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안정·처우 개선'한다던 강사법...강사들 "달라진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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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안정·처우 개선'한다던 강사법...강사들 "달라진 것 없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8.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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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법 시행 1년 만에 강사자리 1만5000개 증발
처우 달라졌나 질문에 절반 이상 '부정적'
"정부·대학, 제도 개선 위한 노력 필요"

강사법이 시행된지 1년이 지났지만 대학 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고용 안정 효과는 미비하고, 오히려 대학이 강사 구조조정에 나서며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강사의 고용 안정과 공정한 임용’이라는 강사법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한교조 "강사법 시행 1년...나아진 것 없어"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조)은 지난 5일 개정강사법 시행 1주년 성명서를 내고 “개정강사법 시행 1년이 된 지금, 우리의 환영을 저버리고 대학과 정부는 합의 정신을 배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사법은 ‘고등교육법’ 중 강사에 관한 일부 조문을 개정해 강사들의 신분 안정과 처우 개선을 돕고자 지난해 8월 1일자로 시행됐다. 강사의 임용 기간을 ‘1년 이상’으로 명시하고 3년간 ‘재임용 절차’를 보장해 강사들에게 더 안정적인 지위와 공정한 임용 기회를 보장한다는 게 골자다.

한교조는 강사법 시행 이후에도 대학과 정부가 강사들과 합의한 내용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현장의 위반 사례를 들었다. 한교조에 따르면 실제 공채 1년 후 재임용이 진행되는 대학에서 강좌명을 바꾸면서 강사 재임용을 거절하거나, 일부 전임교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강사를 임용하기 위해 이미 임용된 강사에게 재임용 신청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교조는 "3년간 재임용 절차를 보장해야 하는 강사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 행위이며, 전임교원과 강사를 명백히 차별하는 탈법적 행위로 교원의 교권과 노동권을 존중하자는 개정강사법의 협의 정신을 짓밟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학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불법과 탈법을 감시하고 지도해야 할 교육부는 딴청만 부리고 있다"면서 "이제라도 교육부가 나서서 재임용 과정의 불법과 탈법성을 점검하고 강사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인 대학들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 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사법 시행 이후에도 강사들의 처우·지위가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교조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 △공채 및 재임용 과정에서의 불법·탈법 방지 △방학 중 임금 지급 예산 확보 △원격수업 허용 철회, 불가피할 경우 강좌 증설 및 수강인원 최소화 △강좌 다양성 확대 △전임교원 확보 △공영형 사립대 도입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

한교조는 대학과 정부를 향해 "개정강사법의 합의 정신을 실현하고, 학문생태계가 제 기능을 수행해 미래 전략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진전된 정책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진균 한교조 부위원장은 "대학이 강사법 이전의 불공정한 관행을 버리지 않고 있다"며 "강사의 권익 보호를 위한 신고 창구를 설치하는 등 교육부의 책임있는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강사 400여명 "처우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빠져"

지난달 한교조가 소속 조합원 4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사법 시행 이후 기존보다 신분이 안정됐다고 체감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경우는 약 22%에 그쳤다. '기존과 같다'는 응답이 31.9%로 가장 많았고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26.2%, '매우 아니다'가 20%를 차지했다.

처우가 실질적으로 개선됐다는 응답은 24.5%(매우 그렇다 2.3%·약간 그렇다 22.2%)에 불과했다. 37.9%는 기존과 같다고 답했고 37.6%는 처우가 개선되지 않았다(별로 아니다 20.5%·매우 아니다17.1%)라고 답했다.

처우 개선을 체감하는 구체적인 사례로는 응답자 169명 중 79명(46.7%)이 '강의료 인상'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연구공간 배정' 22명(13%), '행정지원' 18명(10.7%), 도서관 이용이 10명(5.9%)으로 나타났다. 반면 처우가 열악해진 사례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 238명 가운데 116명(48.7%)이 강의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한교조 김용섭 위원장은 "내달 초 열리는 교육부·대학과의 발전협의회에서 강사법 시행령 보완 및 직장 건강보험 가입을 허용하고 퇴직금·방학 중 임금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며 "교원 신분이 된 만큼 대학 총장 선출 등 참정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사법 개정안으로 인한 대학 강사의 일자리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강사법 시행 전후로 지금까지 해고된 강사는 15,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315개 사립대학 연간 재정 중 시간강사의 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일반 대학의 총 강사 수는 2018년 2학기 5만1448명에서 2019년 1학기 4만923명, 2019년 2학기 3만5565명으로 감소했다. 강사법 시행 첫 학기인 지난해 2학기 강사 수가 불과 1년 전에 비해 1만5883명이 줄어든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강사법 이후 고용 유지가 불안할 것이라는 점은 예상된 일"이라며 "지난해 2학기는 특히 강사법 시행 첫 학기라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학이 강사를 줄이고 있는 이유는 강사법 시행 이후 강사에게 교원 지위가 부여되면서 재정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강사법은 강사에게 1년 이상의 전임교원 자격을 보장하고, 방학 중에 임금을 지급하는 한편, 강좌 수와 관계없이 퇴직금도 보장해야 한다.

이에 부담을 느낀 일부 대학들은 강사법 시행 이전부터 강사를 줄이는 대신 초빙교원과 겸임교원을 늘리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해 2학기 초빙교원과 겸임교원을 합한 수는 전년 대비 7000명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등록금이 수년간 동결되고,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대학이 인건비를 추가로 지급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강사법 시행이 1년 지난 시점에서 정부가 강사, 대학 등 이해당사자와 함께 현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강사법 이후 대학 내 강사라는 말의 위상은 올라갔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정부가 시간강사를 대학의 구성원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면 강사법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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