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차 관련 문헌을 총망라한 ‘다서(茶書)’ 완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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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차 관련 문헌을 총망라한 ‘다서(茶書)’ 완결판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8.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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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한국의 다서: 한국 차 문화사 자료 집성 | 정민, 유동훈 지음 | 김영사 | 600쪽

조선 지성사 탐구의 대가 정민 교수와 차 전문 연구자 유동훈 박사가 한국의 차 문화사를 한 권으로 집대성한 책이다. 차를 주제로 옛 지성인들이 기록한 시ㆍ논설ㆍ편지ㆍ절목 등 핵심 저술 30가지를 한데 모았다. 조선 전기부터 구한말까지 한중일을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를 총망라했다. 차의 역사와 유래, 애호와 부흥, 특징과 성질, 산지별 종류와 효능, 재배와 제다법, 음다 풍속, 경제성과 상품성에 이르기까지 차에 관한 역사와 교류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옛글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어 연구 자료로서의 효용과 글 읽는 맛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 학문ㆍ예술ㆍ문화 전방위에서 이뤄낸 한국 차 문화의 정수를 오롯이 느끼게 함과 동시에, 차 문화사 연구의 새로운 이론적 토대가 될 독보적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서는 조선 지성인들이 일구어온 차 문화사의 기념비적 저술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차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집대성한 이목의 〈다부(茶賦)〉부터 차 무역을 제창한 이덕리의 《기다》, 차 문화 중흥의 신호탄이 된 정약용의 〈걸명소(乞茗疏)〉, 차의 효용을 예찬한 초의 의순의 《동다송(東茶頌)》, 석탑에서 나온 700년 된 차의 기록을 담은 이상적의 〈기용단승설(記龍團勝雪)〉, 한국 차 문화사를 풀어 쓴 최초의 통사 문일평의 《차고사(茶故事)》까지. 인물과 작품을 시기별로 정리해 우리 차 문화 전반의 유구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냈다.

▲ 이목의 '다부'
▲ 이목의 '다부'

〈다부〉는 조선 전기 학자 이목이 지은 230구에 달하는 장시이다. 중국 역대 고전에서 차와 관련한 온갖 고사와 인물을 총동원했고, 차의 산지와 종류별 이름, 차의 효용과 약성까지 방대한 정보를 장강대하 같은 흐름으로 제시했다. 특히 해박한 지식으로 차에 대한 효능을 능청스럽게 예찬한 대목이 이채롭다. 이덕리의 《기다》는 국가 차원에서 차를 전매해 차 무역으로 국부창출 방안을 피력한 독창적 저술이다. 정약용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것을 정민 교수가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집안에서 원문을 발견해 연구함으로써 바로잡았다. 서설적 성격의 글과 차 일반론, 차 무역론의 구상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서사를 담았는데, 차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당시 상황에서 정확한 식견과 이해를 바탕으로 차 무역의 필요성을 제안한 것이 놀랍다.

정약용은 고질적인 체증을 앓았다. 그러다 만덕사 주지 아암 혜장에게 얻은 차로 체증을 다스릴 수 있었는데, 혜장에게 다시 차를 청하며 보낸 글이 〈걸명소〉이다. 상소문 형식을 빌려 장난스럽게 차를 구걸하는 형식으로, 차 문화의 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뜻깊은 글이다. 이를 기점으로 훗날 초의에게 이어지는 차 문화의 부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재치 있는 정약용의 문재(文才) 또한 엿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이 고려시대 절 가야사 접탑을 허물자 탑 속에서 700년 전 송나라 용단승설차 네 덩이를 발견하는데 〈기용단승설〉은 그에 관한 기록이다. 송나라 차가 세상에 출현하게 된 과정과 관련한 옛 기록을 두루 인용하여 차의 제조 연대와 탑에 봉안된 연유를 추정했다. 송나라와 고려의 음다 풍속에 대한 조선 학인(學人)의 치밀한 분석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고려 이전의 음다 풍속이 조선에 들어와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선 중기를 거치며 차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국 차 문화의 정체성인 떡차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 다양한 차 문화의 변화와 흐름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차 관련 사료의 집대성을 통해 차 문화사 연구의 통사적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두 가지 작품을 학계 최초로 소개한다. 바로 전승업의 〈다창위부(茶槍慰賦)〉와 조희룡의 〈허소치가 초의차를 선물한 데 감사하며〔謝許小癡贈草衣茶〕〉이다. 〈다창위부〉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전승업의 글이다. ‘다창(茶槍)’은 찻잎이 아직 펴지기 전 창처럼 돌돌 말린 상태, 즉 상등 품질의 가장 어린 찻잎을 말한다. 다창의 차가 주는 위로를 시로 노래한 것으로, 16세기 후반 차 문화를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허소치가 초의차를 선물한 데 감사하며〉는 19세기 서화가 조희룡의 작품이다. 소치 허련으로부터 초의선사가 만든 초의차를 선물 받고 감사의 뜻을 담아 친필로 써준 시첩 《철적도인시초》에 실려 있다. 예술적이고 유려한 표현력에서 차를 즐기던 당시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더불어 1850년 7월 16일 추사 김정희가 초의가 만든 차편(茶片)을 허련에게 받은 후 보낸 감사 편지가 남아 있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볼 때 당시 허련이 초의차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은 한국 차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우리의 차 문화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것은 차 문화 정체성 확립에 소홀했던 탓이 크다. 거기에 외산(外産) 다도의 무분별한 유입과 피상적인 다도 퍼포먼스로의 치중으로 차 문화가 점차 대중에게서 멀어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 울리는 일종의 경종이다. 한국 다서의 정본(正本)이라 할 수 있는 자료를 원문과 함께 제공하는 것은 공통된 차 문화를 향유하는 중국과 일본의 차학 연구자들에게도 놀랄 만한 일이다. 《한국의 다서》가 오늘날 차 문화의 끝 모를 침체에 대한 새로운 혜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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