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어미의 고통 있어야 심리학 발전하나…‘동물해방’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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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어미의 고통 있어야 심리학 발전하나…‘동물해방’의 길
  •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 승인 2020.07.2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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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 서평_『동물 해방』(피터 싱어, 김성한 역, 연암서가, 2012.09.15.)

최근 한 아파트에서 강아지 2마리를 베란다에 던지는 사건이 있었다. 강아지들이 배변을 못 가린다고 9층 베란다에서 강아지들을 버린 것이다. 강아지들은 떨어지면서 어떤 공포를 느꼈을까?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1960∼1980년대까지 위스콘신의 영장류연구센터에서 일했던 할로 교수. 그는 영장류의 우울증을 실험하기 위해 새끼 원숭이를 어미로부터 분리한 채, 송곳 못이 튀어나오는 가짜 어미를 우리 안에 넣어두었다. 새끼는 송곳에 계속 찔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가짜 어미를 끌어안았다. 이런 실험이 심리학에서 정작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 끔찍한 건, 암컷 원숭이들을 강간당하게 해 임신을 시킨 후 새끼를 어떻게 다루는지 관찰한 것이다. 괴물 어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격리된 채 자란 암컷 원숭이는 강간으로 태어난 새끼들의 두개골을 부수거나 얼굴을 바닥에 뭉갰다.

앞서 언급한 강아지와 영장류가 느꼈을 고통은 인간이 아니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 해방』은 동물윤리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이끌어낸 역작이다. 프린스턴대 교수인 피터 싱어가 집필한 이 책은 철저한 공리주의적 해석을 통해 동물해방의 도덕적 정당성을 제시한다. 그의 일침은 ‘이익에 대한 동등한 고려’라는 기본 원리로 압축된다. 영국의 철학자 벤담이 제시한 쾌락과 고통에 기반한 생명윤리는 인간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종차별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동물들은 스스로가 해방을 요구할 능력이 없다.”-416쪽.

우리는 평등이라는 개념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평등이 필요하다고 해서 평등한 처우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즉, 남녀가 평등하다고 해서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게 아니다. 이는 인간과 동물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평등한 배려이며, 서로 다른 처우와 권리가 가능하다.

피터 싱어가 강조하듯이, 평등은 도덕적 이념이지 사실에 대한 단언이 결코 아니다. 두 사람의 능력의 차이, 예를 들어서 머리가 좋고 나쁜 차이가 있다고 해서(능력의 차이-사실) 그 두 명을 다르게 처우(권리)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노동에 대해선 둘 다에게 평등한 임금(서로 다른 처우)이 적용(배려)될 수 있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과 동물 간 종 차이가 있다고 해서 종차별주의를 가져선 안 된다. 인간과 동물의 양 집단이 갖고 있는 본성에 따라서 달리 처우할 수 있는 것이다.  

평등의 원리는 인종의 구분 없이, 성의 구분 없이, 종의 구분 없이 모든 존재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에서 주장하는 바는 철저히 이성적이다. 감정에 의한 호소가 아니라 이성의 의한 논증으로 동물윤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 방식은 노예해방-여성해방-동물해방으로 이어져 인종차별주의-성차별주의-종차별주의를 극복하는 데 사상적 배경이 되고 있다.

평등한 배려가 동일한 처우 의미하지 않아

이익을 고려할 때 중요한 건 바로 고통이다. 고통의 제거야 말로 모든 동물의 염원이다. 데카르트가 지적했듯이,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동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는 벤담을 인용해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라며 “고통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의 다른 특징의 영향을 받아서 해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피터 싱어의 또 다른 논증은 동물의 죽음에 대한 기존 입장을 비판하면서 진행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나 심지어 칸트마저 인간의 본성을 강조하면서 동물과의 종 차이를 강조한다. 동물이 인간과 다르게 소통이 불가능하거나 야만적이라거나 이성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정의론』의 존 롤스는 동물의 인간과 같은 평등한 권리를 검토하지 않고 무시했다.

