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학자의 눈으로 ‘반일 종족주의론’ 전격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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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학자의 눈으로 ‘반일 종족주의론’ 전격 비판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07.2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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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 이후 첫 반박서!
- 일제강점기 경제사의 관점에서 ‘반일 종족주의론’ 반박
- 부조적 수법, 사료의 왜곡과 억측으로 점철된 〈반일 종족주의〉

■ 깊이 읽기_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전강수 지음, 한겨레출판, 332쪽, 2020.07)

2019년 7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이승만학당 교장으로 활동 중인 이영훈을 중심으로 여섯 명의 저자가 공동집필한 책 한 권이 출간됐다. 작금의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이 일본을 적대시하는 한국인의 집단 심성에서 비롯됐다는 허황한 주장으로 책머리를 연 『반일 종족주의』가 그것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안병직 사단의 사상적 우경화가 끝까지 가서 도달한 종착점이다. 이 책에서 필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 자체를 부정하며, “한국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이 국가의 위기를 낳았다”고 주장해 사회 전반적으로 큰 논란을 낳았다.

『반일 종족주의』가 출간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0년 5월, 저자들은 이 책에 제기된 비판에 대해 하나하나 반론하는 형식을 취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새로운 사실과 방어 논리를 제시하면서 이전 책보다 그 주장이 한층 교묘해졌다. 두 권의 책에서 저자들은 ‘일제가 조선 여인들을 전선으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은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된 바가 없다’, ‘위안부 생활은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지 강제동원은 없었고, 위안부는 위안소라는 장소에서 영위된 위안부 개인의 영업이었다’, ‘한국은 일본과의 청구권 협상에서 애당초 청구할 것이 별로 없었다’, ‘을사조약의 책임을 이완용과 을사오적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조약 체결은 고종의 결정이었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없다’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진실과 배치되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며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

▲ 저자 전강수 교수
▲ 저자 전강수 교수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 여섯 명 중 다섯이 경제사 전공자로, 책은 일제강점기 경제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핵심 저자인 이영훈은 그의 스승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더불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뉴라이트의 선봉 세력이기도 하다. 『반일 종족주의』의 많은 부분이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반일 종족주의』 속 경제사 서술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은 없었다.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은 『반일 종족주의』의 친일자학사관과 극우적 역사인식을 일제강점기 경제사의 관점에서 비판한 첫 번째 책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의 저자 전강수 교수는 경제사학자의 관점에서 『반일 종족주의』의 과장과 왜곡, 거짓말의 증거를 철저히 밝혀낸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반일 종족주의론, 토지 수탈, 쌀 수탈, 한일 청구권 협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다섯 가지 주제에 걸쳐 『반일 종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의 관련 내용을 요약한 후, 그들의 주장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구체적 자료와 냉철한 논리로 치밀하게 검토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반일 종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 한국에서 때때로 출현했던 친일 행각의 연장에 불과함을 묘파해낸다.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은 총 3부, 8장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반일 종족주의’라는 원시종교에 사로잡혀 있다는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을 검토한다. 이영훈 교수는 한국인의 반일 종족주의 기원을 어떤 곳에서는 7세기 말, 어떤 곳에서는 15세기라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반일 종족주의가 폭발했다고 주장하는 등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과 개념에 대해 모호하고 일관성 없는 관점을 내보인다. 이영훈 교수의 혼란한 인식과 무도한 논법은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감히 펼치지 못했던 극단적인 자학사관이다.

