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환이 말한 ‘유비무환’(有備無患) 삼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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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환이 말한 ‘유비무환’(有備無患) 삼대 조건
  • 하태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형법
  • 승인 2020.07.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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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나는 궁형에 항거하여 이 책을 쓴다.” 《사기》는 사마천 피눈물로 쓰인 역사서다. ‘고독한 지식인 혈서’라고 말한다. 인간 흥망성쇠를 기록한 중국 최초 역사서다. 그리스 헤로도토스(Herodotos)가 저술한 《역사》보다 약 3백여 년이 늦다. 기원전 97년경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천 분노가 담겨 있다. 권력을 가진 자의 오만, 재물을 탐하는 자의 오만을 기록하고 있다. 인간이 저지른 오만은 언젠가 심판 대상이 된다. 이번 여름에 ‘오만한 자의 방자한 숨소리’를 읽으시면서 건강하고 유익한 시간 보내시길 기원한다.

제나라 제상 맹상군(孟嘗君)은 ‘식객 삼천’으로 유명하다. 맹상군은 ‘식객’ 인재를 극진히 대접했다. 난세에 유세객은 의견과 사상을 전하는 고급정보원이었다. 식객은 학문을 익히고, 정치를 논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진언하며,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산둥성 등주(登州), 설(薛) 땅에 1만 호를 가지고, 인재를 두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객도 등급이 있었다. 1등급·2등급·3등급이었다. 능력도 다양했다. 유세·도둑질·동물 흉내·검객 등이다. 식객을 운영하는 방법은 재산을 풀고, 자신은 검소하게 생활하며, 이자로 식비를 충당했다.

어느 날 거지가 짚신을 신고, 맹상군을 찾아왔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3등급을 주니 고기반찬을 탓하고, 2등급을 주니 마차를 탓했다. 1등급을 주니 집을 탓했다. 이 사람이 풍환(馮驩)이다. 말주변이 좋고, 인물이 출중했다. 이자 청산객으로 활동하며 존재가치를 드러냈다. ‘탕감과 연장’으로 현 상황을 정리하고, ‘은혜와 의리’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백성을 아끼지 않으면, 백성은 영주를 배신한다. 돈도 잃고 명예도 잃는다.” 풍환은 인도적 부채청산론으로 맹상군 평판을 한껏 높였다. “백성들이 나리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진 영주라는 이름을 천하에 알렸습니다.” 맹상군은 풍환의 깊은 뜻을 늦게 깨달았다.

오늘의 식객들은 직원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맹상군 평판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잘 나가면, 이간질이 들어온다. 중상모략이다. 맹상군도 피해갈 수 없었다. ‘재상이 역모를!’ 결국 재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삼천 식객은 맹상군 곁을 떠났다. 부귀를 누릴 때는 따르는 사람이 많고, 비천해지면 벗도 떠나는 것이다. 자기들이 원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풍환만이 맹상군을 따랐다. 풍환은 맹상군을 위해 진나라, 제나라를 오가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교토삼굴(狡免三窟), 고침무우(高枕無憂), 고침안면(高枕安眠)이다. 은혜와 의리로 민심을 얻도록 했고, 재상 복귀를 통해 우환을 줄였고, 종묘를 설 땅에 유치하여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주변 민심·제자리 근무·정서적 인질론이다. 인덕(仁德)·지위(地位)·평안(平安)이다. 이것이 풍환이 말한 ‘유비무환’(有備無患) 삼대 조건이다.

사람은 제각기 쓸 곳이 있다. 계명구도(鷄鳴狗盜)다. 풍환은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기한을 연장해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차용증서를 거둬들였다. 이것이 식객을 가진 사람의 자세이고, 진정한 식객의 기본자세다.

식객을 갑질 대상으로 삼고, 식객은 비위만 맞추는 식충이로 전락한 오늘의 기업문화·조직문화가 서글프다. 동양고전에서 ‘식객 삼천’의 철학을 제대로 배웠다면,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갑질’도 ‘식객론’의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아파트경비원·대학운영 사태도 마찬가지다.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풍환이 묵자(墨子)의 고향 등주, 설 땅에서 펼친 기막힌 ‘부채청산 방법론’은 오늘의 관점에서 완벽하다. 이것을 제도화하면, 법률이 되는 것이다. 고전의 힘이다.

사마천 《사기》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오는 풍환 이야기는 사마천이 왜 위대한 역사가인지 말해 준다. 사마천·맹상군·풍환, 너무 깊다.

130권 52만6천5백 자 〈태사공서·太史公書〉는 궁형 굴욕 8년 후 완성되었다. 3.000년을 통찰한 천명과 인간세상 이야기다. 고전을 읽지 않으니, 시끄러운 것이다. 인간의 오만은 보복을 받는다. 이것이 역사다.


하태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형법

독일 할레대학교(Halle Universitat)에서 법학 박사학위(Dr. jur)를 받았다. 경남대 법대 교수를 거쳐 현재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다. 법무부 형사소송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 위원·남북법령연구특별분과위원회 위원, 변호사시험, 행정고시, 입법고시 출제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 비교형사법학회 회장, 영남형사판례연구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Belastende Rechtsprechungsanderungen und die positive Generalpravention》, 《독일통일 현장 12년》, 《형사철학과 형사정책》, 《형법각칙 개정 연구-환경범죄》, 《하마의 下品 1·2》, 《의료법》, 《생명윤리법》, 《사회상규》,  《형법조문강화》,  《형사법종합연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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