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의 삶과 음악을 관통한 도시 파리, 그리고 벨 에포크 시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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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의 삶과 음악을 관통한 도시 파리, 그리고 벨 에포크 시대의 초상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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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드뷔시의 파리: 벨 에포크 시대의 초상 | 캐서린 카우츠키 지음 | 배인혜 옮김  | 만복당  | 380쪽
 

드뷔시의 섬세한 피아노 음악은 꿈결 같은 분위기와 신비롭게 울려 퍼지는 특유의 음색으로 많은 이를 사로잡았다. 벨 에포크 시대의 정점에 이른 파리에서 탄생한 그의 음악은 광대와 인어, 괴상한 춤,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어두운 이야기와 같이 파리지앵들이 누렸던 기쁨과 쾌락을 담아냈다. 이 책은 파리의 매력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식민지배, 민족주의의 기저에 깔린 적대심 등을 함께 다룬다. 드뷔시는 이 모든 것을 그의 피아노 음악에 담아 그 시대의 열정과 비행, 그리고 집착을 그려낸다.

클로드 드뷔시는 물론, 파블로 피카소, 폴 베를렌, 로이 풀러, 앙리 툴루즈 로트렉, 앙드레 지드, 스테판 말라르메에 이르기까지 파리라는 대도시가 이토록 많은 예술가의 창작활동에 불을 지핀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이들의 천재성은 프랑스라는 나라의 특징에 얽매여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 파리가 낳은 산물이었고, 그 도시의 회화, 문학, 정치, 밤의 유흥가는 그들의 창조력에 대체 불가한 자극제가 되었다.

파리는 모순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고, 즐거움을 광적으로 탐닉한 도시였다. 드뷔시는 이러한 방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긴 했지만, 이 책은 매 순간 전통과 맞선 전복이 일어났던 ‘파리’라는 도시와 드뷔시가 주고받은 상호작용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1862년에 태어나 1918년에 세상을 떠난 드뷔시의 생애는 1871년부터 1914년까지 이어진 벨 에포크 시대 전반을 두루 포괄한다. 그 시절 파리는 경주용 자동차, 모르그(시체 안치소), 전기 조명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 클로드 드뷔시(Debussy Debuchy, 1862년 ~ 1918년)
▲ 클로드 드뷔시(1862년 ~ 1918년)

드뷔시의 음악이 그랑프리나 파리의 전시회에 진열된 시체에 관해 언급하진 않지만, 드뷔시 작품의 묘사적인제목들은 우리를 독특한 영감의 세계로 안내한다. 드뷔시는 자학하는 성향과 그를 둘러싼 이들이 보내는 불신에도 불구하고 사회 현실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 문학, 정치, 대중문화 속에 담긴 파리의 모습을 다른 작곡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개성과 설득력으로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인형, 광대, 인어, 금붕어, 코끼리, 시, 비평, 신화, 동화, 엽서, 신문기사, 회화, 삽화, 조각, 벽걸이 장식, 발레리나, 현대 무용수, 볼룸 댄서, 케이크워크, 오리엔탈리즘, 식민주의,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에 이르기까지 88개의 건반이 이토록 다양한 것들에 활기를 불어넣은 적이 있었던가. 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드뷔시 개인의 삶은 하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파리의 예술과 문화는 그의 상상력을 살찌웠다. 그러므로 다채로운 이미지로 가득한 드뷔시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정체성을 지닌 이 도시를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되는 벨 에포크 시대 파리를 드뷔시의 삶과 음악을 통해 그려낸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벨 에포크 시대의 예술 분야는 전통과 현대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장이었다.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파리의 도시 풍경은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와 소설가 위스망스에 의해 아름답게 포장되었고, 밤마다 서커스와 가면무도회로 휘황찬란한 환락이 펼쳐졌다. 마네, 휘슬러 등 파리 살롱전에서 퇴짜를 맞은 화가들이 낙선전을 통해 명성을 얻었고, 케이크워크와 캉캉 춤이 도시를 폭풍처럼 점령하는 동안, 한편에선 전통 춤곡인 미뉴에트를 고집했다. 이처럼 역설적인 풍경을 드뷔시만큼 진지하게 포착한 이는 없었다. 기만적이고 양면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드뷔시는 이 모든 모순을 끌어안아 자신의 음악에 녹여냈다.

▲ 벨 에포크 시대 파리
▲ 벨 에포크 시대 파리

무한한 색을 지닌 파리, 이 도시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은 드뷔시의 작품 속에서 수많은 가면처럼 다양한 면면을 드러낸다. 독자들은 가면 쓴 캐릭터와 무도회로 채워진 코메디아 델라르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감춘 광대들과 서커스, 그리고 마녀와 왕자가 등장하는 어린 시절의 동화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어서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혼종 사티로스와 인어가 나타나고, 벌거벗은 몸과 금지된 향락이 또 다른 우주를 창조하는 매력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이 책은 이처럼 매혹적인 파리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식민주의, 민족주의로 얼룩진 불안한 풍경도 함께 다루며, 독자들을 아름다운 시절의 정점 벨 에포크로 안내한다, 클로드 드뷔시라는 훌륭한 안내자와 함께.  "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창조하고 싶었다. 현실과 꿈, 빛과 소리, 움직임과 리듬이 생동하며 조화를 이루는 그런 예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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