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은 특별하지 않다.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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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은 특별하지 않다.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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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이 읽기_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 (리처드 다이어 지음, 박소정 옮김, 컬처룩, 430쪽, 2020.05)

- 인종주의 담론 해체를 이끈 문화연구의 고전적 저작
- 예술 매체의 백인 재현에 감춰진 백인중심주의 폭로
- 백인은 어떻게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의 표준’이 됐나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끝없이 반복되는 비극과 깨달음에도 인종차별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영국의 문화연구자 리처드 다이어는 그 답을 ‘백인성’에서 찾는다. 백인성은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깔려 특권적 위치를 형성해 온 문화적 구성물을 일컫는다.

이 책은 백인이라는 인종이 재현되는 양상을 백인 자신의 눈으로 분석해 백인의 보편성을 해체한 선구적 저작으로 미디어·기술 환경의 변화 속에서 함께 변모하는 인종 담론을 해체하려는 수많은 후속 연구들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재현과 정체성 문제를 탁월하게 연구해 온 저자가 안내하는 이 유구하고도 역동적인 백인성의 세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또는 알고서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세상의 편향을 드러낸다.

이 책은 현대 세계를 조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인종적 재현의 관점에서 흑인과 아시아인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은 반면, 백인들은 어떻게 해서 거의 고찰되지 못한 인종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백인성의 명백한 비가시성의 이면을 살펴봄으로써 백인의 이미지를 분석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이를 위해 흰색을 색조, 인종, 피부 세 차원에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각 차원에서 흰색이 지닌 의미가 다른 차원으로 미끄러지며 백인성의 권력을 작동시키는 양상을 분석한다. 따라서 백인의 속성으로서의 ‘희다’는 개념은 검정에 반대되는 색으로서의 단순 명사가 아니라, 인종주의, 식민주의, 기독교, 여성성, 계급성, 이성애 규범성 등의 차원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담론이다.

▲ 리처드 다이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 리처드 다이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다이어는 이 책에서 ‘유색인’이라는 단어 대신에 ‘비백인’(non-whi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유색인이라는 단어는 백인을 ‘색이 없는 인종’으로 이해하도록 오도하기 때문이다. 백인은 분명히 피부색이 있는 유색인이다. 더구나 피부색이 실제로 백색인 것도 아니다. 백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유색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흰색은 색이 아니며 색을 초월해 있다’는 백인들의 관념이 반영된 것이며, ‘색이 없다’는 관념은 백인이 모든 유색인들과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시에, 백인이 스스로 백인이라고 칭한 것은 백색이라는 상징 속에 정신·순수·고결 따위의 의미가 배어 있기 때문임을 저자는 역사적 문헌들을 통해 밝힌다.

또한 백인 사회에서 ‘인종’은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유색인종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지 백인 자신들을 향해 쓰이지 않는다. 백인은 인종의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인종이 오로지 유색인에게만 적용되는 한, 백인은 인종적으로 보이지도 명명되지도 않는 한, 그들/우리는 인간 규범으로 기능한다. 다른 사람들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이것이 백인들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백인은 언제나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성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반면에 인종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인종을 대변할 뿐이어서 인간으로서 보편성을 구현하지 못한다.

다이어는 이 같은 백인성의 비가시성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며 ‘하나의 인종으로서의’ 백인을 설명하려 든다. 서구 문화에서 특권적인 위치를 형성해 온 문화적 구성물이자 권력으로서의 백인성은 보이지 않음으로써 유지돼 왔다는 걸 깨트리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white’가 내포하는 두터운 의미의 지층, 백인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서구 문화의 무수한 면면들을 날카롭게 파헤쳐 보여 준다. 그렇게 구축된 백인성은 백인의 인종주의적 우월성의 근거로 작동해, 모든 유색인을 개인성을 확립하지 못한 미개하고 이해할 수 없고 비이성적인 집단으로 타자화하는 인종 차별적 태도를 뒷받침한다.

