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해방과 6.25 그리고 가족비화家族祕話
상태바
내가 겪은 해방과 6.25 그리고 가족비화家族祕話
  • 류근조 논설고문/중앙대학교 명예교수·시인
  • 승인 2020.07.05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근조 칼럼]

나는 한국 나이로 81세, 음력으로는 5월 4일 경진생庚辰生이다. 그러니 바로 이틀 전 24일이 내가 태어난 생일에 해당한다. 그러나 굳이 이 글쓰기에 그 동기를 부여한다면 다음과 같은 나를 에워싼 개인적 환경요인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코로나19의 상황 속에서도 비대면으로 6·25전쟁 발발 당시 한국전에 참전해 목숨 바쳐서 북한과 공산권 국가들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세계 각국 전몰 우방국 정상들이 보낸 담화 내용과 국내에서 펼쳐진 각종 행사는 물론 국가 정상의 여러 유공 서훈 행사 등도 주의 깊게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시점에 새삼 당시 내 유소년기幼少年期를 거치면서 실제 나 자신이 겪은 일종의 개인사적 비화祕話 성격의 체험담을 있는 그대로 써서 회고해 보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시의적절時宜適切하고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기억은, 사람들이 해방됐다고 하는 1945년 8월 15일 바로 그날 나는 5세의 철모르는 나이여서 해방의 의미를 알 리 만무 했지만, 다만 연鳶을 날리기 위해 마을 동산에 있었고 그 시각 어디선가 거센 바람에 까치 둥우리가 공중에 통째로 날리던 것을 목격했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후 5년 뒤 1950년 소학교 입학 초여름 나는 고향 집 마루 모기장 속에서 영문 모른 채 잠에 취해 있었는데 잠결에 어떤 분이 나를 팔로 안아다가 인근 대숲에 내려놓던 기억도 새삼 기억이 새롭다. 지금부터 어언 70여 년 전의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얼마 후 6월 29일쯤엔 이웃 마을 어디쯤에선 신동엽申東曄의 시 <진달래 山川>에도 나오는 장총의 따~쿵 소리와 드르륵드르륵 따발총(꽹과리 모양의 탄창이 달려 연발이 가능한) 소리가 들려왔다. 인민군이 내가 살고 있는 전라도까지 쳐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일시에 인민공화국의 지배권 아래 들어갔고 무슨 기준에서였는지 부역자란 미명하에 경찰에 근무하던 아랫집 친구 아버지는 무참하게 살해됐다. 이 외에도 죄명 미상의 이웃들이 끌려가 살해돼 구덩이에 파묻히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사태에 직면, 슬퍼할 사이도 없이 시체더미를 헤집고 자기 가족을 찾아 나선 가족들이 지르던 비명과 애태우던 모습에 대한 기억은 마치 어제 일 같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위에 쉬파리 떼들이 엉겨 붙던 비정의 장면들도 떠오른다.

당시 필자에게는 위로 형님이 두 분 계셨는데 맨 윗 형은 군내서도 머리가 뛰어난 사람만이 합격이 가능하다는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였다. 그 당시 사범학교 본과 재학생과 출신들에게는 소위 공산주의(사회주의) 이론의 탐닉耽溺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었다는 것을 뒤에야 나는 알게 됐다. 그리고 실제 그런 이유로 당시 형님이 소학교 교사에서 실제로 훨씬 상위 자리로 옮겨 복무하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리고 역사는 반전이 돼서 9·28 수복으로 이어지고 전에 인공산하에서 숨어 지내다 다시 나타난 둘째형은 논산 훈련소 인근 파견소 헌병대장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반전 상황에서 나는 어머님께서 그 형을 위해서 손수 마련해 준 옷 보따리 심부름으로 산속을 지나면서 이따금 그때까지도 치워지지 않은 무고한 동족의 시체더미를 뒤지는 미친개들을 목격, 슬픔은 고사하고 무서움에 질려 벌벌 떨던 기억이 지금도 역력하다.

그러니까 필자는 두 형제사이에서 서로 다른 이념의 대립이 아닌 기구한 가족사를 경험하게 된 어찌 생각하면 불운아였다는 사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계사 속에서 하필이면 지정학적으로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이 시기에 한국 땅에 태어나서 필자가 겪었던 이 비화는 과연 내 개인적인 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세계적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의미도 갖는 것인지는 필자로서는 아직 잘 분간이 안 된다. 아니, 그저 답답한 유예사항으로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이 땅의 주인공이 될 미래세대와 내 자식들은 물론 제3세대 손자, 손녀들에게까지도 가장家長으로서 가족사家族史의 일부이면서도 세계사적으로 관련된 이 같은 민족사적 내용을 얼마큼이라도 전해줄 의무가 있다는 신념엔 전혀 변화가 없다.(2020년 6월 26일) 


류근조 논설고문/중앙대학교 명예교수·시인

중앙대 국문과 명예교수로 시인이자 인문학자.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로 『날쌘 봄을 목격하다』, 『고운 눈썹은』 외 『지상의 시간』, 『황혼의 민낯』, 『겨울 대흥사』 등 여러 시집이 있다. 2006년 간행한 『류근조 문학전집』(Ⅰ~Ⅳ)은 시인과 학자로서 40여 년 동안 시 창작과 시론, 시인론을 일관성 있게 천착한 업적을 인정받아 하버드 대학교와 미시건 대학교의 소장 도서로 등록되기도 했다. 현재는 집필실 도심산방(都心山房)을 열어 글로벌 똘레랑스에 초점을 맞춰 시 창작과 통합적 관점에서의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