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對 제이콥슨(Jacobson) 對 야콥센(Jacob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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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對 제이콥슨(Jacobson) 對 야콥센(Jacobsen)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8.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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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0)_차이코프스키 對 제이콥슨 對 야콥센

"It doesn't matter about being born in a duckyard, as long as you are hatched from a swan's egg(백조의 알에서 부화되기만 한다면 오리집에서 태어나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from The Ugly Duckling(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 중에서)

나는 여행을 할 때 더운 지방은 더운 계절에, 추운 나라는 추운 때에 여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편이다. 그래서 러시아에 간 것도 한겨울이었다. 때마침 눈도 많이 내렸다. 모스코바로 떠나기 전 인터넷 상으로 볼쇼이 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마린스키 극장(예전의 키로프 극장) 공연 레퍼토리 중에서 몇 개를 골라 입장권을 사전 구매 해놓았다. 춥고 긴 겨울밤을 러시아 예술의 향훈을 느끼며 보내고 싶었던 때문이다. 선택한 무대 중 하나는 러시아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의 3대 발레 중 하나인 <백조의 호수>였다.

▲ 발레 백조의 호수
▲ 발레 백조의 호수

나는 울적할 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는 지금으로부터 127년 전인 1893년 11월 6일 불과 53세의 나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인은 콜레라. 당시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교향곡 6번 《비창》을 직접 지휘해 초연하고 난 뒤 1주일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1979년 소련 문화성의 부검 결과는 달랐다. 그의 죽음이 비소에 의한 것이었다는 의학적 소견이 나온 것이다. 지나간 일에 대한 단정은 위험한 일이다. 조심스러운 주장 중의 하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률학교 동문들이 모교와 자신들의 명성에 누가 된다며 동성애자인 차이코프스키로 하여금 비소를 마시고 죽도록 자살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지독히 비정한 인사들이다.

▲ 허니문 중인 차이코프스키와 아내 안토니나 밀류코바(1877년)
▲ 허니문 중인 차이코프스키와 아내 안토니나 밀류코바(1877년)

우리가 흔히 차이코프스키라고 부르는 러시아 이름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는 영어로는 어떻게 쓰고 읽힐까? 우선 Pyotr는 Peter다. Ilich, Ilitch 등으로 표기하는 미들네임 Ilyich는 “Ilya의 아들”이라는 뜻의 러시아 父稱(patronymic)이다. 앞서 보았듯 영어 이름 Johnson, Williams 등도 부칭이다. 이렇게 인간은 부계 계승의 작명 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 나는 姓(surname)에 해당하는 Tchaikovsky가 Jacobson과 대응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접두사격인 Tchaikov는 Jacob, 접미사인 –sky는 son과 의미와 기능이 같다고 판단했다.
 
Jacobson은 “제이콥의 아들(son of Jacob)”이라는 부계의 성이다. ‘대리인’ 또는 ‘추종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 Yaakov가 라틴어로 넘어가 Jacobus가 되고, 이것을 이딧시(Yiddish)라는 혼성 게르만어를 사용하는 북유럽의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이 Jacob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Jacobson이라는 성이 등장했다. 참고로 영어 John은 러시아에서는 Ivan으로 소리와 철자가 바뀐다. Catherine은 Yekaterina가 되었다.
 
그런데 Tchaikovsky라는 성이 폴란드 귀족가문의 성인 Czajkowski의 러시아어 변이형이며, ‘댕기물떼새’를 가리키는 말 czajka에서 비롯된 지명 Czajki, Czajków, 또는 Czajkowo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조부가 자신의 성을 Tchaikovsky로 삼았다는 것도 알았다. Tchaikovsky와 Jacobson을 등치(等値)했던 건 성급한 판단이었다. 더 살펴보려 한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전경
▲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전경

러시아인을 가리키는 말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루쓰키예’로 인종상 러시아인을 가리키고, 또 다른 용어인  ‘로씨아네’는 인종 상관없이 러시아 국민을 지칭한다. 조선말기 한자로 러시아를 아라사(俄羅斯)라 표기했는데 이는 몽골어인 어러스를 음차한 것이다.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에 쓰인 俄는 바로 아라사에서 머리글자인 俄만 취한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을 중국인들은 챠오센주(朝鮮族)라 부르고, 일본인은 조센징(朝鮮人)이라 하는 한편,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국가 사람들은 러시아 연해주 지방이나 구소련 붕괴 이후 독립국가연합에 거주하는 우리의 동족 고려인(高麗人)을 흔히 ‘까레이스키’라고 부른다. 이렇게 他者가 부르는 민족 명칭을 엑소님(ethno-exonym)이라 하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리키는 명칭을 엔도님(ethno-endonym)이라 부른다.
 
‘까레이스키’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형용사형으로 알고들 있지만, 사실은 ‘고려’(까레이)와 ‘사람, 아들’을 뜻하는 ‘스키’가 합쳐져 탄생한 고려인을 지칭하는 러시아어 복합명사다. 차이코프스키에서도 그렇듯 흥미롭게도 러시아인 이름에는 –sky가 붙은 경우가 많다. 이 민족 지칭어의 語尾, 즉 ‘-sky’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이것과 ‘–sk’로 끝나는 러시아 지명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들’, ‘자식’, ‘새끼’를 의미하는 러시아어는 ‘сын’으로 로마자 발음 표기에 따르면 [syn]이다. 영어로는 son이다. 고로 ‘sky’는 슬라브어가 아니다. 러시아인의 작명 관습을 이해하면 姓을 통해 가문이나 종족의 기원을 짐작하는 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레닌그라드 즉 오늘날의 페테르부르그가 고향인 미국 배우 안톤 빅토로비치 옐친(Anton Viktorovich Yelchin)의 미들 네임 Viktorovich(<Viktor + o + -vich, ‘Viktor의 자식’)를 통해, 그리고 姓인 Yelchin으로 미루어 우리는 Anton 부친의 이름이 Victor이고, 부계의 姓이 Yelchin임을 알 수 있다. Anton은 라틴어 Antonius의 러시아어형으로 그 의미는 ‘더 없이 소중한’이다. Viktor는 ‘승리자(victor)’라는 의미의 라틴어 Victor의 러시아어형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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