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와 사회 재생산 활동
상태바
기본소득제와 사회 재생산 활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20.06.14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인사색]

최근 미래통합당이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왔다. 물론 기본소득제 제정을 직접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이를 검토해 보자는 수준이지만, 실로 놀라운 일임은 분명하다. 4.15 총선 때만 해도 전 국민 재난소득 지급을 주장하다가, 총선 후 돌변하여 이를 반대한 정당이 미래통합당이다. 그리고 과거에 무상급식제 도입에 반대한 당도 미래통합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래통합당이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왔다. 미래통합당의 과거 행태가 어땠든 기본소득제를 주장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논거는 자못 설득력 있다. 아무리 자유를 주장해도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유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이 뒷받침되는 실질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요지이다. 물론 그 방법은 기본소득제이다.

최근 기본소득제가 쟁점이 된 것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증유의 ‘탈 노동 사회’ 때문이다. 2016년 성남시에서 ‘청년 배당’ 제도를 도입하면서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제를 주장한 이재명 경기 지사 같은 경우 4차 산업혁명이 확산되면 획기적으로 인건비가 절감됨으로써 기업 이윤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지만, 반대로 구조적으로 일자리가 소멸함으로써 결국 소비절벽이 야기될 것임을 경고한다.

<노동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 역시 향후 2050년이면 전체 성인의 5%만 고용될 뿐 나머지는 실업 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만큼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 자동화로 인해 노동력 수요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점에서 고용절벽은 소비절벽으로, 소비절벽은 다시 생산절벽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경제 전체가 파탄날 수 있다.

물론 어떻게 해서라도 실업을 줄이고 고용을 확충하려고 해야 하겠지만, 과연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얼마나 그리고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더구나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급감한다면 사회보험 방식의 사회복지 제도 역시 버티기 어렵다. 직장도 없고 소득도 없는데 과연 국민연금, 고용보험,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소비역량을 확충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소비확충을 통한 경제 선순환을 위해서 기본소득제가 도입되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국가가 나서서 직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소득을 보장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국민은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 재생산을 담당하는 사회적 활동 주체이기도 하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고용 노동을 통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고용 형태로 수행되는 다양한 사회 재생산 활동 역시 필요하다. 가사, 육아, 친교, 친목, 보살핌, 소비, 봉사, 공동체 활동 등이 그것이고, 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존재 자체도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이런 사회 재생산 활동이 전제되어야 고용 노동도 가능하며, 기업들 역시 그 혜택을 보고 있다. 사회가 재생산되지 않으면 고용 노동은 둘째 치고 과연 기업이라도 존속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모든 사회 재생산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본소득제가 지금까지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은 사회 재생산 활동에 대한 보상이 된다면, 기본소득제는 정의로운 제도가 될 것이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과에서 악셀 호네트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여대 기초교육원 현대철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며, 『베스텐트 한국판』 책임편집자, 철학연구회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 『인정의 시대』, 공저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 『포스트모던의 테제들』, 『현대정치철학의 테제들』, 『현대페미니즘의 테제들』이 있고, 역서로는 『사회주의 재발명』, 공역서로는 『정의의 타자』 『인정투쟁』 『분배냐, 인정이냐?』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