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바이옴기술 산업과 바이옴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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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기술 산업과 바이옴한의학
  •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 승인 2020.07.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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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규용의 행림방담(杏林放談)]
▲ 마이크로바이옴
▲ 마이크로바이옴

요즘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생물학의 오믹스(omics) 신지식들을 장착한 바이오기업들의 상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등장한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마이크로바이옴분야의 비상은 색다른 의미로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에 소개된 것은 아마 10년 남짓 될듯한데, 6~7년 전쯤 한 대학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뭔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당시는 위장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헬리코박터균이라며 항생제, 감기 걸려도 일단 항생제부터 써서 박멸을 능사로 알다가 갑자기 대장에 사는 세균들이 중요하다고 하니….불과 몇 년 만에 대기업이 몰려들고 창업러시를 이루는 과학기술의 힘에 새삼 놀라게 된다.

바이옴이란 기후조건에 따라 형성된 생물의 군집단위를 말하므로, 마이크로바이옴은 일정한 기후적 특성을 갖는 몸속 미생물세상으로 볼 수 있겠다. 장 속을 현미경으로 보는 게 아니라 기후적 특성을 가진 세계로 본다면 기(氣)를 중시하는 한의학이 빠질 수 없다. 그것도 여러 가지 해석이론이 있어서 각기 다른 치료원리와 효과를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간단한 아이디어 차원에서 소개하려고 한다. 다만 기를 중시한다고 형체연구(形)가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니니 해부학이나 진단체계가 없다는 비난으로 향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생물학에서 바이옴(biome, 생물군계)은 동식물의 군집만이 아니라 기후와 토양의 속성, 특히 기온과 강수량에 의해 구별되는데, 각 지역마다 변이가 있고 생물군의 천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바이옴의 범주를 명확하게 나누기는 어렵다고 한다. 한의학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천인상응론이라 하는데 이와 매우 흡사하다. 천인상응이란 하늘의 운행법칙에 따라서 인간과 만물이 생성변화하는 방식이 비슷하여 서로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한다는 논리이다. 하늘의 운행법칙이란 태양과 지구운동의 상관관계로 인해 생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과 동서남북 네 방위 및 중앙에 거주하는 인식자의 위치와 함께 다섯 방위가 형성된다. 다섯 계절이 생기는 이유도 설명이 필요하다. 봄에서 여름까지 기온이 오르다가 상승을 멈추고 가을 겨울에 기온이 내려가려면 반드시 조정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장마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계절과 방위에 따라 고유한 기후 즉 기온, 기류, 강수량이 대체로 정해지고 뭇 생명들은 이러한 환경조건에 적응하여 정착하거나, 적절한 먹이를 찾아 유목 혹은 이동하며, 궁극적으로 오행이론이 형성되는 근인(根因)이 된다. 그런데 지구에서 태양빛을 받아 대기와 물이 순환하며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생존이 보장되듯이 하나의 생명체에서도 대기와 물의 전신순환을 통해 생명이 유지되며, 순환할 때의 농도구배는 대체로 계절과 방위조건에 상응한다. 이런 논리가 오장육부의 기능과 병리해석으로 이어지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인체에서 위로 태양이 가깝고 심장이 있는 곳이 남쪽, 아래로 신장이 있어 물을 만들어 내려주는 곳이 북쪽이고, 동서는 간장과 폐장으로 각기 좌우에 배당되지만 이는 기혈이 오르내리는 길로서의 대사기능이 본업이어서 위치는 확정적이지 않다. 또 횡격막 아래(상완)에서 배꼽 바로 위(수분)의 부분 중에서 좌우로 2/3선까지가 대체로 비위(脾胃)에 해당하는 중앙이다.

기온의 고저에 따라 한서(寒暑)가 나뉘며 이를 신장과 심장이 조절하고, 강수량의 다소에 따라 조습(燥濕)이 나뉘는데 이는 폐장과 비장이 조절하며, 기류의 완급에 따라 풍화(風火)가 나뉘어 간장과 심포가 조절하는 것이 여섯 가지 내부의 기후(六氣)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의 대상이 되는 영역은 외부와 접촉하는 기관계통이 모두 대상이겠지만, 너무 광범하므로 여기서는 대체로 중앙부 비위의 아래로 이어지는 중하복부의 소장과 대장으로만 한정한다. 이곳에는 앞뒤로 신장과 방광도 있는데, 방위로 보면 북쪽이고 추워서 반드시 온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추위에 민감하고 취약한 사람들은 이런 네 장부의 기능이 쉽게 이상을 일으킨다.

