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근대성을 획득해 나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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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근대성을 획득해 나갔는가?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8.0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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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코스몰로지의 근세: 근대 일본의 문화사 2_19세기 세계 2 | 시마조노 스스무 외 지음 | 남효진 등 옮김 | 소명출판 | 385쪽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통해 개국을 맞이하게 된 일본의 변화 양상과 근대성에 대해 다양한 분야에서 고찰하는 책으로 근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와 같은 책이다. 20세기 마지막 사반세기 동안, 근대 역사와 문화를 재검토하는 일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에 관한 서사 방식 또한 새롭게 모색되어 왔다. 일본에서도 1980년대 이후 그와 같은 과정이 전개되었다.

‘역사’의 개념 자체를 다양한 개인과 사회 집단의 역학관계 안에서 구성된 담론으로 새로이 파악하고, ‘역사’에 관한 지식들이 근대의 권력관계를 둘러싼 투쟁의 장 속에 배치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문화’의 개념도 제각기 처한 역사적·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고 강요당하고, 강요당하면서 만들어지는 투쟁의 장으로 재인식되었고, 실체적인 가치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물음을 던지는 장으로서 재발견되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역사’와 ‘문화’ 속에서 어떠한 주체로 구성되었는가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비판적 실천은 근대 학문 분야나 지식을 둘러싼 모든 영역에서 전개되고 있다. 비판적 실천이야말로 근대적으로 제도화된 학문 분야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유로운 재편성을 모색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 책의 필자들이 지향하는 것은 종래 의미의 ‘근대사’도 ‘문화’도 아니다. 각각의 학문 분야에서 탈영역적인 질문을 던지고 경계를 초월하여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의 지평을 창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필자들은 ‘문화’라는 창을 통하여 근대 일본을 재검토한다. 근대 일본의 문화를, 끝없는 항쟁과 조정, 전략과 전술의 충돌과 교차 속에서 경계가 계속 변화하는 영역,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그래서 동적인 매력을 가진 영역으로 보고자 한다. 근대 일본의 역사는 과거 사건들의 집적이나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된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과 과거를 재정의하는 것 사이를 계속 왕복하고 횡단하는 운동이다.

동아시아 ‘근대’의 역사는 서구 열강의 침탈로 시작된다. 19세기 중엽 맞닥뜨린 서구 세력 앞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민족적 위기의식을 발동시켰으며,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1853년 7월 8일,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으로 220여 년간이나 닫혀 있었던 우라기 해안에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 소위 ‘흑선’ 4척이 들어오면서 일본은 엄청난 변화에 직면한다. 쇄국을 유지하려는 막부와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이 충돌하게 된 것이다. 결국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통해 개국을 맞이하게 된 일본은, 이후 서구에 대한 위기의식과 약육강식이라는 상황 논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내재적 긴장 상태로 대응방식을 깊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이러한 국내외 현실 속에서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고, 또 어떻게 근대성을 획득해 나갔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이와나미 강좌 근대 일본의 문화사’ 시리즈의 1권 <근대세계의 형성>과 2권 <코스몰로지의 근세>의 배경이다. 1권인 <근대세계의 형성>이 ‘근대’ 그 자체를 묻는 담론을 다양하게 전개한다면, 2권 <코스몰로지의 근세>는 일본이 근대의 국민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이행과정을 논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이 근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이자, 기존의 동양사상과 함께 새로이 받아들인 서양사상이 뒤섞이며 벌어진 단절과 연속의 거듭이었으며, 종교·법·윤리·공간정치 등을 통한 다양한 체제로의 이행이었다. 더불어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은 생활세계의 변혁이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시기의 변동을 분야 혹은 주제별로 상세하게 고찰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총설에 해당하는 시마조노 스스무의 <19세기 일본 종교구조의 변화>는 일본이 ‘근세’로부터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종교구조의 변용을 묻고 있다. 그는 근세와 근대의 연속성과 단정을 종교구조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데, 코스몰로지로 규정된 일상적 실천이나 심성을 정치적 실천·담론체계인 이데올로기와 결부시켜 논하고 있다.

제1부 <체제이행론>에서는 법과 윤리 관념에 관해 논하고 있다. 미즈바야시 타케시의 <19세기의 법질서>에서는 근세 법질서의 변용과 성숙, 그리고 붕괴 과정을 통해 천황제 법질서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를 논하고 있다. <윤리화의 과정>에서는 근세 일본의 종교와 사상의 변화과정을 다루었다. 구로즈미 마코토는 근대를 근세와 이어지는 연속선상에서 파악하여, 근대의 산물처럼 보이는 윤리관마저도 이미 그 뿌리가 근세 혹은 그 이전인 중세에 준비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와 윤리가 때로는 길항하고 때로는 흡수되며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당시 일반 대중이 손쉽게 구해 읽을 수 있던 가나조시의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논증한다.

제2부 <생활세계의 변모>에서는 근세 후기 촌락의 변화, 도시의 형성 그리고 여성 담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다카하시 사토시의 <근세 후기 촌락사회의 조직과 가족·아이·젊은이>에서는 19세기 나가베 마을에서 촌락개혁에 힘썼던 오하라 유기쿠의 삶과 활동을 살펴보고 있다. 다카하시 사토시는 이를 통해 근세 후기 촌락사회의 생활문화와 습속이 근대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드러내고자 했다. <도시문화 안의 성과 성>에서 오쿠와 히토시는 근세 도시에서 불교적 세계가 어떻게 도시문화로 자리하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그는 근세를 근대의 요람기로 간주하면서 잘려나간 무수히 많은 사실을 재구성하여 ‘근세’라는 세계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한다. 유코의 글인 <‘여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삐걱거림>은 근대 여성을 규정하는 세 가지 범주로 ‘어머니’, ‘주부’, ‘여학생’을 언급하고, 주로 [여학잡지]를 통해 각 범주의 탄생 배경과 형성 과정을 추적한다.

3부 <내셔널리즘의 형성>에는 일본의 자타 인식의 변화와 근대적 공간 형성에 대한 담론이 담겨있다. 먼저 가쓰라지마 노부히로의 <화이사상의 해체와 자타 인식의 변화>에서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에조치를 둘러싼 담론과 후기 미토학 막부 말기 국학 형성을 관련지어 일본의 자타 인식에 대해 논하고 있다. 18세기 말 이후 에조치에 대한 서양의 접근은 지식인 담론을 통해 에조치론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전의 화이사상이 해체되었다. 이 글에서는 막부 말기 중화문명권에서 해방된 자타인식이 서양과의 접촉을 통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 글인 <근세의 다이리 공간·근대의 교토교엔>에서 다카기 히로시는 근세 교토 황궁의 다이리 공간이 근대 교토교엔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공간의 속성이 변화하는 양상을 자세히 살핀다. 담과 문의 변화, 천황의 거처에 대한 접근성 등을 근거로 다카기 히로시는 근세 다이리가 열린 공간이었으나 근대기 천도 후에 오히려 닫힌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각 장에서 법과 윤리, 생활상과 젠더상의 변화를 다루며 최종적으로는 국민국가의 내셔널리즘 형성을 구체적 사료로써 제시하며 이 책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론을 벗어나 실제 변혁이 일어나던 당시의 시대상을 한 꺼풀 드러내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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