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제거하는 일과 번영을 창조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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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제거하는 일과 번영을 창조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6.2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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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이 읽기_ 『번영의 역설: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에포사 오조모·캐런 딜론 지음, 이경식 옮김, 부키, 472쪽, 2020.05)
 

“어째서 어떤 나라들은 번영의 길을 찾는데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파괴적 혁신’의 창시자인 저자 크리스텐슨이 생애 마지막까지 고민한 질문이다. 이 역설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을 두고 크리스텐슨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열정”이라고 표현한다. 혁신이 어느 개인, 기업, 국가를 넘어 전 세계 만인의 행복에 기여해야 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절대 다수가 혜택을 누리는 일, 부의 민주화, 즉 공공선은 크리스텐슨이 이 책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이자 그의 혁신 사상이 도달한 한 정점을 웅변한다.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와 피터 드러커의 ‘경영 혁신’을 잇는 대표적인 혁신 사상으로 꼽히는 크리스텐슨의 ‘파괴적 혁신’ 이론은 오늘날 경영계와 산업계를 넘어 거의 모든 부문에서 발전과 성장을 논할 때 참고하고 기준으로 삼는 혁신의 아이콘과 같은 용어로 자리 잡았다. 크리스텐슨에게 이른바 ‘번영의 역설’ 문제 해결은 평생의 숙원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50여 년 전 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은 1960년 1인당 GDP 155달러의 극빈국이었지만, 2016년에는 2만 7500달러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으며 이제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을 돕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에 한국처럼 몹시 가난하던 나라들 다수에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며, 심지어 일부는 더 가난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번영의 역설’을 해결할 길은 과연 없는 것일까?

▲ 사진_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1952년 4월 6일 - 2020년 1월 23일) 부키 제공
▲ 사진_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1952년 4월 6일 - 2020년 1월 23일) 부키 제공

크리스텐슨은 이 질문과 씨름한 끝에 마침내 그 답을 찾아냈다. 세계 각지의 무수한 사례를 연구한 결과, 그는 그동안 빈곤 해결에 실패를 거듭해 온 것이 밀어붙이기식 개발 전략 때문임을 밝히고, 가난한 나라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 우물이나 화장실, 학교 등을 무작정 지어 봤자 왜 아무 성과가 없는지 명쾌하게 규명해 낸다. 나아가 제도 개혁, 부패 척결, 인프라 개선에 매달리는 대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 수익과 일자리, 문화 변화를 이끌어 내는 끌어당기기 전략이 어째서 번영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해결책인지 설득력 있게 입증해 보인다.

지금까지 저소득 국가들의 열악한 인프라 개선에서부터 각종 제도 정비, 해외 원조 증대, 대외 무역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어 왔지만 결과는 우물 설치하기와 다를 바 없다. 크리스텐슨에 따르면 “이런저런 자원들을 피폐한 지역으로 투입하기만 하면 가난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나 “전통적인 개발 기반 해결책” 같은 “밀어붙이기 전략”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가난한 나라는 음식, 위생 시설, 안전한 식수, 교육, 보건, 공공 서비스 같은 여러 자원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가난은 기본적으로 ‘자원 부족의 문제’라는 추론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가정에 근거해 거의 전적으로 자원 제공만을 토대로 하는 값비싼 ‘밀어붙이기’ 개발 전략이 실행되어 왔다. 그렇지만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한들 이런 시도는 제대로 뿌리 내리기 쉽지 않으며 기껏해야 일시적으로만 성공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이 전략은 가난을 만성 질환처럼 여기는 것이어서 많은 자원을 밀어붙여 봤자 고통은 다스릴지언정 질병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일반 통념으로 보자면 가난한 나라는 당연히 먼저 법치를 확립하고 제도를 정비하고 서구의 시스템을 도입해야만 번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해 온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억지로 밀어붙여진 제도들은 애초 기대나 선한 의도와 달리 효율성과 투명성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며 오히려 혼란과 부패를 가중시킨다.

그래서 한 사회의 특수한 복잡성을 이해하지 않고 좋은 제도라며 단순히 수입해 채용할 경우, 그 체계가 문제를 잘 해결하느냐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잘 작동하는 체계와 얼마나 닮았느냐로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또한 좋은 제도는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데 가난한 나라는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부패 역시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는 정부의 훌륭한 리더십과 통치, 사회의 도덕관에서 일어나는 변화, 적재적소에서 작동하는 좋은 제도들이 부패를 물리치는 해법으로 보인다. 그 결과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옳고 그름에 대한 의식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많은 자원을 밀어붙여 왔지만 부패와의 싸움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크리스텐슨은 기존의 방식이 부패의 ‘증상’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패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패는 도덕성 결여나 무지 때문이 아니다. “더 나은 선택지가 별로 없는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더 나은 길, 제2의 해결책, 유용한 방편”일 따름이다. 따라서 부패를 줄이려면 부패와 맞서 싸우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기를 그만두고, 사람들이 부패 대신 채용할 수 있는 대체물, 부패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제공해야 한다. 도덕적 책임 이상의 어떤 것, 즉 자기 삶의 힘겨운 투쟁에서 무언가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야 한다.

인프라 개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프라 부족도 가장 두드러진 가난의 징표,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로 꼽힌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가 인프라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해외투자가 홍수처럼 밀려들고 머지않아 번영이 뒤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일반적으로 인프라는 “어떤 사회나 기업의 원활한 운영에 ‘필요한’ 물리적이고 조직적인 기본 구조와 시설”이라고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개발이 이루어지려면 어떤 대가를 치르든 반드시 인프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인프라가 하는 역할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면, 미처 준비되지 않은 나라에 밀어붙여진 인프라가 애초 기대나 목적대로 성공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크리스텐슨은 지적한다.

