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의 불교미술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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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의 불교미술에 관한 고찰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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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조선왕실의 불교미술: 조선왕실의 의례와 문화 9번 | 김정희 지음 | 세창출판사 | 372쪽
 

조선시대는 흔히 숭유억불시대이자 불교미술의 암흑기로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불교미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는가?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다양한 사료를 돌아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를 초기·중기·후기·말기 등 네 시기로 나누어 왕실의 불교미술을 고찰했다. 현존하는 왕실 발원 불교미술품에 보이는 ‘궁정 불교 미술 양식(宮廷 佛敎 美術 樣式)’의 성립 과정과 특징을 고찰하고, 이것이 당시 일반인들에 의해 제작된 불교미술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 또 시기적으로는 어떤 특징을 보여 주는가를 살펴봤다. 아울러 각 시기별로 발원자와 후원자의 성격은 어떻게 다르고, 이것이 불교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주목했으며, 왕실의 불교미술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했다.

수년간 불교미술을 연구해 온 사학자이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저자 김정희는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미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선시대 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억불(抑佛)’의 이미지와 달리, 조선시대에도 적지 않은 불교미술이 제작되었다. 심지어 유교 숭상의 최고봉인 조선의 왕실에서도 불교미술을 제작한 예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엎는다. 물론 조선이 건국된 후에 수많은 사찰이 폐사되고 종파는 통폐합되었으며, 승려가 환속되는 등 큰 폐해를 겪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조선왕조 500년 동안 불교가 시종일관 억압만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기본으로 한 사회였기에 전반적으로 불교가 침체하기는 했지만, 때로는 왕이나 왕비에 의해 불교가 중흥해 발전하는 등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 억불숭유 조선시대의 불교회화 「삼세여래체탱」
▲ 억불숭유 조선시대의 불교회화 「삼세여래체탱」

왕실의 불교미술은 같은 시기 불교미술의 양식을 주도하면서 불교미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억불시대였던 조선시대에 불교를 지탱시키고 불교미술을 발전시킨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호불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조선 초기에는 강력한 억불정책 아래서도 몇몇 호불적인 왕과 왕실 구성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사가 이루어졌다. 그 목적도 다양한데, 주로 왕실의 안녕과 선왕의 극락왕생 또는 태자의 탄생을 기원하며 불상과 불화를 시주하고 불경을 간행했다. 일부 왕실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조선 초기의 불사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문정왕후를 중심으로 새롭게 꽃을 피웠다. 특히 왕실 조각가와 화원이 불교미술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소위 궁정 양식으로 불리는 새로운 양식이 수립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많은 사찰이 중창 또는 중수되었으며, 이에 따라 불교미술이 새롭게 꽃을 피웠다. 왕실에서의 불사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왕실의 원당 및 원찰을 중심으로 불사 후원이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에는 숨 가쁜 정국 속에서 서울 인근 사찰을 중심으로 왕실 불사가 성행했다. 주목할 점은 왕비와 상궁들의 불사 후원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조선 말기 불교신자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그중에서도 돈과 권력을 가진 왕실의 여인들은 불교와 불교미술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불교미술 중에서도 특히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불교미술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되,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과 각 시대별 불교미술의 양식적 특징을 살펴본다. 다양한 불화와 불교미술품, 그에 얽힌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불교미술사 속에서 왕실 불교미술이 갖는 위상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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