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세계에 전하는 긴급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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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세계에 전하는 긴급 제언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8.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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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팬데믹 패닉: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 슬라보예 지젝 지음 |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0쪽

이 책은 현실 진단 차원에서 바이러스의 정치학이 녹아 있다. 저자는 준비 없이 바이러스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누구보다 단호하게 진단하고 처방한다. 그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라는 자연적·우발적 존재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바이러스의 창궐과 확산을 악화시키는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성찰과 함께 저자는 코로나19 시대에 관해 발언한 여러 사상가들에게 말을 건다. 그는 한병철의 ‘근시안적’ 사태 진단을 비판하고, 조르조 아감벤의 국가권력에 대한 ‘반사적’ 비판도 다룬다. 지금 이 순간 어느 정도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반사적으로 ‘감시’와 ‘통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저자의 반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빈부와 성별과 나이와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감염시키지만, 감염의 경로와 정도, 속도 및 치료의 접근성과 평등성 면에서 보면 차별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지만 기관실과 일등석과 삼등석이 엄연히 존재한다. 또한 그는 방역과 경제를 양립 불가능한 두 마리 토끼로 보는 입장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방역과 길항하는 것은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로 연명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 경제일 뿐이다. 이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기회비용만 따져 한시적 위기를 넘기려는 조치는 불안정 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을 담보로 건 위험한 도박이라고 말한다.

바이러스 감염병은 이렇게 한 순간에 예외적 비상사태를 정상 상태로 바꾸어버렸다. 얼마 동안 지속되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리라는 전망은 시들고 바이러스와 동거하는 새로운 일상, 이른바 ‘뉴노멀’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저자는 그 뉴노멀을 새로운 공산주의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산주의는 물론 구닥다리 공산주의나 막연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치 원리다. 개인을 버리고 공동체의 집단성을 내세우는 권위주의의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진행되고 있고 많은 사람이 필수적이라고 느끼는 조치, 더러는 이미 시행되기도 한 조치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서의 공산주의다.

▲ 슬라보예 지젝
▲ 슬라보예 지젝

지젝이 처음 이같은 생각을 밝혔을 때, 즉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공산주의의 형태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시사했을 때, 그는 알랭 바디우와 한병철과 다른 많은 인물들에게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두루 비판받았고 심지어 조롱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은 지젝이 예견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재난지원금 지급, 부채 상환 유보, 보건의료 부문의 국유화 검토, 식량 위기 대책 회의 등은 공산주의의 새로운 형태라고 볼 수 있을 법한 조치들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다시금 그가 어떤 말들을 해왔는지, 어떤 세계를 보여주면서 제언했는지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냉전 시대와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를 겪은 한 경험 많은 사상가의 발언은 성찰의 한 축을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은 코로나19 이후 인류가 맞게 될 상시적 바이러스 사회에서 국가의 공적 기능을 키우고 우리의 생명과 생존이 함께 추구될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를 그리는 일에 많은 논의가 할애돼 있다. 저자는 방역과 경제가 공존하는 이 사회를 거침없이 공산주의라 명명하고, 이를 현재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나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과 확연히 구분한다. 이 새로운 공산주의는 한 국가의 정치 시스템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협력으로 탄생할 초국가적 지구정치의 모델이다. 저자는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이러한 정치적 혁명의 계기를 마련해줄지, 아니면 차별과 배제가 교묘하게 강화된 새로운 야만의 시대로 회귀할지는 진정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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