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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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죽어가고 있다
  •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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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칼럼]

대학이 생겨난 이후로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는 가속화되었다. 대학의 역할과 기능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다. 대학의 구성원이 시대를 이끌어 나갈 최고의 역량을 가진 인재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인재들을 키워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원화되고 전문화된 시대일수록 각 영역은 전문가의 식견과 지혜가 더욱 요청된다. 현실적 난제가 생겨났을 때는 더더욱 전문가들의 의견과 판단이 절실해진다. 이러한 전문가 집단체의 총화가 대학이 아닌가? 그동안 대학은 코로나19가 진행되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으며, 곳곳에 그 상처는 덧나는 형국이다.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라, 코로나로 인한 상처가 언제 아물게 될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세계사적 위기 앞에 한국대학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면대면 교육이 힘이 드니, 그동안 비대면 수업하기에 급급한 한 학기를 보냈다. 길다면 긴 한 학기의 시간을 보내면서, 대학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앞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서 어떠한 집단 지성의 목소리를 내어놓았는가? 일부 공공 기관이나 단체에서 코로나 위기 이후의 미래를 조명하는 심포지엄을 갖기는 했다. 그곳에 일부 교수들이 발표자로 혹은 패널로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주문이라 총체적 미래상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의학계나 자연과학 계열의 전문가 집단들이 일차적으로 현실적 대응을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위기는 전방위적이기에 그 대응 방식은 모든 영역으로 확대돼야 한다.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적 가치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삶의 과제가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학은 각 분야별, 영역별로 적절한 대응책과 미래의 삶에 대한 비전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이 고민으로만 끝나거나 고담준론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현대사회는 다원화되고 전문화되어 있지만, 그 영역은 각기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유기적인 관계망 속에 얽혀있기에 위기의 대응 방식도 각개전투식을 넘어서야 한다. 각 영역에서 제기되는 대안은 종합되고 통합되는 선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 방안은 늘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대학은 발 빠르게 전문 영역은 영역대로 현실적 대응책을 마련하여 제안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다시 통합적인 시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역할을 대학이 안고 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학 자체의 운영에 발목이 잡혀, 이러한 현실적 위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나 대안에 대한 고민은 깊지 않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대학도, 어느 대학 연합체도, 어느 학회도 코로나19에 대한 위기 극복이나 코로나19 이후 미래에 대한 대학 집단지성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적 활동도, 집회도 쉽지 않은 현 상황 속에서 그러한 집단지성이 쉽게 발현될 수 없다는 현실적 제한도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대학이 이러한 위기 현실을 적극적으로 안고 가려는 의지의 취약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소통의 방법과 공개적 논의의 매개나 채널이 얼마나 많은가? 좀 더 따져 본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하다. 지금 대학은 돈이 지원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체질로 변했다. 현실적으로 대학 구성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현대판 공룡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대학이 돈타령만 하고 있는 현실에서 연구비가 주어지지 않으면 연구를 시작하지 않는다. 이런 실정이기에 대학에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미래대학 교육이라는 연구과제가 만들어지거나 혹은 활발한 집단지성의 활동은 기대하기가 힘들다.

이것이 바로 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학의 연구는 자발성과 현실적인 필요성이 조화롭게 결합되었을 때, 그 의미가 살아난다. 그러나 지금 대학은 연구비를 따기 위한 연구제안서 만들기에만 급급하다. 선정되는 연구 제안서의 유형을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동안 대학에 쏟아부은 정부의 연구비는 엄청난 액수이다. 그런데 그 많은 연구논문이나 연구결과 보고서가 우리의 현실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준 결과물은 얼마나 될까를 검증해본다면 놀라게 될 것이다. 연구비 정산을 위해서 발간한 연구논문과 보고서들을 위해 사용된 죽어버린 글자들의 함성이 귀를 울리고 있다. 생명의 특징은 자율성과 자발성 그리고 현실적인 관계가 살아있는 유기체성이다. 이 점에서 현재 한국대학은 타율성에 길들여져 있는, 자발성은 사라진 적극적인 현실대응력을 기대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렸다.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 부산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에 「윤동주 시에 나타난 자기의 문제」로 당선, 평단에 나왔다. 평론집 『전환기의 삶과 비평』, 『다원적 세상보기』, 『생명과 정신의 시학』, 『대화적 비평론의 모색』, 『비평의 자리 만들기』, 『이것저것 그리고 군더더기』 등이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9 부산시 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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