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역사, 문학의 층위에서 살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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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역사, 문학의 층위에서 살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7.2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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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20세기 전환기 동아시아 지식장과 근대한국학 탄생의 계보 |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 엮음 | 소명출판 | 437쪽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관련된 언어, 역사, 문학의 문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탈근대의 논의와 맞물려 이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입론들이 제출되고 또 과도하다고 할 만큼의 빈번한 토론이 진행된 바 있다. 특히 근대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한 기왕의 다양한 논의들은, 어떻게 해서든 각자의 영역에서 근대적 맹아를 발견하려 했던 과거의 목적론적 인식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다만 그러한 다양한 탈근대의 문맥 속에서 진행된 논의가 과연 실제 텍스트에 얼마나 깊이 있게 뿌리를 박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은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면이 있다. 첨단의 이론이 난무하는 과정에서 컨텍스트가 텍스트를 압도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이론은 전에 없던 시점을 제공해 주고 그리하여 새로운 맥락을 재구성해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와중에 이론으로는 설명해내지 못하는 어떤 징후들을 무심히 놓치고 지나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이 책은 1980년대 이래로 진행되어 왔던 한국학 관련 각종 자료들에서 주제어, 인물, 레퍼런스, 지명, 키워드 등을 추출하여 메타DB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학의 형성 과정을 재조명, 더 나아가 21세기 한국학의 전망을 모색한 사업의 성과다.

1부에는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업단의 고민이 담겨 있다. 이지원의 글은 총론적인 성격의 글로서 한국학의 근대성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동아시아라는 장과 그 연동성, 전통의 창출과 자국 문화의 체계화라는 자국학 형성의 보편성, 식민성과 그에 대한 사상적 실천적 분투가 그것인데 한국학의 지적 기반을 성찰하려는 우리의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송인재의 글은 한국에서의 개념사 연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의 가능성은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글이다. 개념사 연구의 과정과 그 학술사적 의미에 대한 성찰은 곧 우리 연구의 방향을 재점검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조형열의 글은 좀더 발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과연 한국학이라는 학문이 성립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몇 가지 주제를 통해 근대 시기에 한국학 형성의 기원과 전개 양상을 짚어보고자 했다. 김소영은 국민국가가 필수적으로 요청하는 ‘국민’이라는 주체 형성에 작동하는 여러 담론들을 검토하고, 그들이 구상했던 국가가 인민의 자유 의지와 계약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체감을 우선하는 ‘가족국가’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안예리는 그동안 다소 소홀히 다루어져 왔던 지석영의 국문, 국어 연구를 통해 한국어학의 게보를 재구성하고자 하였으며, 김병문은 당대에 숱하게 제출되었던 ‘국문론’이 과연 어떤 문헌들을 참조해 작성되었는가를 검토하여 당대의 상황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해 보고자 했다. 손동호의 글은 최남선이 주관한 『청춘』의 현상문예가 시문체의 확립을 지향한 것이었으며 거기에 당대의 한글 운동이 매우 긴밀히 결합되어 있음을 다룬 글이다.

3부에 묶은 다섯 편의 글은 근대한국학의 성립에 관여한 타자의 시선을 검토해 보는 것들이다. 김병문의 글에서는 이 시기 가히 경쟁적이라고 할 만큼 쏟아져 나온 서양인들의 이중어사전과 문법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상적 층위에 존재하는 ‘국어’를 발견하게 했는가 하는 점이 다루어진다. 유은경은 화가 고스기 미세이가 러일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진중시편’의 「조선일기」를 꼼꼼히 읽으면서 당시 일본 지식인의 조선 표상을 검토한다. 심희찬의 글은 초창기 일본 근대 역사학의 탄생 과정에서 ‘일선동조론’이 중요한 계기로 기능했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즉 ‘일선동조론’의 아시아주의적 측면을 통해 조선이라는 타자를 폭력적으로 포섭하면서 근대 일본사학이 성립했다는 것이다. 한편 미쓰이 다카시는 ‘일선동조론’을 ‘일조동원론’으로 고쳐 부르면서 ‘혼합민족론’이라 할 만한 견해를 제시한 기타 사다키치의 경우를 예로 들어 ‘일조동원론’이 1910년 이후 어떤 문맥 속에서 활용되어 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윤영실은 ‘national self-determination’에 대한 한ㆍ미ㆍ일의 해석 갈등을 조명하여 3ㆍ1운동기 식민지 조선 ‘민족’을 ‘nation’으로 역번역하고 ‘자결’의 주체로 선포했던 실천이 지닌 탈식민적, 국제정치적 의미를 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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