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역사를 통해 근대의 풍경을 발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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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역사를 통해 근대의 풍경을 발굴하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7.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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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풍경의 생산, 풍경의 해방: 미디어의 고고학 | 사토 겐지 지음 | 정인선 옮김 | 현실문화 | 328쪽

이 책은 근대 이후 새롭게 출현한 인쇄·출판 같은 복제기술이나 철도 시스템 등이 ‘풍경’과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탐구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림엽서, 신문 및 잡지의 삽화, 풍속 채집 연구법 등을 분석하며 사회사나 문화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한편 가라타니 고진, 야나기타 구니오 등이 논한 풍경론을 이어받아 사회학자로서 독자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1900년대 초의 시각 자료를 풍부하게 활용해 미디어가 풍경을 왜소하게 만든 역사를 되짚으며, 오감으로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풍경을 해방시킬 것을 주장한다. 근대의 다양한 인쇄 매체, 고현학 연구 집단이 작성한 세세한 기록, 일상의 풍속과 생활상을 집요할 만큼 꼼꼼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시각 자료 등 이 책에 실린 도판은 어느 책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자료이며 그 자체로 풍부한 볼거리다.

풍경은 ‘미디어’와 ‘텍스트’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며 논의를 확장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풍경은 “텍스트의 누적으로, 사람들의 경험이 공유되고 그것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축적”을 갖는다. 그리고 사진이나 삽화, 영화 등 수많은 매체가 그 축적물을 구성한다. 그리고 보는 이와 보이는 것, 즉 풍경 사이의 거리를 매개하며 그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차의 창으로 도려내거나 까마득한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인간의 감각과는 유리되어버린 풍경, 사진이나 인쇄 같은 복제 기술 때문에 평면적이고 정적인 것으로 박제된 풍경, 문학의 소재가 되며 규범화된 풍경을 해방시키고 싶어 한다. 풍경이 시각 위주의 경험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되면서 인간과 풍경은 ‘교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저자는 그렇게 왜소해진 풍경을 일상 속에서 오감으로 경험하는 풍부한 풍경으로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문화와 자연을 대비시키는 기존의 풍경론에서 벗어나 인간 실천으로서의 풍경, 그리고 역사성을 가진 풍경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흥미 위주의 조사 기법일 뿐 체계적인 학문이 아니라고 조롱받는 고현학(考現學, Modernology)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점 역시 틀에 갇힌 풍경의 회복과 해방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저자는 1920년대 일본 고현학 그룹의 채집 활동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감각 전체를 동원한 관찰이라는 조사 방법이 가졌던 힘에 주목한다. 고고학이 고대의 생활문화를 고찰하는 학문이라면, 고현학은 현대사회 모든 분야에 걸친 변천을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그 진상을 규명하려는 학문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폐허가 된 도쿄의 번화가 모습을 살펴 일본의 서구화 경향을 밝혀보려 했던 일본 민속학자 곤 와지로(今和次郞)가 제안한 용어다. 고현학은 관찰과 채집을 통한 분류 통계, 스케치, 기보법, 전수 조사 같은 연구 방법을 사용하며, 엽서나 삽화, 사진, 석판인쇄, 수공예 등의 매체를 파헤쳤다는 점에서 미디어 고고학(과거를, 특히 영화와 TV 같은 대중적인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새로운 미디어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학문)의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저자는 고현학이 그러한 방법을 활용해 독자적인 시각을 구축하려 했다는 점에서 힘을 가졌다고 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림엽서 및 삽화 연구와 고현학 실험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풍경론 탐구 등 주제와 시기가 달리 쓰인 글들을 총체적인 경험으로서의 ‘풍경’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다.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근대 일본의 풍경에 켜켜이 쌓인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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