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강의를 마치며 생각하는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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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강의를 마치며 생각하는 인문학
  • 김용규 편집기획위원/부산대·영어영문학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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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강의실에서 기말고사를 치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생들과 대면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얼굴을 직접 본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로써 한 학기 비대면 강의를 무사히 마무리하였다.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잘 끝낼 수 있어 무엇보다 다행이다. 개강이 2주 늦게 시작될 때만 해도 곧 대면 강의로 전환될 줄 알았다. 결국 한 학기 내내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었고, 다음 학기도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개강 초에 낯선 프로그램도 곧 적응할 수 있었고, 수업도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으며, 학생들도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정말 예외상태가 ‘뉴노멀’이 되는 상황을 실감했다.

그렇지만 한 학기 강의를 마무리하며 이런 상황을 정상으로 인식해야 한다면,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수업 초반엔 새로운 형태의 강의가 처음이라 그런지 나름 흥미롭고 신선했다. 학생들도 강의실에선 하지 않던 질문을 채팅을 통해 제기하며 수업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익숙해질 무렵 비대면 강의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비대면 강의는 학생들의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카페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개인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대면 강의에서는 강의자와 학생 모두 자신의 개인 공간에서 벗어나 대학이라는 공적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일정한 경계성에 바탕을 둔 퍼소나와 의례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비대면 강의는 학생들의 사적 공간들을 곧장 화상과 연결하다보니 경계성이 불분명해지고 퍼소나의 혼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사적 공간을 드러내는 것을 불편하게 느낀 학생들은 점차 화면으로부터 멀어져갔다.

학기 말이 되면서 강의는 점점 익명화되어가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정보와 지식만을 전달하는 과정으로 변해갔다.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수월성과 경쟁의 시장 논리로 치닫고 있는 대학에서 지식의 정보화가 이미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면, 현재의 상황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인문학 자체의 정보화를 보다 가속화하고 있다. 만약 현재와 같은 상황이 뉴노멀이 된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대학의 인문학은 사라지거나 완전히 다른 인문학으로 변형되지 않을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분명히 인문학의 주요 기능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기능은 거기에만 국한될 순 없다. 인문학의 근간은 지식과 지혜의 거대한 생산과정에 대한 이해이다. 그런 이해의 전달체가 바로 사람이다. 지식과 지혜는 사람을 통해 표현되고 전달된다. 돌이켜볼 때, 정말 좋은 강의는 강의 내용도 좋지만, 무엇보다 강의자가 그런 지식과 지혜를 터득해간 과정이 전해지는 강의였다. 우리가 닮고 싶다고 말할 때, 그것은 지식이나 정보를 두고 하는 말일 순 없다. 대학의 인문학 수업은 지식과 지혜가 사람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동시에 지식과 지혜를 통해 사람을 변형시키는 자리인 것이다.

이런 과정이 사라진다면, 과연 인문학은 어떻게 될까? 이탈리아 사상가 조르조 아감벤은 최근 「학생을 위한 레퀴엠」이라는 짧은 글에서 비대면 화상 강의가 일상화된 현재의 대학 상황에서 ‘삶의 형식’으로서 학생이 되는 과정이 사라지고 있음을 애석해한다. 그에 의하면 서구 대학이 대부분 학생과 학자들의 연합체에서 출발했고, ‘학생이 된다는 것’은 ‘공부하고 강의를 듣는 것을 특징으로 함과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동학들과의 만남과 지속적인 대화를 핵심으로 하는 삶의 형식’을 전제로 하였다. 코로나 사태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이런 삶의 형식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동안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활동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 대학들은 미래 상황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비대면 강의들을 대대적으로 늘릴 것이고, 비대면 강의를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교수법의 선전에 열 올릴 것이다. 이 상황이 계속되면, 강의자와 학생 모두 원자화되고 말 듯하다. 강의자가 정보 전달자로 전락하고,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진 점으로 존재하게 되면, 이들 간의 희박한 관계는 대학 인문학 자체의 존립 근거를 뒤흔들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흐름에 맞서 뉴노멀을 다시 예외상태로 되돌려놓고 새로운 대학과 새로운 인문학이 진정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김용규 편집기획위원/부산대·영어영문학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영미문화연구, 문화이론, 세계문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소장, 인문한국 단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혼종문화론》, 《문학에서 문화로》가 있고, 역서로는 《백색신화》, 《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글로벌/로컬》, 《미술관이라는 환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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