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요렌즈와 철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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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요렌즈와 철렌즈
  •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 승인 2020.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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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져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당신은 팔도 다리도 없으니 내가 당신을 붙잡지요” 나는 당신이 떠나야 할 줄 알면서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 이성복, 「앞날」

사랑을 이렇게 진솔하고도 절절하게 보인 작품이 있을까 싶을 만큼 마음에 턱, 하니 와서 꽂히는 시입니다. 만해 한용운의 목소리가 언뜻언뜻 엿보이는 위 인용 시는 이런 감정이 바로 사랑이야, 그리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성복은 사랑의 시인입니다. 『그 여름의 끝』 시집 한 권으로 충분히 증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만해 한용운 이후 사랑의 절창을 구가한, 내로라하는 시인으로 손꼽히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이성복 시인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아니, 그의 시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사랑’의 메타포가 자유자재로 우리 삶의 이랑과 고랑을 유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사랑의 의미망이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주될 여지를 『그 여름의 끝』이 끝없이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랑의 대상과 의미는 그 외연이 한없이 넓어져서 결코 몇 마디로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이때 그를 사랑의 시인으로 이끈 일등 공신은 아무래도 이별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한 쌍처럼 사랑과 이별을 함께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요. 이때 회자정리가 『그 여름의 끝』에서는 인생의 무상함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만남으로 승화됩니다. 사랑과 이별이 뫼비우스 띠처럼 맞물리면서 우리를 쉼 없이 이끌고 있지요. 이것 때문에 나는 이성복 시인을, 아니 이성복 시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규정짓는 무수한 명제 가운데 ‘시간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인간이 ‘시간적인 존재’라는 말뜻은 변화의 속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변화 속에 있으므로 고정되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변한다는 것이지요. 하여 우리 인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영원성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실존적인 의미에서 “한계 상황에 처한 존재”여서, 다시 말하면,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진실이어서 영원성과는 무관한 존재입니다. 결핍 또는 부재에 대한 욕망이랄까요.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영원성에 매달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이성복 시인
▲ 이성복 시인

이 영원성이 사랑과 만나면 더욱 처연해지는데요.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사랑에서 이 영원성은 유난히 갈구되는 것 같습니다. 시나 소설, 영화들에서도 그 모티프가 한결같이 반복되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이때 우리는 사랑의 영원성을 신중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영원성을 물리적인 시간 개념으로 접근하면 사랑 자체에 대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부산에 있는 동아대학교 운동장 입구에는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그 사과나무에게서 네 번째로 접목된 것인데요, 그 뉴턴의 사과나무를 예로 볼까요. 얼마 전까지 뉴턴의 사과나무에는 연분홍빛 꽃이 환하게 피었더랬습니다. 지금은 물론 꽃잎이 다 지고 대신 사과가 열매로 올망졸망 영글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사과나무 꽃은 일정 기간 핀 다음에 반드시 집니다. 그것을 우리는 자연의 법칙 또는 순리라고까지 부르지요. 그런데 사과나무 꽃이 진다고 해서 그 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성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사과나무 꽃이 연분홍빛으로 환하게 핀 순간순간들이 영원성으로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사과가 올망졸망 열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과를 영글게 하는 것은 사과 꽃이 지닌 영원한 사랑 덕분이라는 것이지요. 그 기억으로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 여름의 끝』은 영원한 사랑을 충만하게 노래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그 이별 덕분에 사랑이 오히려 빛난다는 것이 그것이지요. 영국의 소설가인 조지 엘리엇이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의미망이 『그 여름의 끝』에서 오히려 순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성복 시인이 사랑의 진정성을 우리에게 시로 들려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 '남해 금산' 중에서_이성복 Instagram Posts
▲ '남해 금산' 중에서_이성복 Instagram Posts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 「남해금산」

돌 속에 묻혀 있는 한 여자를 따라 돌 속으로 들어가는 사랑, 돌 속에서 떠나간 그 여자가 가는 길을 해와 달이 끌어주길 희원하는 사랑,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홀로 있으면서 그 여자를 기다리는 사랑,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홀로 있으면서 그 여자를 기다리는 사랑. 이러한 사랑이 가능한 것은 “웃음 속에” “얼룩이” 있고, “웃음은 얼룩 속에 있”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깨달아 끝내 “웃음 속에” 버젓이 존재하는 “세월”의 무게를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소녀들」). 떠나버린 그녀가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다고”, “염려 마세요”(「편지 3」)라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대답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고통과 견딤의 시간이 그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갈매기의 꿈』으로 알려진 리처드 바크도 “재회에 앞서 이별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과정에 동조했지요.

그래서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시작했기 때문”이고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내게로 오는 그대의 먼 길을 찾아서”(「숨길 수 없는 노래 3」)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그 여름 그 어떤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붉은 꽃들을 매단 백일홍처럼, 나는 그 여름 절망 한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그 여름의 끝」). 이렇듯 놀라운 사랑법은 “서둘러 당신을 붙잡”는 일이 “당신을 가두는 일인 줄”(「비단길 3」) 절감했기에, 그래서 당신을 놓아주는 이별이 삶의 위도와 경도를 넓혀주는 일이라 사료했기에 가능한 일이라 합니다.

▲ 자필 시 '그 여름의 끝' 중에서
▲ 자필 시 '그 여름의 끝' 중에서

“내가 당신 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나는 아직 당신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웃는 것 같았고 우는 것 같았고 온갖 슬픔과 기쁨이 하나로 섞인 그 소리는 나의 머리끝 발끝을 끝없이 돌아나갔습니다 그 소리에 잠겨 나도 당신도 잊혀지고 헤아릴 수 없는 윤회의 고리들이 반짝였습니다 반짝임 사이로 어둠이 오고 나도 당신도 남이었습니다” 「사슬」이라는 시인데요, 역설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윤회의 고리들이 반짝이는 순간순간들을 시인은 ‘사슬’이라고 제목으로 삼았네요. ‘사슬’은 억압이나 압박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그러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사슬’이 결코 부정적으로 여겨지진 않습니다. 나도 당신도 잊히는 상황은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역설적이고요. “반짝임 사이로 어둠이 오고 나도 당신도 남이었”다는 마지막 말 역시 역설적입니다. 사랑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나와 당신은 결코 남이 될 순 없으니까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서해」)라는 마음자리는 이에 대한 논거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가장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고 시인은 단언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고 하네요.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라고 숙제를 내네요(「산」). 마음 아프면서도 뭉클한 작품입니다. 함께 있어야 할 것들이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는 여정은, 그래서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과 “시간”을 맞닥뜨릴 일들은 간절하고도 또 소중한 희망이 되는 것이겠지요.

마침내 “비 온 뒤의 웅덩이처럼 당신은 내 기다림 뒤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기다림 저편이 진흙을 기는 무지렁이나, 비 온 뒤 개인 하늘을 비추는 빗물이거나” 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 모든 사소로운 것들이 당신의 눈짓인 줄 이제 알”기 때문입니다”(「비단길 5」)

“나는 사랑으로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한다.”(레프 톨스토이)라는 말, 기억하시지요? 세상이 사랑으로 온전히 찬란해지는 순간들, 그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순간들을 희원합니다. 『그 여름의 끝』에서 ‘여름’은 사랑이겠지요. 요렌즈와 철렌즈로 들여다보는 사랑. 그렇다면 여러분의 ‘그 여름의 끝’은 어떠신지, 문득 궁금해지는 여름입니다.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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