하지만, 인간 중에 만약 소통이 불가능하거나 야만적이라거나 이성이 없는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 법은 뇌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한 안락사를 금지한다. 이런 경우에 인간이기 때문에 살 권리가 있고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비이성적이다. 그래서 피터 싱어는 동물 실험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용하고자 하는 동물들의 지적 수준과 유사한 수준의 뇌 장애가 있는 인간을 사용할 용의가 있는가?”

『동물 해방』에서 가장 끔찍했던 건 식육을 위한 사육 방식에 있다. 닭, 암퇘지, 어린 송아지들의 대량 사육 방식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제일 잔인한 건 더 많은 고기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거의 대부분 어미와 새끼를 매우 어릴 때 떼어놓는다는 사실이다. 고기를 위해 태어난 동물들은 모성을 느낄 기회조차 없다. 그런 고기를 우리는 매일 먹고 있다.

1965년 영국 브람벨위원회는 동물을 위한 다섯 가지 자유를 천명한다. ▶ 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 통증, 부상 또는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 정상적인 행동 표현의 자유 ▶ 공포와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 동물들이 몸을 돌릴 수 있고, 털을 고를 수 있으며, 섰다가 누웠다가를 할 수 있으며, 사지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암탉, 암퇘지, 빌용 송아지 등이 그렇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사진_피터 싱어
▲ <동물 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

효율적 고기 생산 위해 어미와 새끼를 분리해

그런데 효율성이라는 걸 따져보아도 채식주의가 오히려 더욱 낫다. 피터 싱어에 따르면, 인간이 먹는 1파운드(약 0.45kg)의 동물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선 송아지가 21파운드(약 9.53kg)나 되는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 자본가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가성비가 5% 미만인 셈이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는 1에이커(4,047제곱미터)에서 돼지보다 세 배나 더 많은 칼로리를 산출하며, 귀리는 같은 면적에서 쇠고기에 비해 스물다섯 배 이상의 칼로리를 인간에게 선사한다.

가장 효율이 높은 방목을 통해 쇠고기 1칼로리를 생산하려면 3칼로리 이상의 화석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가장 효율이 낮은 가축 사육장에선 쇠고기 1칼로리를 만들어내려면 33칼로리의 화석 연료가 든다. 미국에만 국한해서 에너지 효율성을 따지면 다음과 같다. 곡식 재배 : 소 방목 = 5 : 1, 곡식 재배 : 가축 사육장의 소 생산 = 50 : 1, 곡식 재배 : 닭 생산 = 20이상 : 1.

“우리는 햄버거를 먹기 위해 우리 지구의 미래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것이다.”-294쪽.

실험동물의 윤리 문제도 심각하다. 이 책을 통해 ‘LD50(50퍼센트의 치사량. Lethal dose 50 percent)’을 처음 알게 되었다. 상업적 혹은 군사적 용도로 자행되는 실험에서 일종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용어다. 간단히 말해, 연구 대상이 되는 실험동물들의 절반이 죽게 되는 물질량을 뜻한다. 이 실험을 위해 동물들에게 튜브로 립스틱이나 종이 등을 강제로 먹여봤다. 독극물인 T-2를 쥐에 주입시키기도 했다. 놀라운 반전은 동물실험이 인간에게까지 적용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국립환경위생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실험동물로는 비소에 대한 암 유발이 발견되지 않지만 인간은 비소에 노출되면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

피터 싱어는 분명히 충고했다.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믿을 만한 뚜렷한 세 가지 기준이 있다고 말이다. ▷ 행동 ▷ 신경계의 특징 ▷ 고통의 진화적 유용성(생존을 위해 고통의 감각을 예민하게 경험). 이건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피터 싱어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게 첫째 오래된 편견, 둘째 강력한 기득권, 셋째 체질화된 습관이라고 비판했다. 동물해방의 길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과학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교수신문> 학술 객원기자를 역임했고 현재는 ‘학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과학과 기술, 철학, 문화 등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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