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법률과 형벌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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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법률과 형벌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다!
  •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 승인 2019.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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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과 사건으로 보는 조선시대 ①_ 연재를 시작하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법조비리, 사법농단 사태로 시끄럽더니 올해는 검찰 조직에 대한 개혁 논의가 화두로 등장한 듯하다. 검찰 개혁은 한 마디로 검찰이 오랫동안 누려온 무소불위의 권력을 통제하자는 것인데, 그 방안으로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요즘 자주 매스컴을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현재의 법원과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어서, 지금부터 30여 년 전인 1988년에 탈주범 지강헌의 절규로 유명해진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라는 표현에서도 확인된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들은 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그에 비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의 일탈은 왜 이렇게 추상같이 엄한 벌이 내려진다고 느껴질까? 따지고 보면 한동안 우리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미국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큰 인기를 누린 것도 엄정한 법 집행, 사회 정의의 실현에 목마른 사람들의 공정한 사회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 법과 정의의 문제가 새삼 주목받는 바로 이 시점에서 필자는 한번쯤 과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법전에 담긴 조선시대 사회와 문화를 읽어내고, 재판과 사건의 이면에 가려진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하는 작업 말이다. 오늘부터 지면을 통해 <법률과 사건으로 보는 조선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필자가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를 과거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성찰하기 위한 작은 시도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 광화문 앞 해태상. 해태는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 광화문 앞 해태상. 해태는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법 집행 고증의 문제점

다 아는 것처럼 법은 한 사회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척도이다. 법은 당대 사회가 도달한 문명 수준, 권력의 성격, 나아가 사회상을 읽어내는 데 중요한 코드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선시대사에 대한 탐구에서 법률문화는 그리 비중 있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 관심 대신 오해와 편견이 적지 않았다.

조선시대 법제도, 사법 행정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는 최근 들어 부쩍 인기를 끌고 있는 사극에서 고증이 잘못된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사극의 단골 주제인 역모 사건과 관련한 정치범 처리 과정에서 죄인을 감옥에 수감하거나, 형벌을 집행하는 광경은 많은 부분 잘못되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죄인을 문초할 때 쓰는 형구인 신장(訊杖)과 형벌을 가할 때 쓰는 가느다란 회초리 모양의 태(笞)·장(杖)의 모양을 혼동하여 엉뚱하게 복원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신장과 태·장은 형구의 모양뿐만 아니라 타격하는 부위도 달랐다. 신장으로는 증거가 명백한 데도 자백을 하지 않는 죄인의 정강이를 치며 고문한 반면, 형벌을 가할 때는 태와 장으로 볼기를 쳤다.

죄인에게 채우는 조선시대의 수갑은 지금 사용하는 것과 달리 한 손만 채우게 되어 있는데 이를 제대로 복원한 사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또한 조선후기에 군대나 포도청에서 사용했던 곤장(棍杖)이나 주리틀기[周牢]가 과거 조선전기, 심지어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버젓이 등장했던 것도 고증 오류의 사례로 종종 언급되는 장면이다. 곤장은 노 모양의 넓적한 모양으로 태·장과는 전혀 다른 형구이지만, 조선왕조실록의 형장을 가하는 기사를 번역할 때 으레 곤장을 친다고 잘못 번역해서 생긴 일이다. 덧붙여 17세기쯤 등장한 주리틀기는 그 유형이 다양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다리 사이에 몽둥이 두 개를 끼워 양쪽으로 벌려서 큰 고통을 가하는 ‘가새주리’는 영조 때 금지시킨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 주리틀기. 조선말기 김준근이 그린 그림.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 주리틀기. 조선말기 김준근이 그린 그림.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법률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법제와 형벌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 인식의 오류에서 더 나아가 전통법과 조선시대 법률문화에 대한 오래된 편견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반복해서 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안타깝다. 지방 군현에서 행정, 사법권을 동시에 틀어쥔 고을 사또가 원칙도 없이 제멋대로 행하는 원님 재판, 가혹하기 그지없는 무자비한 형장 풍경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로 조선시대 법 집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서양과 달리 중국이나 조선이 남형, 혹형이나 일삼는 전제국가로서 소송이나 재판 시스템 또한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는 생각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즉 서양인들의 동양사회에 대한 오랜 선입견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중국이나 조선이 근대화에 뒤처진 이유도 이런 식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저명한 중국사 연구자 니이다 노보루(仁井田陞)가 이미 1950년대에 다음과 같이 지적한 사실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사회의 경우 16세기까지 잔인한 형벌이 존재하고 형법이 저급한 상태에 있었던 데 비해 중국에서는 7세기에 마련된 당률(唐律)이 이전 시기의 잔인한 육형(肉刑)을 없애는 등 그 우수성이 돋보인다고... 동, 서양의 문명을 단순히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고유한 상황과 실제 제도를 잘 살필 필요가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중국법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받아들인 조선왕조의 법제도가 나름의 일관성, 내용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제는 오랜 시간 우리 인식에 영향을 미친 오해와 선입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선시대 법률과 문화의 특징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할 때이다.

▲ 『경국대전』. 성종 때 편찬한 조선왕조의 기본 법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경국대전』. 성종 때 편찬한 조선왕조의 기본 법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법전과 판례에 담긴 조선시대사 읽기

오늘부터 시작하는 필자의 글은 앞서 말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법률과 형벌, 사법행정과 관련하여 그동안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고자 한다. 또 선입견의 영역에서 방치되었던 중요한 법제의 의미를 차근차근 짚어보고 싶다. 이는 2011년 11월에 필자가 집필한 『네 죄를 고하여라: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이라는 책의 기획 의도이기도 하다. 앞으로 필자는 앞서 출간한 책에서 이미 다뤘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거나 시의성 있는 주제의 경우 내용을 보충하고 오류나 부정확한 표현을 바로잡아 다시 재론하고자 한다.

아울러 본 연재에서는 남아있는 기록을 추적하여 앞선 책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조선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의 재구성 작업에도 힘을 쏟고자 한다. 서양 역사학계의 새로운 역사연구 방법론 중 하나인 미시사(Microhistory) 연구의 대표적 성과로 꼽히는 『치즈와 구더기』, 『마르탱 게르의 귀향』과 같은 저술에서 중세유럽의 재판이나 이단 심문 기록을 적극 활용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전하고 있는 조선시대 판례집, 재판과 관련한 문서기록을 뒤져보면 당대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일상을 부분적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책에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평범한 사람들을 우리들 앞에 소환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조선시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한국역사연구회 사무국장, 역사학회 편집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국가권력과 범죄 통제』, 『네 죄를 고하여라』, 『백성의 무게를 견뎌라』, 『단성 호적대장 연구』(공저),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공저), 『조선후기 법률문화 연구』(공저), 『검안과 근대 한국사회』(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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