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교육학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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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교육학적 경험
  •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 승인 2020.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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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코로나 시대의 대학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결국 등록금 반환, 환불, 인하 문제이다. 건국대의 환불 결정이 다양한 수준과 모양새의 등록금 환불 혹은 인하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쟁점은 결국 수업권 침해와 대학의 축적된 재정위기, 교육부의 대학지원 여부와 정도가 될 것이다. 재정이 취약하거나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대학들은 어려움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연구와 교육에 관심을 두는 교수들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일차적인 관심은 코로나로 촉발된 교육의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비대면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후 떠오른 문제는 학교 당국의 온라인 수업 관련 하드웨어 미비, 교수들의 기자재 활용 능력, 학생 만족도였다. 학생이나 교수들이 적응기를 거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제는 ‘온라인 수업의 효과’에 대한 물음과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교육’이다.

온라인 수업의 출생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향후 지금의 대학은 대부분 없어지고...’와 같은 크고 작은 대학 소멸론은 코로나 확진자의 등장처럼 때를 만나면 출몰하곤 했다. 이에 대한 대비 차원, 학습 접근성, 디지털 교육 우수대학 브랜딩 전략, 국책사업 평가 대비 등의 이유로 대학마다 이러닝 센터가 활발히 운영되었다. 대학에 따라 강좌 관리목표를 설정해 운영하기도 한다. 코로나 출현 전까지 온라인 수업에 대한 문제는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편의성, 반복 학습 기능성, 맞춤형 학습의 장점, 전체 학습계획·관리의 용이성 등 좋은 면만 부각되었고 교수나 학생에게는 권장상황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한가운데 학습자와 교수자는 ‘온라인 학습의 신화’에서 깨어났다. 교육공학주의, 에듀테크의 세례를 받은 사람 중에서도 일부 환상에서 깨어난 자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VR 교육 등을 통한 면대면 수업 이상의 교육 현장성과 몰입감을 강조하는 교육산업 종사자의 태도를 가진 교수자도 활동반경을 확보하려 노력 중이다. 그들은 ‘교육 이행론 위기론’을 조합해 ‘생존의 전략’이라는 상품을 팔고 있다. 앞서 말한 교수자와 학습자에게 나타나는 ‘온라인 학습 신화의 붕괴’는 흔히 지적하듯이 단순히 학습 몰입감의 감소, 수업 질의 저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은 ‘도대체 교육은 무엇이며, 어떻게 교육하고 교육받아야 하는가’이다.

심각한 단어를 동원해 문장들을 늘어놓았으나 ‘온라인 수업에 대한 신화 붕괴’란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얼추 비슷했던 자들이 TV 앞에 앉아 자신들을 흉내 내는 대역들의 연기를 쳐다보는 꼴과 같은 것이다. ‘아, 온라인 수업은 죽은 수업일 수 있겠구나’라는 감각을 얻게 된 것이다. 직접성과 현장성, 주역 배우로서의 경험이 사라진 불가피한 거리 두기, 매개에 의한 전달, 관조적 관찰자적 시각, 동기 자극 환경의 미성립 등…. 철학적 언어로 바꿔 말하면 ‘살아 있는 경험’이 없는 ‘죽은 경험’이 온라인 수업이다. ‘수업은 예술이다’라고 말한 루돌프 슈타이너나 교수와 학생 간의 정신의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수업이며 그런 점에서 양자는 공동창작자일 수 있다는 야스퍼스의 술회가 가능한 것은 결국 ‘면대면 수업’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천 개의 언어’를 하나의 눈빛과 몸짓으로 한 단어의 뉘앙스로 보여줄 수 있고 그러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만큼이나 논증적인 대화,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찾아가는 진지함의 분위기는 면대면 수업에서 가능한 것이다.

현재 기술적으로 제한된 소통의 문제를 몇 년 후에 에듀테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라도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그 분위기를 경험해본다면 분위기, 감, 직관이 알고리즘이나 그 밖의 교육기술로 해결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할 것인가? 회의적이다. 하지만 온라인 수업의 신화는 깨졌다. 소크라테스가 헤드셋을 쓰고 말을 하는 순간 ‘유능한 논술 강사’, ‘핵심정리 1, 2, 3 박사’가 될 여지가 충만하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선생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도 알고 베버도 안다. 철학도 아니거나 문화과학이 아닌 다른 방식의 진리를 찾아가는 학문은 그들의 경연장으로서 온라인 수업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온라인 수업 예찬론과 만능론으로부터 깨어난 교육적 경험만으로도 ‘교육이란 무엇인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지식의 습득과 기능적 학습보다 더 나은 경험을 하는 것이 나를 다른 성장의 길로 이끌 수 있지 않을지’에 대한 감각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경험하는 교육학적 경험이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체념한 신화의 거대한 힘에서 벗어나는 길에 ‘잘못된 회상’, ‘안온한 회귀본능’이 고개를 들지 않기를.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독일현대철학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철학교수로 베를린 자유대에서 아도르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유럽철학 편집위원,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대전인문예술포럼 부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사회철학, 사회이론, 문화예술철학, 고전교육 등이다. 저서로는 『부정과 유토피아』,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 『아도르노의 문화철학』,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이론』,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비판』, 『역사철학, 21세기와 대화하다』(공저) 등이 있으며, 그 외 고전교육 및 예술 관련 책도 다수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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