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의 삶을 통해 본 억압과 저항의 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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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여성의 삶을 통해 본 억압과 저항의 여성사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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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영웅적 조선 녀성의 성과 국가: 북한 여성의 섹슈얼리티 탐구 | 권금상 지음 | 서울셀렉션 | 232쪽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북한 여성의 성을 둘러싼 삶과 일상을 다룬 북녘 섹슈얼리티 탐구서이다.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의 슬로건 뒤에 숨은 권력의 성 통치 전략과 북한 권력의 민낯을, 다시 말해 북한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구성하는 제도와 문화를 통해 국가 권력이 성을 통치하는 전략과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위협적으로 권력을 과시하는 김여정, 단아하고 세련된 젊은 영부인 리설주.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북한 여성을 떠올릴 때면 으레 등장하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가 과연 북한 여성을 대표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북한 여성의 삶은 통제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통치 체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국가는 특히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며 체제에 순응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북한 권력은 국가 건설기부터 지금까지 제도와 문화를 통해 국가의 성 통제와 억압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신녀성’을 만들어왔다. 다른 한편, 북한 여성은 그러한 국가의 통치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며 성적 주체로서의 삶을 영위해갔다. 이 책은 문헌 연구와 탈북 여성 수십 명의 방대한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북한의 여성 정책과 사회문화를 분석하며, 그 평범한 여성들의 ‘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군중집회
▲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군중집회

북한 체제는 사회주의의 진보성을 표방하면서도 봉건적 권력 세습의 퇴행성을 보여주는 ‘봉건적 사회주의’ 체제다. 이러한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영역이 바로 섹슈얼리티다. 사회주의적 신여성과 봉건적 가부장의 기이한 모순적 결합이 북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규정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 권력은 1950년대부터 남녀평등법을 제정하는 등 진보적으로 제도를 정비했지만, 일상의 남성 중심 문화가 온존한 가운데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 구조를 지속해왔다. 소녀들은 월경을 숨겨야 했고,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처녀성을 입증해야 했으며, 결혼한 여성들은 살림과 육아와 가정 경제는 물론이고 때로는 후방의 군인들까지 자식처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북한 여성들은 국가 권력의 성 통치에 순응하면서도 성적 주체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는 사상 최악의 식량난으로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여성들은 권력의 성 통치에 본격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존의 성 담론에 도전하며 장마당에 나가 사경제 활동을 벌였고, 자신의 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황색바람’이라는 자본주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며 지평을 넓혀갔다.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개진했으며, 더 이상 국가와 가족에 속박되지 않는 자기만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요컨대, 굶주림과 체제 붕괴의 위기 속에서 북한 여성들은 새로운 성적 주체로 발돋움해온 것이다.

▲ 영웅적 조선 녀성의 저자 권금상(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센터장)
▲ <영웅적 조선 녀성>의 저자 권금상(서울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센터장)

고난의 행군을 기점으로 남한에 유입되는 탈북 여성의 수도 극적으로 증가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건너온 남한에서 그들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탈북 여성 대부분은 정착금을 브로커 비용으로 소진하고 빈곤한 상태에서 남한 생활을 시작한다. 가난 속에서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일반적인 노동 시장 진입의 어려움은 그들을 성 서비스 영역으로 내몬다. 남한 사회의 주변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성은 생계를 이어가고 딸 혹은 어머니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인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러한 탈북 여성의 삶을 조명하며 체제의 변두리에서 부유하는 탈북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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