로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비좁은 배터리 케이지에 갇혀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먹고 1년에 수백 개씩 달걀을 낳는 닭, 사우나 같은 양돈장에서 축 늘어진 채 다닥다닥 누워서 사육되는 돼지, 오직 육질이 흰 고기를 만들기 위해 철분이 부족한 먹이를 강제로 먹이고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사육 감금틀에 갇혀 옴짝달싹하지도 못한 채 사육되는 송아지. 바로 루스 해리슨이 이 책에서 묘사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의 모습이다.

생명으로 태어나 사료를 고기로 만드는 기계로 전락한 동물들의 삶을 보면서 해리슨은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인류가 우주를 탐험하고, 흥미진진하고 놀라운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20세기 중반에 어떻게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것은 자신을 고상하다 여기고, 무엇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라’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영국 사람들에게 모순적인 야만이었다.” 해리슨은 묻는다. 이런 야만을 저질러가면서까지 인간은 고기를 얻기 위해 다른 동물들을 학대하고 생명을 죽일 권리가 있을까? 그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해리슨이 『동물 기계』를 쓴 1960년대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A4용지만 한 케이지에서 항생제와 살충제를 맞아가며 사육되는 닭들과 돼지와 소들이 여전히 우리 식탁 뒤편 축사에서 길러지고 있다. 공장식 축산과 관련해서  해리슨은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공장식 축산을 중단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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