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자연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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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자연선택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0.07.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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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동물 세계에서 동종 간의 상호작용에는 이해득실이 있다. 동물들은 집단을 이루어 생활함으로써 포식자의 위협을 감소시킬 수 있고, 먹이 사냥에 협동 작업을 하여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새끼 양육에도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집단생활은 한정된 자원과 자손 번식에 있어서 극심한 경쟁과 갈등을 유발한다. 이런 문제는 인간 사회에서도 동일하다.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사회에서도 협동과 이타적 행동을 볼 수 있다. 동물사회에서의 협동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는 증거들이 있다. 가족을 이루어 사는 코끼리 집단에서 구성원이 죽으면 가족 코끼리들이 거의 한나절 동안 사체를 어루만지며 사체 주위를 돌다가 다음 목적지로 떠난다.

▲ C. Darwin
▲ C. Darwin

자연선택의 결과물이 적응이다. 자연선택은 종들에게 많은 적응 결과를 출현시켰다. 다윈(C. Darwin)은 조류의 긴 꼬리와 포유류의 인상적인 뿔 및 개구리의 노래 등 많은 종에서 보이는 수컷의 구애 행동을 성 선택(性 選擇)으로 설명하였다. 일부 동물들은 다른 개체들을 향해 보다 우월적으로 행동하는데 이런 상호작용 결과 순위가 형성된다. 순위제는 동물 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먹이, 교미 상대와 보금자리에 대한 용이한 접근을 통해 특정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미친다. 곤충이나 벌 등의 일부 종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변하지 않으나 인간과 다른 영장류 같은 사회적 포유동물은 일생 동안 여러 사회적 순위를 이동하는 적응적 특성을 갖고 있다. 윌슨(E. O. Wilson)은 사회생물학을 집단생물학과 진화이론을 사회 조직으로 확대한 것이라 정의했다. 그는 이 틀 속에서 사회적 행동은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해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틴베르헨(N. Tinbergen)에 따르면 사회적 행동은 유전, 생리 및 환경 요인들의 조합을 통해 일어난다. 인간의 뇌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공하는 신경회로를 발달시켜 왔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이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조형되고 결정된다고 가정한다. 특정 집단에서 각 개체는 서로 다른 행동을 보인다. 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생쥐들은 그들의 행동에 따라 소심하거나 대담한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대담한 개체들은 자원과 배우자에게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으나 포식당할 위험성이 높을 것이다. 또한 행동은 성장 및 물질대사와 관련이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개체들은 물질대사를 지속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더 용감한 경향이 있다. ‘높은 물질대사’ 특징은 관련된 행동과 함께 후손에게 전달될 기회가 증가된다. 동물은 행동을 학습하거나 변화시킴으로써 선택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붉은사슴>은 인간의 사냥철이 시작되면 피식압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의 서식지를 옮긴다.

다른 종들처럼 인간도 굶주림, 재난 또는 기후 같은 일상적인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문화는 기술을 포함한 특정 형태의 학습된 행동으로 정의된다. 옷이나 집은 추위를 견디게 하고, 농사는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에, 문화를 다른 선택압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방패로 여겼다. 이 완충작용 때문에 문화는 인간의 진화 속도를 둔화시키거나 또는 먼 과거에는 멈추기까지 했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다른 시각에서 문화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다. 문화가 인간을 보호해줄지라도 문화 자체는 자연선택의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새로운 식생활 같은 지속적인 문화적 변화에 대해 유전적으로 적응하며, 이 상호작용이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를 일으켜 인간 진화의 우세한 양식이 되었을 것이다.

▲ R. Boyd와 P. Richerson
▲ R. Boyd와 P. Richerson

보이드(R. Boyd)와 리처슨(P. J. Richerson)에 따르면, 유전자와 문화는 인간의 진화과정에 서로 얽혀있다. 문화가 선택압으로 작용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대한 타당한 증거는 북유럽인에게서 발견되는 <유당 불내증>이다. <유당 불내증>은 북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목축 사회에서도 발견된다. 두 지역에서 서로 다른 돌연변이가 발견되었으나, 이유(離乳) 후에 유당 분해 유전자가 꺼지는 것을 차단하는 같은 결과를 나타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젖을 뗀 직후에 유당을 소화시키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나, 약 6,000년 전부터 북유럽에서 양을 키우던 부족의 후손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유전자가 켜져 있다. <유당 불내증>은 우유를 마시는 문화적 실행이 인간의 유전체에 진화적 변화를 일으킨 사례라 할 수 있다. 성인이 우유를 분해함으로써 얻는 추가적인 양분은 자손의 생존율을 높이고 결국 집단 내의 유전자 풀(pool)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선택이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의 특징에 관련된 인간의 유전체 중 10% 정도를 탐색한 결과 약 2,000 종류의 유전자에서 선택압을 받고 있다는 표지를 찾아냈다. 이 결과는 많은 유전자가 문화적 선택압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과 아시아인의 창백한 피부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지리와 기후에 대한 적응 결과이다. 미각과 후각에 관련된 유전자들 역시 선택압을 받는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유목생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생활방식 변화에 따른 식재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아밀라아제는 침에 존재하는 효소로 전분을 분해한다. 농경사회 사람들은 전분을 보다 많이 섭취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수렵이나 어업에 의존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본(寫本)의 아밀라아제 유전자를 갖게 되었다. 인간의 진화는 문화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가속화될 수 있다.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작용에 대한 수식 모델은 이 형태의 자연선택이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는 자연선택을 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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