그는 인프라를 “어떤 사회가 가치를 저장하거나 유통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라고 재정의한다. 예컨대 학교는 지식의 유통에서, 금융 시스템은 신용의 저장과 유통에서, 인터넷은 정보의 유통에서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즉 인프라는 어떤 목적에 부합해 쓰이기 위해 존재하지 그 자체가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인프라는 가치를 저장하거나 유통시킬 뿐이다.

인프라 사업은 인프라 건설과 유지 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가치를 저장하거나 유통시켜야 지속가능하지만 가난한 나라에 밀어붙여진 많은 사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실패가 이어지면 가난한 나라는 인프라 사업 자금을 계속 빌려야 하고 결국 빚의 굴레에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프라를 통해 저장하거나 유통시키고자 하는 가치를 창조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인프라 우선주의’라는 교조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가난한 나라들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크리스텐슨은 말한다. 구체적으로 경제 발전 문제에 대한 사고방식, 제기하는 질문, 개발하는 해결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크리스텐슨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 가난만 보지 말고 기회와 잠재력을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사업 기회를 평가할 때면 언제나 가난, 인프라 부족, 불안정한 정부, 심지어 물 부족과 낮은 보건 및 교육의 질을 들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난이 사회 구석구석에 너무나 끈덕지게 스며들어 있으므로 새로운 사업을 벌여서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가망 없어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새로운 시장 혹은 번성하는 시장을 창조할 좋은 기회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전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약 6억 명의 사람들을 단지 거대한 가난의 표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개발과 발전을 기다리는 기회, 거대한 시장 창조의 기회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경고 표시가 아니라 혁신의 부름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사람들의 힘겨운 투쟁과 비소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마땅한 해결책이 거의 없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람들이 벌이는 힘겨운 투쟁은 오히려 거대한 잠재력을 대변한다. 힘겨운 투쟁은 흔히 ‘비소비’라는 형태로 드러나는데, 비소비란 “잠재적인 소비자가 자기 삶의 특정 측면에서 어떤 발전을 필사적으로 원하지만 해당 문제에 대한 간편하고 저렴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해결 과제를 불만족스럽게 처리하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채용’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상품을 사지 않고 버티는 쪽, 즉 비소비자로 남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비소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나면, 시장은 갑자기 잠재력으로 가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힘겨운 투쟁을 목표로 하는 사업 모델이 일단 성공을 거두고 나면 갑자기 그 사업이 포착한 기회가 예전처럼 불가능하거나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명백하고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크리스텐슨은 실패를 거듭해 온 기존의 밀어붙이기 개발 전략 대신 바로 이러한 “시장 기반”의 “끌어당기기 전략”이야말로 가난을 물리치고 번영을 이루는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힘겨운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시장들이 창조되고 나면, 이 시장들은 자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다른 요소들, 즉 인프라와 교육과 제도 그리고 심지어 문화 분야의 변화까지 끌어당긴다. 시장이 인프라와 제도를 비롯한 이런 자원들을 끌어당길 때, 다시 말해 ‘시장 창조 혁신’이 벌어질 때, 이러한 자원들은 가난한 나라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다. 이런 새로운 관점 덕분에 혁신가들은 비소비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힘겨운 투쟁을 포착하며,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구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불굴의 노력으로 매진하는 그 혁신이 바로 번영을 창조해 낸다.

혁신은 “첨단 기술이나 뛰어난 기능을 갖춘 제품들” 또는 “발명”이 아니다. 혁신이란 “어떤 조직이 노동, 자본, 원재료 그리고 정보를 한층 더 높은 가치의 재화와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가리킨다. 시장 창조 혁신은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데, 그냥 새로운 시장이 아니라 기존 제품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했어도 너무 비싸고 접근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다. 이 혁신은 복잡하고 비싼 제품을 훨씬 더 저렴하고 훨씬 더 쉽게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시장 창조 혁신은 “비민주적이던 상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러한 시장 창조 혁신은 세 가지 두드러진 결과를 내놓는다고 크리스텐슨은 말한다. 첫째는 ‘수익’이고 둘째는 ‘일자리’이며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문화 변화’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뭉쳐 성장의 굳건한 토대를 만들어 낸다.

어떤 시장이 창조되고 지속되려면 이 시장은 반드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적어도 미래에 수익이 창출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수익은 미래의 성장에 필요한 연료를 제공한다. 또한 새롭게 창조된 시장이 새로운 고객들에게 해결책을 만들고 유통하고 판매하고 개선하고 또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은 단순한 경제적 가치 계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일자리는 사람들에게 존엄성과 자존감을 안겨 준다. 일자리는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이어가게 해 주며 심지어 범죄 발생률까지 낮춘다.

마지막으로 문화 변화는 시장의 결과물 중 가장 중요하다. 시장 창조 혁신은 제품과 서비스를 민주화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데 더해 시장들이 가져다주는 이득마저 민주화한다. 이 이득은 일자리에만 국한되지 않고 투자자들과 피고용자들의 소유권 획득 기회로까지 확장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생산적인 방식으로(새로운 시장에 투자자나 생산자 혹은 소비자로 참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음을(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존엄성을 갖출 수 있음을) 이해할 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 새로운 시장이 한 사회의 문화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가난을 제거하는 일과 번영을 창조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발상을 전환해야만 한다. 경제 발전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고, 제기하는 질문을 바꾸고, 해결책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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