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마왕』의 재출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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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마왕』의 재출간에 부쳐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 승인 2020.08.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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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Le roi des Aulnes』(민음사)이 다시 출간되었다. 24년 전에 처음으로 번역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문학사에서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작품들 중에 국내에 소개되었다가 독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책이 제법 있다. 번역의 질, 출판사의 규모, 독자의 관심 등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마왕』의 경우는 국내에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이 거의 소개되지 않은 시기에 허구와 신화, 역사가 뒤섞여 있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투르니에의 대부분의 작품이 번역되었고 관련된 연구도 많고 이제는 현존하는 작가가 아닌 그의 재출간된 소설이 독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미셸 투르니에의 작가 이전의 이력은 문학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독특하다. 처음에는 철학의 길을 걸었고 철학교수가 되려 했다. 방송국에서도 일했고 특히 독일문학을 프랑스어로 옮기는 번역자로서도 활동했다. 그는 자신이 철학교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꿈을 완전히 버리는 대신 우회로를 선택했다. 철학의 관념들을 문학으로 풀어내고 신화와 역사를 그 매개체로 삼았다. 그는 소설가가 되었지만,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스스로 지적하며 글쓰기에 대한 독특한 입장을 견지한다. 자신은 문학에 입문했지만 다른 곳(철학)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문학의 형식 자체에 대한 실험은 하지 않을 것이며,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재해석하여 다시 쓰거나 아무도 의미를 묻지 않는 ‘죽은 신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살아 있는 신화’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선언한다.

『마왕』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말에 태우고 달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인 괴테의 시, 「마왕」이 작품의 기본적인 모티브가 되고, 아기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넌 성 크리스토프 신화, 정착민과 유목민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동프러시아라는 공간의 신화적 시간으로의 회귀 등이 소설을 통해 변주되어 나타난다. 사실주의 작가임을 자처하고 동시대의 역사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쓰는 투르니에이지만 그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현실과 신화의 경계를 넘나들 준비가 되어있다. 『마왕』의 주인공 아벨 티포주는 이야기의 시작에서 예언적 선언을 한다. “나는 이 곳, 이 세상에 있었다. 천 년 전에, 십만 년 전에 지구가 아직은 헬륨으로 이루어진 천공 속에서 선회하는 불덩어리에 불과했을 때….” 그가 지니고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과 예지적 상상력, 아이를 납치하거나 잡아먹는 식인귀로서의 이미지 등은 분명 80년대 독자보다는 현재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다시 쓰기를 통한 가치의 전도(轉倒)를 줄곧 보여주었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이자 대표작인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에서는 로빈슨 크루소 신화를 통해 문명과 자연 혹은 문명인과 야만인에 대한 서구인들의 오랜 믿음에서 벗어난 반성적 성찰을 보여주었다.

▲ 『Le roi des Aulnes』
▲ 『Le roi des Aulnes』

『마왕』에서는 식인귀 신화와 동프러시아 땅이라는 공간에 대한 의미 묻기 등을 통해 이미지와 가치의 전도를 시도했다. 유목민 아벨의 후손임을 자각하고 있는 아벨 티포주는 거구의 몸집에 ‘식인귀’로 상징되는 이미지를 지니고 전쟁 중에 나치 군대를 위해 소년 생도를 징집하는 일을 맡는다. 그가 지니고 있는 식인귀 혹은 마왕의 이미지는 유대인 소년을 어깨에 짊어지고 구함으로써 성 크리스토프의 짊어짐을 통한 구원과 모세의 출애굽에 비견되면서 완전히 소멸된다. 신성한 땅, 동프러시아도 나치의 대량학살이 이루어지면서 추악한 공간으로 전도될 위기에서 그의 구원자적 행위를 통해 기원의 시간에 지니고 있었던 신성함을 되찾아 다시 태어난다.

투르니에의 작품은 그가 생존 작가였을 때부터 보수적인 프랑스 대학에서도 연구의 대상이었고 현대소설이면서도 고전의 지위를 얻었다. 비록 그는 문학을 통해 일정한 경향성을 만들어내지 않았고 누보로망 시대에 활동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의 실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신화와 기원의 세계, 불멸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다 ‘근원적인 것’에 도달한 현대의 문학에서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투르니에 문학의 전공자로서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적 성과를 담보한다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총서에 작가의 전집이 포함되어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마왕』이 재출간되어 기쁜 마음이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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