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혁명의 상상력을 안내하는 민중 반란의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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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혁명의 상상력을 안내하는 민중 반란의 역사서
  • 임운택 계명대·사회학/본지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20.08.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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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배성인 지음, 전국금속노동조합 기획, 나름북스, 480쪽, 2020.06)

▲ 프랑스혁명
▲ 프랑스혁명

인종적 소수자이자 동성애자로서 여권신장과 동성애 합법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흑인 페미니스트 시인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혁명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실제로 인류가 경험한 크고 작은 혁명의 역사가 이를 방증한다. 혁명은 사건에 초점을 맞추면 일회성이지만, 장구한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인류의 역사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일회성 이벤트일 수가 없다. 그러한 점에서 혁명의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훌륭한 교육의 질료이다.

주류학계에서는 의식적으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지만, ‘진보학술운동’에서는 그의 존재가 학술운동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닌(안타깝게도 그의 헌신과 노고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사실 진보진영 내에서 이러한 교육의 길라잡이 역할을 요란하지 않게 기꺼이 자처해왔다. 최근 자본주의 대전환의 시대에 대문자 R의 의미가 무엇인지 역사의 흐름을 좇아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는 그러한 점에서 실천적 진보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압축적으로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은 잊혀지고 있던 대문자 R의 의미를 통해 역사발전에서 주체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매우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 68혁명
▲ 68혁명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2008년 대 침체로 흔들리고 나서도 여전히 낡은 위기는 지속되는데, 새로운 질서는 이를 대체하지 못한 소위 ‘유기적 위기’ 상황에서 진보진영은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찾아내려고 부단히 애를 써왔다. 그런데도 새로운 역사의 변화는 신자유주의의 영향 속에 대문자 R보다는 소문자 r(reform)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길 수 없으면 주류에 합류하라’(If you can’t beat them, join with them)고 반성문을 쓰고 주류정치에 뛰어든 68세대가 신자유주의와의 타협 속에 1990년대 ‘제3의 길’을 주도했다면, 한때 혁명을 꿈꾸었던 우리의 n86세대 정치인들은 그에 비견되는 사회개혁의 청사진조차 없이 입법개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격세지감이다. 정치의 주류가 되고 보니 이제 대문자 R이 혁명(Revolution)이었는지, 정치적 낭만(Romance)이었는지 구분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이 책은 사회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3부 22장에 걸쳐 저자는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마르크스의 뛰어난 통찰력에 기대어 동서양의 장구한 혁명의 역사가 결국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 장삼이사의 역사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이러한 평범한 진리가 새삼스러운 것도 없고, 저서에 담긴 주요 내용이 논쟁적인 것도 없지만, 이러한 개별 혁명의 패치워크(patchwork)를 통해 저자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혁명의 진화과정이 그때그때 존재했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발발한 계급투쟁의 역사였으며, 그 주체는 생산력의 발전수준에 따라 변화해왔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노예, 농민, 노동자계급, 여성, 제3세계 인민까지 이 책이 다루는 혁명의 역사는 그러한 점에서 착취를 매개로 지배하는 세력에 대한 반란의 역사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고대사회부터 현대까지 22개의 혁명의 역사를 동서양을 가로질러 씨줄과 날줄로 엮는 일은 읽기에는 편해 보여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그러한 기획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나아가서 혁명이라는 자칫 무거운 주제를 저자가 서문에 적고 있듯 “대중의 언어로 쉽게 풀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로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475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저자의 고생에 비해 쉽게 읽혀지는 것은 저자의 기획이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특히 각 챕터별로 마치 교과서처럼 혁명의 의미를 요약하고, 참고문헌을 제시한 것은 추후 독자의 관심을 심화시키는 데 유익한 도움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저술이 교양 대중서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저술이 사회과학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 중의 하나인 혁명을 다루는 저술이기 때문이다. 혁명이 일회성 사건사를 넘어 역사발전과 변화의 주된 동력이 되는 이유는 혁명의 주체라는 행위와 그러한 행위와 상호작용하는 사회경제적 구조가 복합하게 연계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몇 가지 측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저자는 역사의 발전과정을 고대·중세, 근대, 현대로 나누어 계급투쟁의 역사를 서술하는데, 시대별 사회경제적 조건과 혁명의 촉매제가 시공간적으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고, 혁명의 역사가 독립된 사건사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술의 약점은 제3부 현대의 혁명에서 분명해지는데, 현대를 열던 러시아혁명에서 68혁명을 거쳐 마지막 장인 베트남 혁명사는 하나의 종결된 역사처럼 보이지만, 20/21세기 자본주의 체제와 현대 사회구조의 변화에 각 혁명의 이력현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견되며,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홉스봄이 지적하듯 20세기 사회주의는 붕괴하였지만, 잠시나마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지녔다가 다시 야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사회주의의 역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혁명의 역사가 베트남으로 끝나고 냉전의 종식 이후 새롭게 펼쳐진 일련의 저항운동, 예컨대 시애틀 전투를 상징으로 하는 ‘반세계화 운동’, ‘아랍의 봄’, ‘오큐파이’(Occupy) 운동 등이 빠진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이 일련의 혁명은 1990년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매우 강력한 저항운동으로 전통적 노동자 중심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민중 반란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에 대한 교양도서를 지향하는 저자의 의도는 이러한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모든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이 자동적으로 사회혁명을 촉발하지는 않는다. 민중이 당면한 사회경제 문제를 정치문제로 인지하고 주변환경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인식이 부재하는 한, 혁명은 흘러간 노래일 뿐이다. 역사 속에 담겨진 혁명의 의미를 새로운 실천적 인식의 전환을 위해 소환해내는 촉매제로서 충실한 역할이 이 책의 소임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나름 멋진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되며, 일독을 권한다.


임운택 계명대·사회학/본지 편집기획위원

독일 마부르크 대학교 사회학 박사. 현재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비판사회학회에서 발간하는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장, 한국이론사회학회 부회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을 맡고 있다. 주 연구분야는 정치경제학, 노사관계, 정치사회학, 현대 사회이론이다. 주요 저서로 <전환시대의 논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위기>, <경제의 디지털화와 노동의 미래>, 공저로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 <문화, 환경, 탈물질주의 사회정책>, <청년실업과 노동시장, 그리고 국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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