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없다, 그런데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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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없다, 그런데 한국은?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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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에세이]

나는 1994년도에 <일본의 빈곤>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좀 팔았다. 신문 잡지들에서 관심을 가지고 취재도 제법 해 주었다. 그 책이 나오기 두어달 전에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가 나와서 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그 책 때문에 내 책이 덜 팔렸는지 아니면 그 책이 일본 비판 붐을 일으켜 내 책도 좀 팔아주었는지 아직도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일은 실험해 볼 수도 없으니 그냥 모르는 대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1970-80년대에 일본은 패전의 상처를 딛고 급속하게 발전하여 세상의 칭송을 받았다. 하버드 대학의 에즈라 보겔 교수는 일본 전문가도 아니면서 <일등 나라 일본>을 써서 많이 팔아먹었다. 지나친 개인주의와 방종으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과 달리 집단 윤리와 근면, 체계적인 기업 관리 등등으로 일본이 세계의 모범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가 되면서 일본 발전 모델이 한계를 드러내고 일본은 ‘잃어버린 10년’과 ‘잃어버린 20년’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본 예찬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없다니 일본이 빈곤하다느니 하는 책들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나왔으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그 책에서 한국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처럼 일본이 훌륭한 나라가 아니며, 정부만 부자고 국민은 가난(?)하며 복종적인 사람들이 따분한 삶을 사는 나라라고 얘기했다. 또 일본이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것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며 그것을 모르는 이유는 그것을 알만한 정신적 바탕이 없기 때문이라고 갈파하였다. 그것은 나만 탁월하다고 생각한 탁견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일본을 한 편으로는 미워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동경하는 우리의 이중성도 지적하였다.

▲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
▲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

어느 날 일본에서 내 책을 번역 출간하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더니, 웬 걸, 일본 비판 부분은 대폭 줄이고 한국의 자아비판 같은 부분은 그대로 두어 마치 일본 찬양서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것들을 그냥 둘 수 없어 고소를 하려고 변호사에게 의뢰하였지만 변호사의 무능으로 착수금만 돌려받고 없던 일로 하고 말았다. 그 뒤 몇 년 지난 다음에 이 이야기까지 포함하여 <콤플렉스의 나라 일본>이란 제목으로 책을 다시 내어 “일본 놈들은 요런 놈들이다”라고 복수해 주었다. 글쎄 복수란 건 내 생각이고 그것으로 복수가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그 당시와는 달리 일본을 정말로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유튜브에는 일본을 비하하거나 한국을 칭찬하는 채널들이 매우 많다. 확실히 우리가 더 잘 살고 강해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자신감도 상승했다. 실제로 구매력 대비 일인당 소득은 이제 일본을 거의 따라잡았다. 생활 수준에서 별 차이가 없고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오히려 일본을 추월하였다. 내 부모 세대에서 보이던 일본에 대한 열등감과 내 세대에서 보이던 이중적 태도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글쎄 심층 연구를 안 해 봤으니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그래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한국을 헬조선이니 뭐니 하면서 비하하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보인다. 일본에 대해서 이중적이다가 이젠 우리 자신에게 이중적으로 바뀌었나? 나는 ‘국뽕’도 자기비하도 다 좋지 않다고 본다.
 
일본 찬양은 이제 시대착오가 되었지만 맹목적 반일도 얻을 게 별로 없다고 본다. 반일이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세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을 욕할 건 욕하되 우리의 잘못도 반성해야 한다. 일본이 우리를 먹고 괴롭혀서 우리는 일본을 싫어하지만 솔직히 우리 조상들은 뭘 했나? 강요든 협박이든 나라를 ‘팔아먹은’ 건 사실이고 여기에 앞장선 인간들이 있지 않은가? 대원군과 민비가 권력 다툼하는 사이에 나라는 망해갔다. 고종은 아버지와 마누라 사이에서 기도 못 펴고 기껏 한다는 게 미국에게 매달리기. 미국은 관심도 없고 나중에 일본과 나눠먹기 해 버리는데(가쓰라 태프트 조약).  

▲ 명성황후 초상화
▲ 명성황후 초상화

내가 명성황후라고 부르기를 거부하는 민비는 그 악행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 당하여 악행은 다 잊히고 역사의 전설로 남았다. 그런데 그 일본인들을 민비의 처소로 안내하고 민비를 특정해 준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대원군의 수하들이었다. 이런 지경이니 나라가 어떻게 안 망했겠는가? 나도 최근에야 안 사실이다. 이런 일은 학교에서 절대로 가르치지 않고 일반 교양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이 잘못한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후손이 교훈을 얻는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 편을 들면서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무리들에게 동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 시켜주고 위안부 피해는 사기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만만찮은데, 이는 지나치게 아전인수격인 국뽕 사관이 오히려 키워준 면도 있는 것 같다. 하여간 국뽕 사관이 지나친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대변하는 이들은 더더욱 문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국내에서 처음 퍼뜨린 안병직은 일본 토요타 재단의 돈을 받고 일본인과 함께 그런 책을 썼으며. 위안부 피해를 부인하는 이영훈 등도 어떤 식으로든 일본 우익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그런대로 학술 연구를 통해 학문적 주장을 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더 훌륭한 학술 성과로 반박해야 한다.
 
나는 이들 주장의 타당성 여부보다는 한국을 핍박한 일본 편을 드는 것이 도대체 무슨 심리 작용인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학술적으로 연구를 해 보니 일본 주장이 타당하더라” 정도가 아니라 무슨 구국의 사명을 띤 양 열을 올리고 온갖 핍박(?)에도 꿋꿋이 핏대를 올리는 일본 편 한국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진리의 사도요 과학의 화신이라는 사명감일까, 감정적인 동포들과는 수준이 다른 이성의 자유인이라는 신념 때문일까? 국뽕이 싫다고 치료약을 너무 먹다 부작용으로 이상이 온 것일까? 이들의 주장이 이미 학문적 논쟁을 넘어선 일종의 정서적 신념이 되어버린 것 같아 하는 말이다. 한일 관계의 과거사에서 한국인의 주장을 혐오하고 가해자 일본 우익의 주장을 대변하는 이들의 심리상태는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많이 발전하였다. 일본에 대한 열등감으로 지나치거나 단세포적인 주장을 펼치는 단계는 넘어서야 한다. 여러 현안들에서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할 단계가 되었다. 감정에 치우침은 친일을 극복할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다. 1994년의 내 책에서도 그렇게 썼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이용해 먹었다. 그래 봤자다. 그래서는 못 이긴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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