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 편중에서 선진 학문 창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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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편중에서 선진 학문 창조로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0.08.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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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2018~2019년도 미국 유학생 국적별 순위를 20위까지 든다. 천 명까지의 인원수를 괄호 안에 적고, 그 이하는 생략한다. (‘Opendoors 2019 Fast Facts’라는 자료에 의거한다.)

1 중국(369), 2 인도(202), 3 한국(52), 4 사우디아라비아(37), 5 캐나다(26), 6 월남 (24), 7 대만(23), 8 일본(18), 9 브라질(16), 10 멕시코(15), 11 나이지리아(13), 12 네팔(13), 13 이란(12), 14 영국(11), 15 터키(11), 16 쿠웨이트(9), 17 독일(9), 18 프랑스(8), 19 인도네시아(8), 20 방글라데시(8).

세 가지 사실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 한국은 인구 비례를 계산하면, 미국 유학생 수가 중국이나 인도보다 앞서는 1위이다. 중국의 3배 이상, 인도의 4배 이상이다. (나) 일본은 8위이다. 인구 비례로 계산하면, 한국의 5분의 1 이하이다. (다) 독일은 17위이고, 프랑스는 18위이다. 인구 비례로 계산하면, 한국의 7분의 1 이하이다.

(가) 중국이나 인도는 미국과 국민소득의 격차가 아주 커서,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몇 나라도 이에 해당한다. 한국은 미국과 국민소득 격차가 현저하게 줄어들어, 유학이 이주를 위한 방법인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미국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이유는 미국에서 한 공부가 한국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높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나) 일본은 미국 유학생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미국이 아닌 유럽에 유학을 많이 가는 것도 아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표방해온 일본이 바라는 바를 국내에서 성취할 만큼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이 그 이유이다. 일본에서만 공부한 사람이 자연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는다. 한국은 탈아입구를 표방하지 않으면서 미국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국내 교육이 부실한 결함을 미국 유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여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다)는 무엇을 말하는가? 독일이나 프랑스는 미국과 대등한 선진국이어서 미국에 유학하지 않고 자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도, 교수가 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며 최고의 학자가 될 수 있다. 인문학문 분야에서는 프랑스가 가장 앞서는 것이 공인된 사실이다. 프랑스에서 창조한 이론을 미국에서 수입해 가서 중간도매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앞장서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나라 안팎에서 일제히 말하는 것이 지금의 사태이다. 미래의 학문과 교육을 바람직하게 창조하는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긴 안목을 가지고 백년대계를 세워 한 단계씩 실현해야 가능한 일이다. 다음과 같은 과제를 토론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 않는가?
한국 학생이 외국 유학을 하기만 하지 않고, 외국 학생이 한국 유학을 하기도 하는 시대가 된 것을 잘 알고, 온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2019년 현재 181개국에서 14만 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 와서 공부한다고 한다. 천 명까지 끊어 말하면, 중국(68), 월남(27), 몽골(6), 우즈베키스탄(5), 일본(3), 미국(2), 대만(2)이 선두를 차지한다.

이런 외국인 유학생들은 우리가 외국에서 배워온 것을 얻어들으려고 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말해주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수입품이 아닌 생산품이 있어야 판매를 할 수 있다. 실정은 전연 그렇지 않은 것을 알고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대학에 유학 온 중국인 학생이 나를 찾아와서 심각한 고민을 토로했다. “한국외교사를 전공으로 삼고 학위 논문을 쓰려는데, 지도교수는 서양외교사만 알고 있다.” 일본 학생도 말했다. “한국의 미학을 공부하려고 왔는데, 서양의 미학만 강의한다.” 미국인 유학생도 같은 불만을 말했다. “한국문화를 공부하려고 강의를 들으니, 미국 책이나 읽으라고 한다. 미국 책이나 읽으려고 유학을 왔는가?” 이래도 되는가?

외국인 유학생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외국 유학에 의존하면서 수입학이나 하는 잘못을 청산해야 한다. 선진국인 줄 알고 왔는데, 후진국임을 확인하고 돌아가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후진국은 수입학만 하고, 선진국은 창조학을 한다. 미국 유학 편중에서 선진 학문 창조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유학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고루 가서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공부를 해야 한다. 유학의 기간과 방법을 재고해야 한다. 외국에 유학해 박사가 되어 귀국하는 것이 최상의 길인가? 석사만 하고 돌아와 박사는 국내에서 하는 것이 창조학을 위한 내실을 갖추는 더 좋은 방법이 아닌가?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면서 외국에 한두 해 가서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은 어떤가? 우수한 인재임이 입증되면, 이런 유학비용을 국가에서 지급하는 것은 어떤가?

국내 학문의 수준을 높여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대학까지 다 돌보는 것은 너무 힘겹다. 대학원 교육을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문제 해결의 관건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희소하면 가치가 있다고 여기고 특정 대학에만 대학원을 두는 것은 자살골을 넣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서울대학이 어떤 대학인지 앞에서 말했다. 어느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지 가리지 않고 가장 우수한 교수들을 박사 지도교수로 선정해, 전국적인 연계를 가지고 강의를 하고 논문을 지도하도록 하는 것이 어떤가?

학문 발전을 가속화하고, 박사 지도교수의 수준 향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강의교수와 연구교수를 일단 분리하는 것이 어떤가? 일정 기간 연구교수가 되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구에 전념해 높이 평가되는 업적을 이룩하면 박사 지도교수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떤가?

더욱 원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는가? 학문의 발전과 수준 향상을 위한 기본 방안은 무엇인가? 일본의 전례에 따라 자연학문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것인가? 프랑스처럼 인문학문의 이론 창조를 우선적인 과제로 삼을 것인가?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학문의 전통을 되살려 학문의 분열을 시정하고 새로운 창조를 하는 길은 없는가? 서양이 주도해온 근대학문의 폐해를 시정하고 다음 시대 학문을 바람직하게 이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학문의 역사를 다시 창조하는 주역으로 나서야 하지 않는가?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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