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꽃 심은 데 메꽃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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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심은 데 메꽃 나고
  • 배광식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0.07.19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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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작년 초여름 들에 나갔다가 둔덕길 경사면에 핀 메꽃을 보았다. 메꽃이 잡풀들 사이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생육이 워낙 좋아 다른 식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화분 외에 심지 말라는 주의도 무시하고 한 포기를 캐다가 집 꽃밭에 옮겨 심었다. 생육이 워낙 좋다는 말이 무색하게 시들시들하더니 며칠 후에는 완전히 줄기만 남았다가 그나마 말라버렸다.

양평 장날이면 장 구경을 하고, 장마당에 항상 나오는 두어 개의 꽃전이나, 장에서 조금 떨어진 남한강 강가의 비닐하우스 화원에 들러 풀꽃 화분 한두 개씩 사다가 꽃밭에 심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은 꽃밭이 꽉 차서 잔디마당 변두리의 잔디를 떠내고 꽃을 심다 보니 경계 없는 꽃밭이 또 생겼다. 이 꽃밭에 심은 메꽃이 말라 죽은 것이다.

올 6월 이꽃 저꽃과 잡풀이 뒤섞인 꽃밭 뒤편에서 메꽃 한 송이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메꽃의 줄기를 눈으로 좇다보니 작년에 캐다 심은 자리에서 난 것이다. 한 열흘 지나고 보니 다른 줄기가 앞쪽으로 벋어 잔디밭으로 기어 나오며 꽃을 계속 피우고 있다. 생육이 워낙 좋다는 말이 이제 실감이 난다.

서울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는데 실업 과목이 공업이나 상업이 아닌 농업이었다. 재미가 있어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시험은 거의 만점이었다. 실습도 없이 이론으로만 배운 농업이었으나, 이제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조그만 텃밭에 남새를 심어 먹는다. 어릴 때 배운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코로나19로 초중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화상 강좌를 통해 학습 진도는 나갈 수 있으나, 또래들끼리 어울려 사회생활도 익히고, 인성을 연마하는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비대면의 문화가 이들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02년에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그 동호인들이 매월 3~4회 오프라인 모임도 가지며 거의 20년 가까이 함께 공부하였는데 코로나19로 2~3개월 쉬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쉽게 가시지 않을 조짐이어서 5월부터 줌(Zoom)을 이용한 화상 강독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조금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단점 중의 하나는 함께 독송하면 참가자간에 시차가 있어, 합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식순을 녹화해 놓고 합독할 내용을 귀로 들으며 속으로 따라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자료 준비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동호인들이 오프라인 강독 때보다 집중도가 더 올라갔다는 평이다.

대학 때 종교 써클조차도 주체사상 등의 이야기가 빠지면 안 되고, 이념투쟁을 일삼던 시대를 지낸 세대가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데크 앞 꽃밭의 작은키 틈나리가 붉은 꽃을 한참 피우는 때에, 큰키 틈나리는 계속 초록색 꽃봉오리를 고집하다가, 작은키 틈나리 꽃잎이 떨어질 즈음에야 꽃봉오리 색이 투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언제 꽃 필까 조바심내며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나가보기를 십여 일 한 이후에야 향기와 더불어 노란색 틈나리가 예쁜 얼굴을 내밀었다.

씨를 뿌리면 다음 세대가 그 열매를 누린다. 불철주야 일에 매진하며 산업화를 이루어낸 세대는 이제 늙어서 뒷전에 물러나 있거나 유명을 달리하였고, 민주화 투쟁의 간판을 걸고 공허하고 파괴적인 이념화 투쟁에 몰두한 세대가 그 열매를 누리고 있다. 이 세대는 다음 세대에 어떤 열매를 물려줄 것인가? 물려줄 열매는 있는 것인가? 기껏 마련한 거북선들을 깨 먹는 우(愚)는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어갈 지금 씨앗인 세대는 어떤 공기를 흡입하고 익어가고 있는가?

2차 대전 종전 이후 시작된 냉전시대가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소련 붕괴로 종식되었고, 인터넷과 디지털 사회의 기반에서 30여 년간 글로벌 시대를 구가하였다. 이제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 사태로 탈글로벌화가 일어나고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조선말 개화기에 내부적으로 혼란상을 겪으며 세계정세를 오판한 대가로, 식민지 시대를 겪으며 혹독한 고초를 겪다가 2차대전 종전을 맞아 타력으로 분단된 자유민주 국가로 겨우 독립하였다. 정확한 세계정세의 분석과 판단으로 어느 강국의 편에 설 것인지 잘 선택하고,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차세대인 영상세대, 비대면 문화세대를 4차 산업혁명의 이기를 바탕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육성해갈 것인지 시급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이다.
메꽃을 심으면 메꽃이 나는 법이다.


배광식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로 치의학박물관장, 대한치과보존학회장, 대한치과의사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선학원 중앙선원 선정회장, 도봉산 광륜사 신도회장, 서울대 교수불자회(불이회) 회장과 조계종단 종교평화위원회 전문위원 및 국제포교사회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충남 태안에 금강카페 수련원 ‘묘금륜원渺金輪園’을 짓고, ‘사단법인 참수레’를 설립하였다. 저서로 『금강심론 주해 I』, 『금강심론 주해 II』, 『천 개의 연꽃잎으로 피어나리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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