다이어는 이러한 백인성 재현을 기독교, 인종, 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살펴본다. 이를 위해 고전 문학부터 대중음악, 르네상스 회화부터 20세기의 사진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부터 할리우드 SF 영화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백인성의 자취를 좇는다.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흰색의 심포니 3번’(1865~1867), 조슈아 레이놀즈의 ‘어느 여인의 초상화’(1767~1769). 컬처룩 제공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흰색의 심포니 3번’(1865~1867), 조슈아 레이놀즈의 ‘어느 여인의 초상화’(1767~1769). 컬처룩 제공

다이어는 이 책에서 주로 시각적 재현을 다루고 있는데, 중세 이래 서구 문화에서 시각은 특권적 감각이었고 19세기 중반부터는 사진이 지식, 사상, 감정의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백인 얼굴을 표준으로 삼아 발전한 사진술, 할리우드 영화에서 스타를 비추는 조명 관습에서 드러나는 백인성, 기독교적인 레토릭에 부합하는 빛의 사용과 백인성의 관계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빛의 문화’를 형성하는 사진과 영화의 기술에서 백인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 주고, 「타잔」과 「헤라클레스」부터 「코난」과 「람보」까지 근육질의 남성 액션 영화에서 나타나는 영웅적인 백인 남성성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1984년에 영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가장 귀한 것」과 같은 영국 제국 말기의 서사에서 백인 여성의 억눌린 역할을 분석하고, 영화 「폴링 다운」과 호러 영화, 또 「블레이드 러너」와 「에일리언」 3부작 같은 디스토피아적 영화에서 백인성이 죽음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밝혀낸다.

할리우드가 발전시킨 영화의 장치는 백인의 피부를 아름답게 조명하면서, 서사 속에서 백인 남성을 인류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백인 여성에게는 그 숭고함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부여했다고 설명한다. 즉 할리우드의 미학이 어떻게 ‘화이트’라는 개념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장치인지, 다시 말해 얼마나 인종주의적인 담론의 산물이고 식민주의적 세계 구조에 기여하는 재현 체계인지를 설파한다. 요컨대 다이어가 이토록 광역의 텍스트를 다루는 것은 백인성의 권력이 사실상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하나의 ‘관행(관습)’으로서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백인으로서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백인의 특수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다. 백인은 보편적 존재가 아니며, 백색은 여러 색깔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백인은 자기 자신을 특수한 인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만든 기준을 인류의 보편적 기준으로 세우고 그 기준에 맞춰 자신들을 정상으로, 다른 인종은 그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백인 중심성이 해체되지 않는 한, 인종적 다양성과 혼종성이 평등하게 어우러지기는 요원한 일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백인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보는 법을, 자신들의 특수성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 백인은 (백인 자신에게) 낯설어져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유럽과 북미의 길거리에서 아시아인들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공공연하게 가해지고 있다. 피부색은 인종을 구별하는 데 가장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한국 사회 또한 결코 인종주의나 피부색주의(colorism)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의 관점에 의하면 한국인으로서의 우리는 두 가지 위치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비백인이자 유색인으로서의 자리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다이어의 서술로부터 탈식민주의적이고 탈제국주의적인 통쾌함을 느낀다.

또 하나는 백인성을 내재화한 이의 자리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의 시선 속에서는 또 다른 백인성이 작동한다. 다시 말해 우리만 해도 비백인, 유색인이지만, ‘우리 안의 백인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0만 명을 넘어선 현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에게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다문화 수용 지수와 같은 지표를 동원하지 않아도 사회적인 분위기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우리 역시 피부색의 스펙트럼을 쫙 깔아 놓고 인종의 위계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인종의 위계, 피부색의 스펙트럼은 상대적이기에 우리 사회는 늘 울타리와 사다리를 세움으로써 우리의 정상성을 확인받고자 한다. 이 책은 이 두 자리를 동시에 체험하는, 그리하여 세계화된 환경 속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를 떠받쳐 줄 윤리적·정치적 감각을 형성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화이트』 발간 20주년(2017)을 기념해 출간한 것으로, 프랑스 문화연구자 막심 세르뷜이 쓴 서문 “빛을 들여다보기: 백인성, 인종주의, 재현 체제”가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다이어가 백인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강화해 온 문화적 기제, 즉 백인을 평범하고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대변하게끔 만드는 문화적 기제를 밝힘으로써 동시대의 재현 체제 연구에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했는지 살펴본다. 그는 백인성에 대한 ‘무지’야말로 백인 헤게모니를 눈감고 용인해 주는 태도라고 지적한다. 또한 권두에 실린 홍석경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지금, 한국에서 읽는 『화이트』”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백인성 연구가 왜 필요한지 시사점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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