2부에서는 토지 수탈과 쌀 수탈은 없었으며,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식민지 지배 피해자의 청구권은 모두 소멸했다는 주장을 경제사학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논박한다. 이를테면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토지소유 상황이 민족별로 어떻게 변했는지, 경작 형태의 추이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등을 구체적인 표와 그래프로 제시하면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실은 일본인들이 마음 놓고 토지를 매입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보장한 ‘고차원적인 수탈 전략’임을 증명해낸다. 더불어 수탈의 개념을 ‘대가 없이 무력으로 빼앗아가는 행위’로 좁혀놓고는 그에 해당하는 증거가 보이지 않으니 일제의 식민지 수탈은 없었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의 교묘한 부조적(浮彫的) 수법(자기 견해를 입증하는 데에 유리한 사례만 선택해서 부각하거나 비판하는 논리 전개 방식)을 간파해낸다. 부조적 수법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의도적으로 부각하는 방식인 만큼, 객관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학자로서는 절대 채용하면 안 되는 서술 방법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3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제가 일본의 전쟁범죄가 아니었고, 조선인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닌 개인영업자였다는 주장에 반박한다. 이영훈 교수가 미군이 작성한 위안부 심문보고서를 앞뒤를 자른 채 교묘히 각색한 사실, 특정 인물(문옥주 할머니)의 증언은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그 인물이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 연행됐다고 증언한 내용은 믿기 어렵다고 부정하며 취사선택한 사실 등을 열거하며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어떤 식으로 왜곡하는지를 증명해낸다. 또한 저자는 태평양 전쟁 당시 동남아에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 현상이 일본과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제가 행한 경제적 조치를 언급하며, 조선인 위안부들이 마치 고수익을 올렸으며 폐업 역시 자유로웠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음을 낱낱이 알린다.

이 책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 이후 첫 반박서이다.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은 『반일 종족주의』의 무리한 주장을 순화하고 보완하는 내용을 일부 담고 있긴 하지만, 그 부조적 수법과 과장 및 왜곡, 거짓말은 여전히 이어진다.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이영훈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의 외교 철학을 담아 운명공동체 발언을 한 것을 빌미로, 대통령이 친중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 남한에서 못다 이룬 민족·민주 혁명의 길을 꿈꾸고 있다는 등의 침소봉대하는 주장으로 서문을 연다.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한국인이 샤머니즘에 빠져 있다고 비난하더니,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는 중세적 환상과 광신이 한국인을 사로잡고 있다고 탄식한다.

졸지에 한국인은 정신문화의 발전을 시작하지도 못한 원시인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일제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항일 민족주의를 반일 종족주의로 매도하는 것을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를 타도하고 이명박, 박근혜의 연성 파시즘에 저항하면서 뿌리내린 민주화의 빛나는 전통도 거짓말에 취한 대중의 난동쯤으로 폄훼하고 싶은 모양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는 일제 식민지 지배를 상찬하는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일제가 조선민사령과 조선형사령을 공포한 것을 계기로 한국인은 비로소 법 앞에 평등한 자유인으로서 사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자의적이며 폭압적인 재판 권력으로부터도 해방됐다는 주장을 편다.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두고서는, 옛날 일본에서는 그런 경우 목을 쳤으며 몇 푼의 돈을 위해 신생국 국민이 원 지배국에 가서 소송을 제기해 모국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막말을 퍼붓기도 한다.

저자는 두 권의 책을 면밀히 검토하며 그 논리와 실증이 예상보다 허술하고 형편없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반일 종족주의’로 인해 한국이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방면에서 위기에 빠졌다고 거창하게 주장하면서도 그것을 해결할 대안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전혀 없음에 아연해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반일 종족주의’라는 허상을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은 단순히 역사의 ‘거짓말’을 바로 잡기 위해 책을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매우 확실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듯합니다. 극우세력이 장악한 일본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친일 보수 정권을 한국에서 창출하고, 이를 통해 공고한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선악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일본을 좋아하면 선, 일본을 싫어하면 악입니다. 일본을 우대하면 나라가 흥하고, 일본을 배척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으로 하여금 일본을 싫어하게 만드는 역사 해석들을 골라내서 모조리 뒤집어버리는 엄청난 작업을 수행한 것이지요. 짐작건대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이 유독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까닭도 두 정부가 자존심을 가지고 일본을 상대해 일본 우익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반일 종족주의』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 한국에서 때때로 출현했던 친일 행각의 연장에 불과”하며 “명백히 친일적이고 자학적인 책”이라고 진단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주장하는 바의 이면에 숨은 정치적인 의도를 헤아리고 절대 현혹되지 말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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