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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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부끄럽다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0.07.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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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뉴스 듣기가 괴롭고 두렵다. 부모라는 사람이 아홉 살 어린아이를 가방에 넣고 밟아 생명을 뺏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도자라는 사람이 자신이 도와야 할 사람에게 쉬지 않고 가학행위를 하고, 또 그들을 관리하는 기구들에서는 ‘숨 쉴 수 없다’는 절박한 호소조차 무시하여 스물세 살의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부모니, 지도자니 관계기관이니 하는 ‘친밀성’이나 ‘책임성’을 들먹일 것도 없이,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황폐하고 잔혹할 수 있는가. 악마와 괴물의 세상이 따로 없다.

어느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에 몇 십만 명이 동의했다고 한다. ‘노력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뺏는 게 평등이냐’는 초점이 어긋난 말도 있고, ‘5등급 인간’ 어쩌고 하는 경악스런 말도 들린다. 사정에 대한 진지한 이해나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무엇이 내게 이익인가’의 성마른 계산과 충동적 반응만 남았다. 게다가 혐오나 증오를 부추겨 이득을 얻으려는 인사들이 끼어들어 상황을 더 극단적으로 만들고 있다.

G7에 초청받았느니 어쩌니 하면서 ‘선진문명국’ 반열에 들어선 듯 허세를 부리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쩌면 모두가 자기 이익의 추구에만 맹목적으로 몰두하여, 작은 자극에도 짐승조차 꺼려할 험악한 말들과 행위들로 반응함으로써 ‘사람이 사람에게 늑대(homo homni lupus)’인 야만의 상태에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평생을 ‘교육자’입네 하며 살아온 나도 그런 맹목과 야만을 만들어낸 인사들 중 하나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며 승리자를 축복하고 패배자를 닦달했다. 타인을 짓밟으라고까지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타인에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치지 못했다. 서로 의지하고 부조하며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출세’한 인사들을 칭송하며 성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라고까지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정직하고 정당하라고 가르치지 못했다. 이익 앞에 서면 부끄러움을 살피라고 가르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가르쳤지만, 무엇이 성공이고 왜 성공해야 하는가를 가르치지 않았다.

학생들 이야기까지 할 것도 없다. 연구자로서 나는 동료 연구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지 못했다. 내 연구가 바쁘다는 핑계로 동료들의 연구는 물론 그들의 처지조차 외면하고 무시하며 논문 편수를 늘리는 데 몰두했다. 동료는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경쟁 상대일 뿐이었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든 그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놓아야 했다. 그들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놓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불안했고 그래서 늘 의심했다. 성과에 급해 거친 주장을 설익은 채 내놓기 일쑤였고 이익에 눈이 어두워 부끄러움을 잊은 적도 더러 있었다.

지식인으로서 나는 사람을 줄 세우고 차별하는 제도들과 그 제도들을 강제하는 권력에 침묵하고 방조했다. 교육부가 대학들을 줄 세우고 꼴찌 대학을 퇴출한다고 겁박할 때에도, 또 총장이 학과들을 줄 세우고 꼴찌 학과를 폐쇄한다고 등을 칠 때도 나는 침묵했다. 다른 곳도 아닌,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부가 그리고 사람을 키우는 대학이,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을 추동하고 파시즘 체제의 인종차별과 인종 절멸을 정당화한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를 ‘경쟁력’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강제할 때에도 나는 그것이 반(反)교육적일 뿐 아니라 반(反)인륜적이라고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나만 아니면 괜찮다”며 방조하고 영합했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적나라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내가 ‘선생’이며, ‘연구자’며, ‘지식인’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왔다. 어느 희극인은 ‘1등만 기억하는 고약한 세상’을 규탄했지만, 나도 세상을 고약하게 만드는데 한몫을 했다. 그래서 악마와 괴물의 세상이 더 두렵고 더 부끄럽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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