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학 육성 논의 전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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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대학 육성 논의 전제 조건
  •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교육학
  • 승인 2020.08.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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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코로나19 여파로 174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맥머레이 대학(MacMurray College)이 지난 5월 폐교하였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애크런 대학교(University of Akron: 1870년 개교)는 전체 570명의 교수 중에서 97명(17%)의 풀타임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직원까지 강제 퇴직시키기로 하였다. 코로나19 여파로 미국 내에서 교수와 직원 감축을 고려하고 있는 대학들이 아주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코로나 여파에 더해 고등학교 졸업생 수 급감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는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에게 치명적인 데 비해 대학을 둘러싼 어려운 상황은 대학의 질이나 구성원의 열의가 아닌 대학 소재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불합리성을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며 교육부, 지방자치단체, 국가교육회의, 그리고 대학협의체 등이 상호협력을 다짐하고 나섰다. 지역 대학을 살리겠다는 범부처· 범사회적 시도가 결실을 맺으려면 근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중의 하나가 수도권 대학 신입생 비율 과다 문제이다. 수도권 대학들의 교육 질을 향상시키고, 연구중심대학이 대학원 중심의 세계적인 대학으로 비약하도록 유도하며, 고질적인 학벌 폐해를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안은 수도권 소재 명문대학들의 학부 정원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미국의 3개 명문대(하버드, 프린스턴, 예일)의 신입생은 5천 명 정도 되고, 우리나라 서울 3개 명문대(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신입생 정원은 1만 명 정도 된다. 미국 명문 사립대학들 중 한 학년의 정원이 2000명을 넘는 대학은 별로 없고, 넘을 경우는 스스로 명문대학으로서의 지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교육의 질과 학생 수(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미국 인구가 약 3억 명, 대한민국 인구가 약 5천만 명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세 개 대학의 정원은 미국에 비해 12배가 많은 셈이다. 우수한 인재의 비율은 어느 나라나 거의 비슷함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는 소위 수도권 소재 명문대학이 우수 인재를 싹쓸이하는 현상이 미국에 비해 아주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여 교육시키고, 지역 산업체가 기대하는 수준의 우수 인력을 배출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역 대학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울(수도권도 일부 포함) 소재 대학 학부 신입생 정원을 대폭 줄이고, 이 대학들은 대학원 중심의 연구중심대학이 되도록 육성하는 것이 필수 전제 조건이다.

명문대의 과다 정원은 학벌 문제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특정 명문대 졸업생들이 과다 배출됨에 따라 이들이 좋은 직업을 독식하고, 거기에서 파벌을 형성하는 학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미국 사회가 말하는 학벌(credential)은 실력과 무관한 대학 졸업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학벌 문제는 미국과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의 학벌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부 대학이 과도하게 인재를 독식하고, 그 대학 졸업생들이 최고의 직위나 직업을 독점하면서 형성하는 파벌로서의 학벌이다. 학부 정원의 파격적인 감축은 여러 관련 문제를 완화시키며 동시에 우수 인재가 지역 우수 대학으로 회귀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우수한 지역 대학이 살아나서 지역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대학 졸업생의 질을 보장하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지역 대학 졸업생 실력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이들을 향한 취업문이 넓어지면서 경쟁력 있는 지역 대학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일부 지역 대학들은 대학교육을 받을 역량을 갖추지 못한 학생까지 입학시키고, 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사회적 돌봄 기능을 주로 하다가 직업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은 제대로 길러주지 못한 채 졸업시키고 있다. 이는 국가와 사회의 자원 낭비, 한계 대학의 생존 연장, 젊은이들의 경쟁력 약화 및 사회와 직업세계 부적응 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 별 졸업시험제도와 같은 것을 도입해야 한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주립대학이 졸업시험제도를 도입하여 졸업생의 질을 관리할 경우에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제대로 관리되는 국가차원의 졸업시험제도는 전문대의 직업교육뿐만 아니라 일반대학이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준의 인력을 제대로 공급하도록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 제도는 대학들이 아무나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일단 입학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해당 전문분야가 정한 졸업 기준에 부합하는 기초지식과 전문교육 교육, 생활훈련, 그리고 필요한 실무교육을 시키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 조건이 갖춰져야 우수한 지역 대학이 살아남아 지역 균형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교육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교육학 복수전공)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에서 교육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교육대학교 총장(2008~2012), 교원교육학회 회장, 대한교육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광주교대 대학평의원회 의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등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최고의 교수법』,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공저), 『학부모와 함께하는 학급경영』(공저), 『학급경영 마이더스』(공저), 『교육전쟁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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