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세계에서 허무한 이유…‘총체성’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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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세계에서 허무한 이유…‘총체성’의 부재
  •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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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 서평_『의식의 기원(옛 인류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제2, 3권』(줄리언 제인스, 김득룡, 박주용 역, 연암서가, 2017.06.20.)

* 지난 기사 <당신이 몰랐던 ‘의식’의 놀라운 반전…의식의 기원>(2020년 6월 14일자)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하나의 진리, 유일한 원인” 이건 바로 종교나 과학이 추구하는 바이다. 이 세계에 대한 해석을 통해 삶의 이유와 희망을 부여잡으려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의식의 기원 제3권 제6장』에서 줄리언 제인스는 종교와 과학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으며, 둘 다 종교적이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하면 신의 계시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되느냐를 두고, 즉 이같은 기반 위에서 종교와 과학은 서로 싸우는 두 거인이 되었다.

한평생 ‘의식의 기원’에 대한 물음에 휩싸였던 제인스. 그는 현대과학이 추구하는 진리는 우주와 실재, 그 안에 있는 인간을 규명하려는 ‘존재의 총체성’을 밝히려는 노력이라고 간주한다. 과학이 태동한 것 자체가 이미 신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확실성에 기대는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지구는 돈다고 했다가 투옥한 갈릴레이. 제인스에 따르면, 갈릴레이 투옥의 진짜 문제는 사제의 매개 없이 객관적 세계에서 우리의 현재 경험을 통해 천국을 찾을 수 있는지였다. 마찬가지로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 속에서 과학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17세기 말엽 영국 프로테스탄트들인 뉴턴, 로크, 레이(목사)는 물리학, 심리학, 생물학의 토대를 구축했다.

『의식의 기원 제2, 3권』은 양원적 정신이었던 인류의 2중 뇌 구조가 어떻게 주관적 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와 현대를 살펴보며 추적한다. 특히 현대의 과학이라는 것 역시 종교적 속성이 있다는 언급은 구체적이다. 현대세계에서 저자 제인스가 분석한 지점은 시와 음악, 최면, 정신분열증이다. 제인스는 첫 시인들은 신이었고, 시는 양원적 정신에서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학을 했다고 적었다. 최면은 양원적 정신의 패러다임을 가동시키는 것이다. 정신분열증은 양원적 정신이 일부 도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써 ‘의식의 기원’이 드리운 그늘은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 인간 뇌구조
▲ 인간 뇌구조

종교와 과학이라는 두 거인이 겨루는 이유

정신분열증이 양원적 정신이라는 증거로 저자 제인스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제시한다. 우선, 양원적 정신이 붕괴되기 이전에는 미친 사람으로 격리된 기록이 없다. 제인스가 주장하길 인류 최초의 객관적 기록이라는 『일리아스』마저 광기를 다루지 않는다. 양원적 정신 이론을 따르면, 기원전 2000년경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에 따라서 행동해야했기 때문이다.

▶ 청각적 환각의 출현 ▶ 환각들의 종종 종교적인 그리고 항상 권위적인 특성 ▶ 자아와 유사 ‘나’ ▶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시간과 행동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는 정신-공간의 해체 등은 정신분열증이 양원적 정신임을 설명해준다. 실제로 현대의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자신의 의식 속에 들리는 또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저항하려고 애쓴다. 자신의 주관적 의식으로 더욱 원초적인 목소리에 통제력을 행사하고자 하지만 실패한다. 그래서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는 것이다.

기근(飢饉)과 화산폭발 등으로 인류에게 위협이 가해지면서 신들의 목소리는 더 유효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인류는 신을 버리고, 의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제인스는 『의식의 기원』 후기에서 “의식은 양원적 정신이 붕괴한 후에 비로소 나타났다.”며 “의식은 혼란스러운 사회적 해체와 인구 과밀 그리고 아마도 청각적 명령 형식을 대신하는 문자 기록의 사용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적었다. 그는 의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의식의 기본적인 정의는 기능적 정신-공간 내에서 이야기를 엮어내는 유사 ‘나’인 것이다.”

“우리는 자기 의심의 식자들이며, 자신의 실패를 꿰뚫어보는 석학이며, 변명과 미래를 기약하는 데 천재들이다.”-533쪽.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지들을 살펴보면, 신전은 환각을 발생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 예로 나온 게 바로 예리코(Jericho) 발굴지 내 마을 속 신전이다. 기원전 7000년대로 추정되는 이곳은 그들이 신이라고 모시던 조각상의 머리(목소리)가 강조돼 우상화 되었다. 중국 상(商)왕조 때는 매장할 때 죽은 말들과 전차를 몰던 전사들도 함께 묻었다고 한다. 죽은 왕의 음성이 계속 들리도록 조치한 것이다. 음식이나 항아리, 시종들을 함께 묻었던 이유와 같다. 

