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본질은 탄생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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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본질은 탄생성이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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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한나 아렌트와 교육의 지평 | 우정길·박은주·조나영 지음 | 박영스토리 | 410쪽
 

한나 아렌트는 20세기의 탁월한 정치 사상가로 알려져 있지만, 아렌트에 대한 연구는 정치학에 국한되지 않고 철학, 사회학, 미학, 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아렌트와 그녀의 교육적 사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학문적으로 꾸준히 연구해 온 교육철학자 3인의 논문을 엮은 선집이다.

우리는 왜 21세기에 한나 아렌트를 다시 읽는가?이 질문에 대하여 학계마다, 학자마다 다양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아렌트의 “경계적 사유”가 주는 풍부한 통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파리와 미국으로 전전했던 무국적자로서, 누구보다 사유하는 삶을 살았지만 스스로 철학자가 되는 것은 거부했던 한 여성 정치사상가로서, 아렌트는 이미 태생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파리아’(pariah)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아렌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유대인 편에 서거나, 여성이라고 해서 여성만을 옹호하거나, 사상가로서 철학자들에게만 집중하지 않았다. 아렌트의 이러한 태도는 주류 집단의 전통적이고 통념적인 사고와 잘 맞지 않는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아렌트는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바로 이 점이 아렌트 사유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특정 집단, 영역, 시대에 매이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의 지평을 펼치면서도, 자기 안에 함몰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아렌트의 통찰과 분석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렌트 당대보다 오히려 모든 영역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날 더 큰 빛과 울림을 발하고 있다.

▲ 한나 아렌트(1906~1975)
▲ 한나 아렌트(1906~1975)

아렌트는 기존의 엄밀하고 분석적인 철학적 사색에 매이기보다 문학과 예술의 은유를 통한 내러티브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고, 보통 사람들이 몸을 가지고 활동하며 살아가는 이 현상세계를 사랑하면서도 사유와 판단이 이루어지는 정신의 삶을 이 세계 안으로 회복하고 통합하고자 부단히도 애쓰고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아렌트의 사상은 분명히 전통적인 경계짓기식의 사유와는 구분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모던의 해체주의와도 거리를 둔다. 이것이 언제나 사안 그 자체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유하며 소통하고자 하였던 아렌트의 난간 없는 사유가 가진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엇보다 교육철학자적 관점에서, 아렌트의 사유가 교육에 던지는 풍부한 함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아렌트는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아렌트는 “교육의 본질은 탄생성이다”라고 선언한 탄생성의 교육철학자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탄생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이라고 천명한 아렌트의 선언은 고정된 목표와 계량적 결과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오늘날의 교육 풍토에서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아렌트의 선언은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존재론적 지평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른세대에게는 아이들의 탄생을 위한 조건을 구비할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타인과 소통하는 가운데 자신의 탄생성을 드러내는 말과 행위(활동적 삶),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공적 영역), 그리고 복수의 타인들과 함께 말하고 행위할 때 작동하는 인간의 사유와 판단(정신적 삶) 등, 아렌트의 이 모든 개념들은 한 사람의 인간존재로 탄생하기 위해 우리가 깊이 숙고하고 고찰해야 하는 교육의 조건들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1부는 아렌트 사유의 가장 특징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는 탄생성에 관한 글들로 엮었다. “교육적 사유의 새 지평”이라는 소제목의 제2부는 아렌트의 사유가 교육학과 맺는 접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한 연구 결과들로 구성하였다. 이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아렌트 사유의 세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행위, 사유, 판단이 교육학과 이루는 이론적 접점에 관한 논의들과 아울러 아렌트의 ‘세계사랑’(amor mundi)이라는 사상적 동인이 교육 실천을 위해 갖는 함의(책임, 권위)를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제2부의 글들을 통해 우리는 흔히 정치사상가로만 인식되어 온 아렌트가 현대 교육의 이해와 실천을 위해서도 대단히 폭넓고 입체적인 사유의 지평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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