더 자세히 보면 소장은 위에서 넘어온 음식물을 가공하여 영양분과 수분을 흡수하고 소변과 대변이 될 찌끼를 방광과 대장으로 내려 보내는 곳이라 가공과 흡수에 필요한 열에너지와 한기의 작용(연동)이 잘 조화되어야 한다. 이 기능을 비별청탁(泌別淸濁)이라 하는데, 한열이 교대하며 탁기가 생성되는 곳이라 공장에서 회장과 대장으로 갈수록 장내세균이 증가한다. 대장은 탁기만을 받아서 나머지 수분을 흡수하여 굳은 변을 만들고, 배출하기 위해 점액을 분비하는 곳인데, 이를 위해 건조하고 따뜻한 기후조건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도 탁기가 연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기후의 변이와 균총의 천이(遷移)가 일어남을 볼 수 있으며, 지구의 쓰레기를 부패시켜 분해하는 세균의 작용과도 같다. 실제 임상에서는 간담비위와 폐신심뇌 등과의 상호관계도 모두 헤아려야 하는데, 이것이 산업적으로 마이크로바이옴기술을 피부질환, 암, 비만, 여드름 등의 여러 질환에 응용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간단하게나마 인체를 하나의 기후생태바이옴으로 볼 수 있는 비유는 될 것이다.

▲ 마이크로바이옴 오장육부 이미지

그런데 이런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실 생리학적으로 체내기후조건을 정의하거나 적어도 관찰할 수 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한의임상에서 풍한서습조화의 기후조건으로 진단하는 징후나 증상지표에 대한 생물리화학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개연적으로 그러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우선 생물과학자들이 마이크로바이옴으로 명명한 이유가 하나의 방증이고, 간단히 부언하자면 한서는 평상시 심부체온과 조절패턴, 조습은 간질과 세포내 체액의 분포나 성상변화, 풍화는 신경호르몬계의 전달조절상태와 주로 관련된다.

여기서 산업적으로 응용할 때의 요점을 도출할 수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의 건강을 위해 유익한 장내세균수를 늘리고 위산을 피하여 장으로 보내는 신기술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세균이 살고 있는 기후환경조건을 적합하게 개선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균총의 분포가 달라지면 결과적으로 장의 기능상태, 나아가 기후조건이 개선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소장과 대장의 기후조건이 개선되면 세균총의 활성과 생존조건은 훨씬 더 쉽게 증가될 수 있다. 이러한 양방향기술을 병합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고, 나아가 개인별로 최적의 기후조건을 찾아주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부가산업이 될 수도 있다.

한의학은 인체를 바이옴의 일부이자 독립적인 마이크로바이옴으로 간주하여 왔는데, 이것이 곧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이다. 따라서 세균은 바이옴의 기후조건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환경의 일부이며,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는지를 판단하지 무조건 죽이려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항바이러스, 항균효능을 갖는 약물들을 처방하는 것도 약리적 효능이 아니라 약물의 기미론에 근거하여 체내 장부기관 고유의 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19~20세기에 환경위생개선을 통해 건강과 수명이 가장 효과적으로 향상되었다 하고, 인간의 생존이 결국 이상기후로 귀착된 현재 상황에서 세균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

인간과 동식물, 그간 항상 살멸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던 세균을 포함하여 자연은 본래 건강한 존재이다. 기후환경이 맞는 본래 있을 곳에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불편을 야기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세균을 직접 죽여 우리 자신도 함께 상하기보다는 환경을 변화시켜 그들 스스로 물러가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다.

개인의 건강수준은 출발점이 모두 달라서, 일단 병이 생기고 나면 주어진 상황에서 내외환경을 자신의 생존에 보다 적합하게 변화시켜 생리적 평형을 회복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깡귀엠은 이것을 “새로운 규범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신체는 임의로 이래저래 바꿀 수가 없고, 생명체의 기능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 당연한 결론이다. 그러므로 발병 전의 양생을 통한 예방과 발병 후의 친환경적 치료원리를 함께 구사하는 평화적이고 신사적인 마이크로바이옴기술이 다양하게 모색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 있다. 대한동의병리학회 회장, 동의대학교 한의학연구소장과 한방바이오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사는 한의학이 예전에 누렸던 정상과학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과 한의학 이론의 일반화다. 저서와 역서로는 『격치고역해』, 『새로운 한의학 터닦기』, 『상한론정해』, 『현대상한론』, 『한방병리학』,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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