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18세기 동아시아 화단의 독보적인 천재 화가…풍속화를 넘어 모든 그림 장르에서 탁월한 기량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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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18세기 동아시아 화단의 독보적인 천재 화가…풍속화를 넘어 모든 그림 장르에서 탁월한 기량 발휘
  • 장진성 서울대·한국 및 중국회화사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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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_ 『단원 김홍도: 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 (장진성 지음, 사회평론아카데미, 484쪽, 2020.04)
 

한국의 성인 중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김홍도는 한국의 역대 화가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보물 527호인 <<단원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원풍속도첩>> 또는 <<속화첩>>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에 들어있는 씨름, 서당, 대장간 그림은 김홍도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그림들은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 김홍도를 ‘한국적 풍속화의 대가’로 깊이 인식시켰다. 그 결과 <<단원풍속화첩>>은 김홍도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 화첩을 통해 김홍도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낸 풍속화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단원풍속화첩>> 속의 그림들은 신문, 잡지, 방송 등 대중매체뿐 아니라 농산물 광고, 민속 관련 행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심지어 민속주점, 한식당, 관광호텔의 내부 장식용 이미지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원풍속화첩>>은 ‘김홍도는 풍속화가’라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대중에게 심어주었다. 따라서 이 화첩의 지나친 대중성은 김홍도가 이룩한 화가로서의 업적을 한국적 풍속화라는 범주 안에 가두어버리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즉, <<단원풍속화첩>>은 김홍도에 대한 대중적 오해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원 김홍도: 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은 바로 이러한 김홍도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고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기 위해 쓰였다.

▲ 군선도 - 김홍도  1776년 삼성미술관 리움
▲ 군선도 - 김홍도 1776년 삼성미술관 리움

김홍도는 ‘가장 조선(한국)적인 풍속화의 대가’라는 대중적 통념에서 벗어나 그의 생애와 예술을 객관적으로 고찰, 해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김홍도는 풍속화만 잘 그린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산수화, 도교와 불교 관련 그림인 도석화, 화조화, 인물화 등 모든 그림의 장르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였다. 김홍도를 제대로 평가하는 데 있어 핵심 사항은 김홍도는 병풍화의 대가였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김홍도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김홍도가 남긴 명작들은 모두 병풍 그림들이다. <<군선도>>(1776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행려풍속도>>(177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산도병>>(간송미술관 소장), <<삼공불환도>>(1801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등 김홍도가 남긴 불후의 명작들은 거의 예외 없이 병풍 그림들이다. 동아시아에서 병풍 그림은 가장 비싼 그림이었으며 화면이 커서 뛰어난 화가가 아니면 결코 병풍화를 그릴 수 없었다. 김홍도가 32세 때 그린 <<군선도>>를 보면 등장인물들의 동작, 자세, 표정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군선도>>는 그가 병풍화의 대가였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다.

▲ 삼공불환도 - 김홍도 1801년 삼성미술관 리움
▲ 삼공불환도 - 김홍도 1801년 삼성미술관 리움

김홍도는 도화서 화원(畵員) 집안 출신이 아니다. 이 점은 그를 이해하는데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이다. 조선 후기에는 유력한 화원 집안들이 대대로 도화서 화원직을 독점, 세습하였다. 따라서 화원 집안 출신이 아닌 사람이 도화서에 들어가 최고의 화가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김홍도는 조상들이 무관 벼슬을 지낸 중인 집안 출신이다. 김홍도의 집안 사람 중 그림과 관련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 아울러 김홍도에게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준 선생이 없었다. 그는 독학하여 10대 후반에 도화서에 들어갔다. 김홍도는 타고난 천재였다. 그는 천재성으로 인해 홀로 그림 공부를 하여 도화서 화원이 되었으며 뛰어난 재능과 능력으로 단숨에 조선 최고의 화가로 성장했다. 그는 쟁쟁한 도화서 화원 집안 출신의 선배 및 동료들을 제치고 자신의 능력 하나로 최고의 화가가 되었으며 그 결과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가장 신임하고 아꼈던 ‘왕의 화가’가 되었다.

▲ 주부자시의도 - 김홍도 1800년 삼성미술관 리움
▲ 주부자시의도 - 김홍도 1800년 삼성미술관 리움

즉위 이후 정조는 김홍도에게 궁중의 모든 그림 관련 일을 맡겼다. 1788년에 정조의 명을 받아 김홍도는 금강산과 영동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실경산수화를 제작했으며, 이듬해에 대마도로 건너가 지도를 그려왔다고도 전한다. 그는 정조의 화성원행(1795년), 화성 건설(1796년 완성)과 관련된 그림 작업을 총괄하였다. 정조가 김홍도에게 궁중의 모든 그림 관련 일을 맡긴 것은 단순히 그의 그림 실력에 대한 믿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홍도는 높은 지적 능력과 문학적 소양을 지닌 인물이었다. 김홍도가 정조에게 새해맞이 그림으로 바친 <<주부자시의도>>(1800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는 주자의 시를 해석해 그린 작품이다. <<주부자시의도>>를 받은 정조는 김홍도가 주자의 깊은 뜻을 이해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김홍도에 대한 정조의 절대적 신뢰와 총애는 자비(차비)대령화원 제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783년 11월 21일에 시작된 자비대령화원 제도는 도화서 화원 중 유능한 자 10명을 선발해 시험을 치러 녹봉직을 주는 제도였다. 그런데 정조의 치세 기간 내내 김홍도는 자비대령화원으로 뽑히지 않은 ‘도화서 화원 중의 화원,’ 즉 아주 특별한 열외 화원이었다.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김홍도를 능가하는 화가는 없었다. 아울러 그는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뛰어난 화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중국은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6-1795)가 다스리고 있었다. 건륭제 시기에 송나라 이후 사라졌던 화원(畵院, Painting Academy)이 부활되어 뛰어난 궁정화가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그러나 1770년대 중반 이후 황실 호위병 출신인 화신(和珅, 1750-1799)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화원은 점차 활력을 잃어버렸으며 걸출한 화가들도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건륭제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궁정화가인 서양(徐揚, 1750년경-1776년 이후 활동)이 1776년 무렵 화원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때 바로 조선에서는 정조가 등극하고 김홍도가 <<군선도>>를 그리면서 그림의 절대 강자로 급부상하였다. 김홍도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일본의 화가들은 자신들이 잘 그리는 그림에서만 재능을 보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전문적인 그림 장르에만 몰두함으로써 화풍이 다양하지 못했다. 이와 달리 김홍도는 그림의 모든 장르에서 걸출한 능력을 발휘한 거장이었다. 18세기 후반 동아시아 화단에서 김홍도를 능가할 화가는 사실상 없었다. 이 책은 조선이라는 일국적 시각을 넘어 18세기 동아시아 화단을 거시적 시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김홍도가 18세기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 화단 전체에서 가장 탁월한 화가였음을 세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장진성 서울대·한국 및 중국회화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동 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예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Yale University Art Gallery 연구원,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Jane and Morgan Whitney Fellow,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Landscapes Clear and Radiant: The Art of Wang Hui, 1632-1717 (공저), Art of the Korean Renaissance, 1400-1600 (공저), Diamond Mountains: Travel and Nostalgia in Korean Art (공저)가 있으며, 역서로 『화가의 일상: 전통시대 중국의 예술가는 어떻게 생활하고 작업했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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