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아직 언택트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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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아직 언택트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 김창희 인천대학교·경영학
  • 승인 2020.08.09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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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018년, 교내의 스튜디오에서 첫 온라인 강의를 찍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온라인 강의를 나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임용될 때부터 꼭 촬영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대망의 첫 촬영 날, 수많은 NG와 어색한 시선 처리, 떨리는 음성은 흡사 처음 대학 강단에 서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25분 분량의 첫 차시 촬영에만 4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쌓아 왔던 강의 경험과 내공이 모두 무시당하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나의 온라인 강의 생존기는 학교 온라인 강의, KOCW 공개 강의 등을 거쳐 드디어 스스로 조금은 만족할 수준에 올라섰다. 그동안 주변의 다른 교수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측은한 시선과 저렇게 온라인 강의를 한 번 찍어 놓고 2~3년간 강의를 하지 않으려 하냐는 반감어린 시선을 동시에 보내주었다.

사실 이때, 나는 이미 온라인 강의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사실 그동안 오프라인 강의를 매년 하면서도 사례 몇 가지만 바뀌었을 뿐, 매년 80-90% 이상 동일한 강의안으로 수업을 하던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던 차였다. 효율성을 주로 연구하는 필자에게 있어 이러한 비효율성은 참기 힘든 일이었고, 그 가려운 곳을 온라인 강의를 통해 긁어낼 수 있었다.

학교 온라인 강의와 KOCW 공개 강의를 거쳐 K-MOOC에도 도전하여 2019년부터 강좌를 서비스하고 있고, 이번에는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교양 강좌도 개설하여 촬영 중에 있다. 이렇게 다양한 온라인 강의를 찍는 동안 대학의 온라인 강의의 부족한 점을 너무나도 많이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발전 방향과 대학 강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미래는 너무도 빨리 왔다. 2020년 2월, 본격적인 COVID-19사태와 더불어 대학에 비상이 걸렸다. 유례없는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대학에는 등교 제한이 권고되었고, 2020년 신입생들은 봄 내음이 물씬 나는 캠퍼스가 아닌 방구석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는 부랴부랴 온라인 강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웹캠과 마이크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해당 이러닝을 보관하기 위한 서버 등을 구축하였다.

강제로 진행된 전 대학 강의의 언택트화는 대학이 아직 언택트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학내 스튜디오, 촬영 인력, 이러닝 서버, 프로그램, 장비 등 자주 언급된 시설과 같은 유형의 문제는 오히려 해결하기 쉽다. 구비하여 갖추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형의 문제는 해결책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첫 번째 무형의 문제는 강의 전달의 일관성이다. 기존 오프라인 강의와는 달리 이번 학기의 강의는 이미 촬영된 외부 강의를 듣고 학생들이 매 주차 과제물을 해 오는 유형, 실시간 강의 플랫폼을 통한 강의, PPT에 녹음만 한 강의 등 다양한 형태를 해당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가 임의로 정해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때로는 실시간 강의로, 때로는 PPT에 음성만 입힌 강의를 들으며 혼란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두 번째 문제는 강의 질(質)의 차이다.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강의의 질이 교수의 전달 방식에 따라 그 격차가 심해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실험실습 과목은 이번에 제대로 된 수업을 하지 못했고, 팀 프로젝트가 위주인 과목들 역시 제대로 된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지막 문제는 평가 방식이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기말 고사 등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잇따르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는 학생의 도덕성의 문제도 분명히 있지만, 온라인 시대에 맞는 평가 방식이 아니라 기존 오프라인의 평가 방식을 활용한 교수자도 그 책임에서 온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다고 본다.

필자가 다양한 온라인 강의를 촬영해오며 느낀 것은 각 과목마다 최적화된 온라인 강의 형태가 있다는 것이다. 토론형 수업에는 실시간 강의가, 사례 위주의 수업에는 PPT를 활용하며 평소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활용하기 어려웠던 영상 자료 등을 활용한다거나, 판서 위주의 수업에는 태블릿을 활용한 필기 수업 등이 요구된다.
 
더불어 평가 방식도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 실시간 시험이 아닌 평소의 수업 참여도를 중시하는 방법을 선택하거나, 각 과목에 적합한 형식의 평가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고 전체 과목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학생이 직접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하고 이를 풀이하는 형태의 과제물을 기말고사로 대체하여 출제했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미네르바 스쿨이 처음 생기며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켰을 때도 우리나라 대학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 COVID-19가 잠잠해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원래 교육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출산율 저하와 수도권 인구 집중화는 이미 많은 대학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미네르바 스쿨과 같이 온라인으로 대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나면, 아예 한국에 안전한 대학은 없을 것이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등의 온라인 수업을 듣지 어떤 학생이 온라인 강의로 한국 대학 강의를 들으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이 땅에 살아남을 대학이 과연 있겠는가?

언택트 시대에 대학이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각 대학의 집행부와 교수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인식이 바뀌려면 집행부 교수들부터 먼저 적극적으로 온라인 강의를 촬영하고 활용해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각 대학, 각 학과의 특성에 맞춘 언택트 교육 서비스 설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기 때문이다.


김창희 인천대학교·경영학

현재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를,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공유경제, 금융위기가 서비스업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th QMOD International Conference Best Paper Award, 한국경영과학회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 한국생산관리학회 최우수 발표논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경영과학을 쉬운 언어로 풀어낸 『계량적 사고와 의사결정』, 역서로 『공급사슬관리』 등이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효율성을 측정하거나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활용해 실제 생활을 최적화하는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효율적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고 자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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