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수-한국 조형의 미감과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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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수-한국 조형의 미감과 생명력
  •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 승인 2020.07.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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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그림이야기]
@ 심정수, 가슴뚫린 사나이, 브론즈,1981_90x35x45cm
@ 심정수, 가슴뚫린 사나이, 브론즈,1981_90x35x45cm

회화가 2차원의 평면에 가상으로 형성된다면 조각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이다. 동시에 그 물질은 주어진 공간을 점유하고 실세계로서 자존한다. 이 점이 회화와 다른 점이다. 조각가란 존재는 자기 앞에 놓인 물질, 사물과 함께 사는 이들이자 그것으로 꿈꾸는 이들이다. 물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그 물질에 말을 건네거나, 물질 스스로 발화하도록 도와주는가 하면 외면에 감춰졌던 본 모습 같은 것을 드러낸다. 결정적인 순간 그것을 추출해 내는 일이자 그 사물, 물질에서 얼핏 보았던 모습을 얹혀준다. 그것은 진정으로 나 이외의 또 다른 존재, 타자를, 세계를 알고자 하는 일이고 이해하는 일이자 인정하는 일이다.

심정수는 한국의 원로 조각가다. 그는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작업세계를 추구해오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내재한 조형미와 한국인의 얼굴 등을 구상과 추상이 혼재된 어법 안에 융합해내면서 조각의 경계를 확장한 이로 한국 현대조각사에 이름을 올린 이다. 상투적인 인체조각이나 형식적인 추상조각이 지배하던 시기에 심정수는 그와는 다른 방법론을 모색해 온 이였다. 서양의 조각적 세례를 받아 출발한 한국 근·현대 조각의 역사 안에서 그는 우리 전통 안에서 조각적인 것들을 추출해내고 이를 계승하는 한편 자신의 시대에 뿌리 내린 현실과 역사의식의 날을 세워온 이라고도 논의되고 있다.

그는 80년대 이후 인체와 자연을 소재로 해서 우리의 정치적 현실과 민중의 삶, 그리고 이후 자연의 신비와 생태. 환경에 대한 주제 의식을 펼쳐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1980년대 인체의 자유로운 변형과 과감한 구성을 통해 사실적이면서도 환각적인 미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조각, 현실적 주제의식을 거느린 형상조각으로 돌올했다. 그런데 그가 본격적인 조각 작업을 시작하던 1980년대 그의 화두는 ‘한국적 조형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놓여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80년대에 그가 주목한 이른바 한국 조형의 본질로 볼 수 있는 것들은 민간신앙, 농민의 모습, 농기구의 형태, 샤머니즘 등이었다. 농민의 울퉁불퉁한 근육은 한국의 산하에 독특하게 자란 소나무의 형태와 너무나 닮아있었고, 한국의 바위나 지형과도 닮아 있었다고 한 그는 그것들을 집약하여 표현하고자 한 것이 바로 80년대에 작업한 인체들이다. 그 작업들은 흙으로 빚은 소조의 맛과 구상의 틀에 과감함 타공과 거친 터치, 형태 변형으로 이루어진 파격적인 구성을 거느린 것들이다. 그리고 민불이라든가 장승이라든가 농기구 등 우리 민족의 삶의 숨결이 배어있는 소재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 형식을 오늘의 삶에 기반해서 재구성, 기층 민중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살아 숨 쉬는 조형의 편린 속에서 우리 조각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특히 무덤가에 자리한 문인석, 무인석이나 장승, 석불을 응용한 작업 내지 전통 연희의 한 장면에서 연유하는 포즈들은 그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작업의 한 축은 1980년대 암울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연유하는 심리, 상처 등의 메시지를 인체의 과감한 변형, 구상과 추상의 공존, 그리고 의도적으로 표면에 만든 흔적이나 구멍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둠으로써 한 단계에서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재료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확인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계속적으로 관람자가 작품을 과정의 결과로서,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상을 이루는 행위의 결과로서 인식하게 만든다. 즉 ‘의미는 경험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 자체에서 발생한다’는 관점을 관람자에게 주입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로인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정형의 형상을 관자에게 선사하고 보는 방향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각은 그만큼 다채로운 표정, 다면적인 공간을 안겨준다.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우리 전통문화나 조형물에 나타난 한국적인 미감이나 정서를 구현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당대의 사회적 삶과 현실을 반영하는 인체를 거느려왔다고 본다. 이후 이 관심은 점차 확산되어 역사와 생태, 환경 (<서해안>시리즈) 등의 문제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러한 주제 역시 지속적으로 그가 이 땅에서 길어 올리려 했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 미와 현실이라 하겠다.

아울러 그는 자신이 다루는 주제를 흙이라는 물질과 소조라는 방법론를 중심으로 구현해왔다. 그는 소조를 매우 강조하는데 이는 조각의 기본적인 기법인 동시에 조각에서 체온을 전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의 육체가 재료와 직접적으로 닿는 것, 그것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는 것이 흙이라고 보기에 그렇다. 중간 매체를 쓰지 않고도 직접 손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흙이 장점이라고 보는 그는 이 ‘자연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재료’를 통해 한국인의 얼굴과 한국 조형에 깃든 미감과 당대 현실의 문제 등을 두루 탑재하고자 했다. 소조를 중심으로 해서 그는 이후 용접과 석조, 스테인레스스틸 및 오브제 등을 활용하는 다채로운 작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강렬한 색채와 그림, 빛 등을 조각과 접목시키고 있다.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른 다채로운 재료와 기법의 활용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처럼 그는 조각으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 즉 기본적으로 서사/내용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서사는 여전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안에 녹아있는 우리 조형의 미감과 생명력이었다고 본다. 심정수의 1980년대 작업부터 최근작 중 핵심적인 작품들이 마침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현재 전시되고 있다.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연수를 마쳤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1999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대학교 서양화·미술경영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시분석, 미술비평, 큐레이터십, 이미지 읽기, 현대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대 사회주의미술관의 비판적 고찰」 「한국 현대동양화에서의 그림과 문자의 관계」 등이,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 미술』을 비롯해 다수가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원 이사, 정부미술품 운영위원, 아트페어 평가위원, 2020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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