문명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형태의 신정정치는 첫째, 관리인-왕 신정정치다.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가 그러했다. 둘째 신-왕 신정정치다. 이집트와 몇몇 안데스 왕국, 일본의 초기왕국 등이 이런 신정정치를 따랐다. 관리인이든 신이든 왕이든 죽은 이들은 모두 입이 강조된 조각상으로 재현돼 환각을 불러일으키도록 했다. 지금도 영어에서 쓰이는 이해하다(under-stand)는 밑에 서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제인스는 신의 아래에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서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신은 단 위에 왕들은 아래에 서 있다. 왕들은 실제로 신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예를 들어, 기원전 1750년경 함무라비는 자신의 신 마르두크에게서 오는 판결을 환각했다. 

그런데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인간의 행위를 이끌었던 신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는다. 양원적 신들이 서로 뒤섞이면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어떤 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문자쓰기가 보편화 하면서 양원적 정신의 청각적 권위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제인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문자쓰기의 도래와 함께 청각성의 약화 △ 환각적 통제가 지니는 내재적 취약성 △ 역사적 대격변의 혼돈 중에 신들의 속수무책 △ 타인들에게서 상이성이 관찰될 때의 내적 원인 가정하기 △ 서사시로부터 이야기 엮기의 습득 △ 기만의 생존적 가치 △ 약간의 자연도태.

악 개념의 기원은 신들의 침묵이다

주관적 정신이 싹트면서, 공포의 정치가 나타나기도 했다. 아시리아의 가장 강력한 왕인 티그라트 필레세르 1세(기원전 1115 ~ 기원전 1077)는 잔인함의 극치였다. 더 이상 신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게 되자, 인간의 본성은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 환경이 더욱 각박해져 생존을 위한 다툼이 치열해졌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먹고 마실 게 부족해지고, 잠잘 곳이 부족해지면서 인간들의 아귀다툼은 눈에 띄게 늘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한 공포의 정치가 자연스레 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인서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 등장한 악의 개념을 양원적 정신의 쇠퇴로 설명한다. 인간의 교역이 활발해졌지만, 신들의 목소리를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인사를 건넸는데도 상대쪽에서 반응이 없다면 적개심으로 간주된다. 각각의 양원적 정신 속 신들이 침묵하면서, 동시에 어둡고 무서운 자연 현상들과 질병이 추가되면서 악마는 탄생하기 시작했다. 신들은 예언자나 신탁을 통해서만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언자와 신탁 역시 자주 실패하게 되면서 인류는 과학을 통해 더욱 더 확실성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명 세계 전체에서 양원적 정신을 떠올리려는 우상숭배가 늘어나게 된다. 현대의 마술이나 점술, 징조술(徵兆術, omen) 등에서 그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징조술은 기상학과 천문학의 시발점이 된다.
 
『의식의 기원 제2, 3권』는 구약의 두 극단을 비교하며, 주관적 의식이 태어나기 위한 장엄하고 놀라운 산고라고 설명했다. 기원전 8세기의 『아모스서』는 문맹인 목동에게 들려온 것을 구술한 것, 즉 양원적 연설이다. 반면, 기원전 2세기의 『전도서』에선 신들의 목소리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학자들이 이 중요한 『전도서』를 성경의 정경(正經)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신에 관한 언급을 나중에 추가했다고 제인스는 밝혔다. 다윗은 스스로-존재하는-자인 신의 목소리를 듣는 양원적 인물이었는데, 나중에 아기스 왕을 속이는 능력을 발휘할 때는 주관적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저자 제인스는 “구약(성경)은, 그 방대한 전체적 모양에 있어 양원정신의 상실과 기원전 1000년 기간에 이루어진 주관성에 따른 대체과정을 그린 것”(395쪽)이라고 적었다.

▲ 줄리언 제인스
▲ 줄리언 제인스

확실성과 총체성을 찾아 헤매는 인류와 과학

『의식의 기원』은 의식에 대해 놀라운 질문과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마치 미완성 작품처럼 마무리된다. 설명하고 예를 들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 제인스는 꿈에 대한 내용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지만, 책이 너무 길어질 수 있어서 함께 실리지 못했다. 다만, 이 책이 제시하는 주제와 과학적 설명과 예시는 우리가 왜 그토록 풍요로운 현대세계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허무해지는가를 일부 설명해준다. 주관적 의식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인간은 본능적으로 신의 목소리를 갈구하게 되어 있다. 그 질긴 운명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또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허무함을 채우기 위한 갈망이 과학이라는 또 다른 종교를 낳았다. 『의식의 기원』의 두 구절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의 역사다. 의사소통하고, 설득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다양한 문화적 모델들을 사용하고 그사이를 헤집고 다닐 뿐 결단코 그 총체성에서 도망칠 수 없다.”-585쪽. 

“양원적 정신 구조의 폐허 속에서 행동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점치던 일이 이제는 사실이라는 신화들 속에서 완전한 확실성을 추구하는 일이 되었을 뿐이다.”-586쪽.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과학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교수신문> 학술 객원기자를 역임했고 현재는 ‘학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과학과 기술, 철학, 문화 등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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